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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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金度延

1966년 강원 평창 출생. 강원일보와 경인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등이 있음. cucurucu666@naver.com

 

 

 

왜 옆집 부부는 늘 건강하고 행복할까요

 

 

옆집 아이가 아기공룡처럼 달리고 있다. 조금도 쉬지 않고. 현관문 쪽에서부터 베란다를 향해 달려갔다가 다시 쿵, 쿵, 쿵…… 되돌아온다. 벌써 사흘째 계속되고 있다. 거실에 누워 있으면 지진이 온 것처럼 온몸이 미세하게 떨린다.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까지 부르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오직 달리기만 한다. 벙어리 아기공룡처럼. 대체 그동안 아내와 딸아이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녀들도 말없이 달리기만 했을까. 그는 화장대에 기대어놓은 아내의 영정 사진에서 눈을 돌린다. 엎드린 채로 팔을 뻗어 토끼를 끌어온다. 쓰러져 있던 토끼를 일으켜세우고 악수를 한다. 토끼는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끄럽고 정신없는 힙합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바닥의 진동은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은데 대신 귓속이 아우성이다.

나무 어르신 뵈러 가는 날입니다 날씨가 차니 따스하게 입고 오세요

그는 누워서 휴대폰의 문자를 들여다보다가 춤추는 토끼의 손을 잡는다. 음악과 춤이 동시에 멈췄지만 아기공룡의 발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찾아가 악수를 해야 비로소 멈출 것 같다. 그는 동그랗게 눈을 뜬 토끼를 가만히 바라본다.

“……엄마는 어디 가셨니?”

“식당에 일하러 갔어요.”

“……아빠는?”

“아빠는 하우스에 갔어요!”

“농사일?”

“아뇨. 훌라 치는 하우스 지키러요.”

“……그렇구나.”

여섯살쯤 된, 세수를 해본 지 오래된 듯한 여자아이의 눈은 토끼를 닮았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잠을 잘 수 없구나.”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열두서넛의 조금 낯익거나 낯선 사람들이 수령(樹齡)이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에 모였다. 나무 옆에는 낡았지만 정갈한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그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서너걸음 뒤에서 나무 해설가의 설명을 대충 듣는다. 해설가는 늘 나무를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그는 탑돌이를 하듯 나무와 나무를 둘러싼 순례자들을 안에 두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걷는다. 마치 실패에 실을 촘촘하게 감는 것 같다. 아니면 스스로를 가둘 고치를 만들고 있거나. 아빠, 엄마가 이상해요! 지난여름 다급한 딸아이의 목소리가 한겨울에 얼어버린 채로 떨어지는 은행처럼 서늘하게 되살아난다. 슈퍼 하는 엄마 친구에게 전화해서 빨리 와달라고 그래. 아빤 일 끝내고 저녁에 내려갈 테니. 그러나 그는 그날 저녁이 되어도 대관령에서 이십여분 거리인 강릉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괜찮아졌다는 소식을 듣자 다음날 일찍 해야 되는 몇가지 밭일 핑계를 대고. 은행나무는 한겨울임에도 눈과 바람, 그리고 추위에 쪼그라든 꽤 많은 은행을 매달고 있다. 그 까닭이 궁금하지만 그저 해설가의 눈을 한번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밑동의 삼분의 일가량, 거인이 들어가고도 남을 구멍을 진흙으로 채운 채 버티고 있는 은행나무. 세월이 흐르면 나무는 거대한 진흙나무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아빠, 엄마가 또 이상해! 무서워. 빨리 와. 슈퍼 아줌마한테 전화해. 아빤 내일 아침 일찍 내려갈게. 아빠, 엄마 남편 맞아? 그는 나무와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넋을 놓고 있다가 그만 단단하게 얼어붙은 은행에 정수리를 정통으로 맞은 듯 무릎을 꺾고 주저앉는다. 나무 뒤편 성당의 십자가마저 휘청 흔들렸던 것 같다. 그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검은 구두를 신은 토끼가 춤추고 있다. 사람처럼 두 다리로 서서 요란한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들고 두 팔을 휘젓고 쫑긋 치켜세운 두 귀를 까딱거린다. 목도리까지 하고. 배에는 먹음직스러운 당근 하나가 그려져 있다. 옆집 아기공룡은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쿵쿵쿵…… 모두 열네번 쿵쿵거리며 달려갔다가 한번 쉬고 다시 반대편으로 달려온다. 아내와 딸아이가 살던 허름한 아파트의 거실은 동굴처럼 어두워져간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돌아눕는다.

“정말 이렇게 해야 돼?”

간단한 이삿짐을 싣고 강릉으로 가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얘 이년만 있음 중학교 들어가야 되는 거 알잖아. 촌구석에서 뭘 배우겠어?”

“당신 욕심 때문은 아니고?”

“부정 안해.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 좁디좁은 대관령에 지금 미용실이 몇개나 되는지. 얼마 있음 다 망한다고. 지금이 기회야!”

“나는?”

“나는,이 아니라 우리야!”

홀로 올라가는 대관령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짙은 안개도 꾸역꾸역 내려와 길과 나무들을 지워갔다. 모든 차량들이 비상등을 깜박이며 나 여기 있다고 스스로의 위치를 알리느라 바빴다. 그는 끊었던 담배가 피우고 싶어 바싹 말라버린 입을 침으로 적시다가 고개 중턱의 휴게소 표지판이 나타나자 지체 없이 갓길로 차를 몰았다. 계기판의 바늘이 빠르게 열두시 방향으로 치달았다. 안개도 놀랐는지 급하게 양갈래로 흩어졌지만 시계(視界)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그는 길게 무적(霧笛)을 울렸다.

토끼는 휴게소 마당에 있었다. 급하게 담뱃갑의 비닐을 뜯어내고 담배를 빨며 자동차로 가던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개와 가랑비가 뒤섞여 내리는 휴게소 주차장에서 토끼는 춤추고 있었다. 주차장에 모여 있는 여러마리의 토끼들, 강아지들…… 다른 것들은 모두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유독 그 토끼 한마리만 가랑비 속에서 음악에 맞춰 머리를 끄떡이며 팔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그 앞으로 다가가 똑같이 비를 맞으며 담배를 피웠다. 토끼를 파는 상인은 트럭에 덧댄 천막 안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봐주는 이가 거의 없는데도 토끼는 마치 어떤 사명을 완수하듯 표정 하나 일그러뜨리지 않았다. 그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목덜미로 비와 안개가 끈적끈적 달라붙는 오후였다. 왜 하필 이 토끼만 춤을 춰야 하는 걸까. 종아리가 저려올 때까지 그는 춤추는 토끼 앞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상인을 찾았다. 지금 춤추고 있는 토끼를 줘요. 새것을 가져가라는 주인의 권유를 그는 거부했다. 상인이 토끼의 왼손을 잡자 토끼는 춤을 멈췄다. 그가 토끼의 크고 동그란 눈을 보며 돌아설 때 상인은 다른 토끼의 손을 잡았고 곧 음악과 함께 토끼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개의치 않고 차를 향해 걸어가며 품안의 토끼에게 말했다.

“힘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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