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어떻게 넘을까
동아시아평화포럼 기조강연
카라따니 코오진 柄谷行人
일본의 사상가, 비평가. 주요 저서로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탐구』 『트랜스크리틱』 『세계공화국으로』 『근대문학의 종언』 『네이션과 미학』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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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국가나 자본에 대항하는 입장에서 사고해온 사람입니다. 이 포럼에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여러분께서도 모두 국가와 자본에 대항하는 입장에 서거나 서려고 하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공동체’라고 할 경우, 여러 국가나 자본 측에서 생각해낸 것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국가나 자본에 대항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저에게 ‘동아시아공동체’는 국가나 자본에 대항하는 각국 운동의 연합체로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운동의 연대는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그러나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국가나 네이션(nation)입니다. 국가나 네이션을 극복하는 일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선 그것들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를 먼저 이해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국가주의를 넘어서’라는 말이 이 포럼의 주제로 내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주의라는 말은 애매합니다. 가령 영어라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라고 번역될 텐데 국가는 네이션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nation–state’라는 식으로 하이픈을 이용해서 연결하죠.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네이션이란 무엇인가를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들을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넘어갈 수는 없겠습니다.
맑스는 국가나 네이션이 경제적인 하부구조(토대) 위에 있는 정치적이고 관념적인 상부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후자가 해소되면 국가는 없어질 것이라 여겼습니다. 순서로 보자면 우선 국가권력을 잡아 자본주의를 해소하고, 그렇게 하면 계급이 없어지니까 국가도 네이션도 해소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렇지만 일이 그렇게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사회주의권에서는 자본주의가 부정되었지만, 그 대신 국가가 엄청나게 강화되었습니다. 민족문제도 남았죠.
이런 실패는 국가나 네이션을 관념적인 상부구조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현재도 국가나 네이션은 ‘공동환상’이라거나 ‘상상의 공동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면 자본주의 경제도 똑같습니다. 제 생각에 국가나 네이션은 자본주의 경제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경제적 하부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를 가능케 한 경제적 하부구조와 다릅니다. 그럼에도, 나중에 다루겠지만, 국가나 네이션은 단순한 상부구조가 아니라 역시 ‘경제적 하부구조’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나 네이션은 계몽주의적 비판으로 해소되기보다는 집요하게 남게 됩니다.
되풀이하자면 맑스주의 운동은 국가나 네이션을 단순히 관념적인 상부구조로 간주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의 실패를 만인 앞에 명백하게 보여준 것이 1990년 소련 붕괴입니다. 그후 사람들은 국가를 통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방식을 부정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국가나 네이션을 지양한다는 생각도 부정하게 되었죠. 그리고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했다고 보입니다. 즉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긍정하되 그것이 초래하는 계급격차나 환경파괴 등의 폐해는 국가에 의한 규제와 재분배로 바로잡아가면 된다고 말입니다.
결국 자본도 국가도 네이션도 영속적인 것이기에 부정해서는 안되고, 단지 그것들의 밸런스를 맞춰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지배적 경향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씨스템을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고 부릅니다. 이 안에서는 자본, 네이션, 국가라는 각각 이질적인 것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1990년 이래 사람들은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지양할 것으로 보지 않으며, 더이상 근본적인 변혁이 불가능한 최종적 형태라고 생각하게 된 셈입니다.
예를 들어 동유럽 혁명에서 소련의 해체로 나아간 1990년경에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미국 국무성 관리이자 신헤겔주의자인 프랜씨스 후꾸야마(F. Fukuyama)가 한 말이죠. 이 말은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미국의 승리로 인해 향후 근본적인 혁명은 일어날 수 없음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후꾸야마를 비웃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옳았습니다. 물론 1990년에 일어난 일이 미국의 궁극적 승리라고 주장한 측면에서 보자면 틀렸습니다. 처음에는 미국의 패권이 확립되어 세계화나 신자유주의가 일단 승리한 것으로 보였지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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