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관용의 시간을 위하여
박완서 문학에서의 기억과 망각의 싸움
염무웅 廉武雄
문학평론가, 영남대 명예교수. 저서로 『한국문학의 반성』 『민중시대의 문학』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문학과 시대현실』 등이 있음.
mwyom@ynu.ac.kr
1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작가의 이미지로 우리들 마음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박완서(朴婉緖, 1931.10.20~2011.1.22) 선생의 갑작스런 부음은 동료 문인들에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슬픔과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작고하기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새 산문집을 출간했고, 그 책에 실린 어느 글에서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현대문학 2010, 156면. 이하 『못 가본 길』로 약칭)고 말한 분이었으므로, 그리고 그러한 소망이 조금도 과욕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꼿꼿한 자세와 풍요로운 감성을 보여주던 분이었으므로 그 죽음은 너무도 뜻밖이고 충격이었다.
그러나 근년에 발표한 몇몇 산문들을 읽어보면 그가 점점 더 강하게 자신의 노년을 의식하면서 다가오는 이승과의 결별을 예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앞에 인용한 문장에서도 그런 낌새를 챌 수 있지만, 가령 산문집 『두부』(창작과비평사 2002)에 수록된 수필 「노년」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는 초가을 마당의 살구나무 사이로 한잎 두잎 잎사귀들이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런 감회를 토로하고 있다: “나도 내 몸하고 저렇게 소리도 없이 사뿐히, 뒤돌아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육신의 고통 없이, 그리고 세속에 대한 미련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그는 바라는 것이다. 같은 책의 「모두모두 새가 되었네」라는 글에서는 어느 조각가의 작업실에 갔다가 그 조각가의 솜씨로 빚어진 수많은 새들을 보고 어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이렇게 쓰고 있다. “나도 죽으면 새가 되고 싶다. 짝짓고 알 낳고 새끼 키우고 총에 맞거나 독극물을 먹을 수도 있는 구체적인 새가 아니라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 순간적으로라도 지구의 중력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황홀한 자유, 비상(飛翔)의 쾌감이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에게 이것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즉흥적 소망이 아니라 지난날의 처절한 경험에서 유래한 오랜 비원일 것이다. 또다른 수필의 한 대목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상의 삶에 대한 도저한 부정의 감정을 표출한다. 그는 선배작가 박경리(朴景利)의 유고시집을 읽고 그 시집에 실린 「일 잘하는 사내」라는 작품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감상을 적는다: “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으니까 다음 세상에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대신 내가 십년만 더 젊어질 수 있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게 한가지 있긴 하다. (…) 깊고 깊은 산골에서 세금 걱정도 안하고 대통령이 누군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살고 싶다. 신역(身役)이 고돼 몸보신하고 싶으면 기르던 누렁이라도 잡아먹으며 살다가 어느날 고요히 땅으로 스미고 싶다.”(『못 가본 길』 231~32면)
돌이켜보면 박완서는 지난 40년 동안 누구 못지않은 정력적인 집필활동을 통해 수많은 독자들과의 사이에 지적·정서적 교감의 공동체를 만들어냈고, 그럼으로써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국민작가로 떠올랐다. 이것은 그가 가장 뛰어난 소설의 작가였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이야기다. 흔히 예술적 탁월성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또 개인들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내용을 가리킬 수 있는 것이어서 한 사람의 소설가를 설명하는 개념으로서는 수사학적 찬사 이상의 구체적인 실체성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한 시대의 국민작가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그의 문학이 작품에 이룩된 여러 특징들에 의해 동시대의 국민들 다수가 공감하고 애호하는 공공의 자산이 되었음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우리 문단에는 박완서보다 더 오래, 더 많은 작품을 써온 작가들이 적지 않고 심지어 대중적 인지도가 더 높은 작가도 있다. 그러나 박완서처럼 자기 나름의 문학적 품격과 수준을 견지하면서 줄기차게 한가지 일에 몰두함으로써 일종의 국민적 동의라고 할 만한 것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 소설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 한가지 일이란 우리 시대의 평균적 한국인들이 실제의 삶 속에서 겪었음직한 생활현실의 세목을 그들이 실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사용한 ‘우리 시대’란 말은 백낙청(白樂晴) 교수의 지적대로 상당히 융통성있는 개념인데, 백교수처럼 특정한 문맥에서 “1987년 6월항쟁 이후의 20여년”으로 범위를 좁혀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 그보다 상한선을 올려서 훨씬 더 넓은 기간을 지칭할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글에서는 박완서가 살았던 시대이자 박완서의 문학이 주로 다루고 있는 시대, 즉 1930년대 중반부터 21세기가 열리는 시점까지를 ‘우리 시대’로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일제시대와 6·25전쟁은 물론이고 4·19와 광주항쟁도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그 ‘우리 시대’가 너무 멀리 또 넓게 잡혀 있어서 당장 몸으로 느끼는 현재적 실감이 공허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박완서 문학의 시간 속에서 작가가 스무살 나이에 겪은 6·25전쟁의 경험은 다양한 형식으로 끊임없이 반추되는 데 비해 중년기 이후 민주화를 위한 투쟁 시대의 현실이나 좀더 가까이 외환위기 이후 시대의 각박한 현실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동시대인들의 당면한 삶에 대해, 적어도 그 핵심적 문제점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있어야 우리 시대의 작가라는 호칭에 부합한다고 할 때 박완서를 그렇게 부르는 데는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문학의 진정한 성취는 50년, 60년 전의 과거에 속한 지난날의 사건과 경험들을 그 시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현실의 불가결한 일부로 절실하게 살려낸 데 있다고 생각된다.
2
알다시피 박완서는 불혹의 나이에 장편소설 『나목(裸木)』(1970)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때까지 전업주부로 있다가 “습작기를 거치지도 않고” 쓴 작품이 당선되었다고 하는데(『못 가본 길』 221면), 그것도 놀랍거니와, 등단 이후 후속타가 이어지는 것을 보더라도 그는 처음부터 ‘준비된 작가’였다. 그런데 그동안 그가 어떤 작품들을 얼마나 썼는지 알려고 자료를 찾아보니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동안 장편소설들은 세계사에서 『박완서 소설전집』의 이름으로 제1권 『휘청거리는 오후』(1993)부터 제17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2008)까지 순차적으로 간행되었고, 단편소설들은 문학동네에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1999, 개정증보판 2006) 여섯권으로 정리되어 있다. 물론 전집(全集)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한 뜻에서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
-
2022년 가을호 시인 김지하가 이룬 것과 남긴 것들염무웅
-
2021년 여름호 자유인 채현국 선생을 기억하며염무웅
-
2020년 겨울호 말에서 글에 이르는 길염무웅
-
2013년 가을호 염상섭의 중도적 민족노선염무웅
-
2011년 가을호 관용의 시간을 위하여염무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