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고병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린비 2011

‘근거 없음’의 근거

 

 

김성호 金成鎬

서울여대 영문과 교수 shkim@swu.ac.kr

 

 

14643밋밋한 제목이 주는 느낌과 달리 이 책은 민주주의의 일반적 원리를 기술한 입문서도,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을 담은 역사책도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쟁점에 깊숙이 개입해가는 정치적 ‘문건’이랄 수도 없다. 그럼 뭔가? 무엇보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하나의 사유다. 지적 탐색 또는 모험이라는 뜻의 ‘사유(思惟)’. 그러니까 이 책은, 비록 거기서의 주장과 표현들이 데리다, 들뢰즈, 랑씨에르 등 현대 서구사상가들에게 크게 빚지고 있고 어떤 지점에서는 의존이 지나치다는 인상도 주지만, 기본적으로는 저자 자신의 머리로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는 사유의 내실과 현실성을 따져야 마땅하지, 바쁜 세상에 왜 복잡하게 ‘철학하는’ 시늉을 하느냐고 핀잔을 줄 일은 아니다. 입장들은 안 그래도 넘쳐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오히려 차근차근 자기 입장과 행동의 근거를 찾는 노력, 지젝의 표현을 빌리면 “생각하려는 차가운 결의”(『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