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이명박 이후’를 내다보며

 

‘삽질’ 없는 지역살리기

 

 

유시주 柳時珠

희망제작소 소장. 저서로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공저)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신화』, 역서로 『미국사에 던지는 질문』 등이 있음.

ysj@makehope.org

 

 

1. ‘지역’의 등장

 

최근 10년 사이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국가적 의제로 새롭게 부각된 것 중의 하나가 지역문제다. 그렇게 된 데에는 크게 두가지 원인 혹은 흐름이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첫번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지역문제 자체가 정말로 중대한 국가적 사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비슷한 발전단계에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도권 집중과 지역간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다. 수도권의 면적은 국토의 약 12%에 불과하나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여기에 살고 있고, 지역총생산의 48%, 제조업체의 50.5%, 금융예금의 65.1%, 공공기관의 79%를 수도권이 점하고 있다.1) 통계수치를 굳이 인용하는 것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누구나 이 기이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수도권은 과밀로 고통받고, 비수도권은 결핍으로 고통받는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국가발전에 저해가 되리라는 것도 상식이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2000년대 들어서야 ‘지역’이 국가적 의제의 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이론이나 지역개발정책을 둘러싼 세계적 흐름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보다 앞서 도시문제, 지역격차문제를 겪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90년대 들어 기존의 지역발전이론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정치학, 경제학, 지리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이론의 뿌리와 맥락은 분과마다 다르지만 이런 문제의식은 지역연구와 연계되면서 일정한 방향으로 수렴되었다. 지역개발정책의 관점과 방법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이 흐름의 요점은 지역이 경제 및 사회생활의 기본단위로서 지역발전은 물론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2) 자유시장과 국민국가 단위에 토대를 둔 기존의 지역발전이론에서 지역은 시장과 국가를 구성하는 하부공간이자 발전의 대상이었고, 지역발전은 국민경제발전의 결과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이론들은 그 관계를 뒤집어 지역이 스스로의 발전을 추구해가는 능동적 주체일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국가경쟁력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흐름은 90년대 이후 급속히 진전된 세계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세계화는 세계를 단일한 시장으로 만들면서 국가의 힘과 국가간의 경계를 약화시켰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면서 국가는 상대적으로 국지화되었고, 이에 따라 국경을 초월한 국제분업구조가 형성되면서 도시와 지역이 경제활동 단위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지역 자체를 발전의 주체로 보는만큼, 이 새로운 흐름에 입각한 지역개발정책은 지역의 능동적인 참여와 자립, 지역내 자원을 동력으로 삼는 내생적(內生的) 발전을 강조한다. 현재 유럽 각국이나 유럽연합(E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내놓는 대부분의 지역개발 관련 보고서들도 이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지역은 “동질적인 특징을 가진 공간영역”을 말한다. 물론 ‘동질적 특징’은 자연적・인문적・정치적・기능적 등 여러 기준에 의해 묶일 수 있겠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지리적・행정적 구분단위로서 주민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삶의 터전”이라는 생활감각에 기댄 설명도 있다. 학계에서는 “국가의 하위 공간단위로서 독특한 물적・문화적 특성을 지닌 지리적 범역”이라는 정의가 가장 널리 쓰인다.

한때 지역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지방’이란 말을 쓰지 말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서울도 하나의 지방일 뿐인데, 실제로는 서울, 나아가선 수도권이 아닌 모든 지역을 ‘지방’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전적 정의를 따르자면 대한민국의 모든 지역은 저마다의 독특함과 동질성을 가진 균등한 공간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방이란 말의 쓰임새에서 드러나듯 서울(혹은 수도권)과 그 나머지 지역 사이에는 강력한 서열과 위계가 존재한다. 이 글에서 ‘지역’문제나 ‘지역’살리기라고 할 때 그것은 역사적・정치경제적・사회적으로 중앙과 동등하지 않은, 일자리가 없어 사람들이 떠나가는, 중앙에 종속되고 의존하는 지역을 가리킨다.3)

 

 

2. 지역발전전략의 전환

 

외발적 발전과 내생적 발전

현재의 심각한 지역간 불균형은 알다시피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정희정부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업화하고 그 성장거점도시에 재원을 집중 투자하는 방법으로 압축적 성장을 꾀했다. 경제적 효율성을 기준으로 적합한 조건을 갖춘 지역을 선택하여 산업단지를 육성하는 이 방식은 지역정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국가가 입안한 개발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지역을 선택적으로 징발하고 동원한 산업입지전략이었다. 대도시로의 과도한 집중과 더불어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어촌, 영남과 호남 간의 불균형 발전은 모두 이때 비롯된 것들이다.

이런 격차는 한국경제가 개방되고 탈공업화되면서 더욱 심화되었고, 90년대 들어서는 마침내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쟁점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오지(奧地)나 도서(島嶼) 같은 낙후지역을 개발하는 사업4)이 추진되었으나, 주로 의료복지시설이나 도로 건설, 주택 개량 등 정주(定住) 여건을 개선하는 것으로서 ‘지역달래기 정책’에 가까웠다.

이 시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