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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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1974년 울산 출생.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투견』 『침대』 『간과 쓸개』, 장편소설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물』 이 있음.

 

 

 

옥천 가는 날

 

 

강변북로는 극심한 정체였다. 토요일 오후인 데다 모레가 현충일로, 모처럼의 연휴였다. 명절 대이동까지는 아니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는 차들이 쏟아져나왔다. 마포대교부터 반포대교까지 속도가 20킬로밖에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남대교를 넘어가야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빠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녀들은 이제 겨우 강변북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바짝 붙어앉아 어깨가 겹치듯 맞닿았지만 그녀들은 떨어질 줄 몰랐다. 강변북로를 벗어난대도, 고속도로는 또 얼마나 막힐지 몰랐다. 오늘 하루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량이 43만대에 이르리라는 뉴스를 듣지 않았나. 행주로 식탁을 훔치면서였나, 아니면 보온밥솥 코드를 빼고 수족관을 향해 돌아서던 순간이었나. 정숙의 눈꺼풀이 젖은 이파리처럼 처지면서, 머릿속에 수족관 속 풍경이 펼쳐졌다.

그녀의 집 거실과 주방 사이에 놓아둔 수족관은 새끼 금붕어 수십 마리로 바글거렸다. 아직 온전한 빛깔을 갖추지 않은, 그래서 오히려 변화무쌍한 빛깔을 띠는 새끼 금붕어들은 흡사 자디잘게 자른 비닐조각 같았다. 보름 전 수족관 바닥에 깔아둔 바위들 틈에서 앞을 다투어 부화해 떠올랐을 때만 해도, 새끼 금붕어는 쉰마리 가까이 되었다. 응결하듯 모였다 흩어졌다, 떠다닌다기보다 나불나불 날아다니는 듯한 새끼 금붕어들로 인해 수족관은 그야말로 천변만화하는 만화경 같았다. 그런데 새끼 금붕어가 한두마리씩 줄어드는 것 같더니만 어느 날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녀로서는 뭔 까닭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수족관 속 물이 흐르기라도 해 그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다면 모를까…… 어미 금붕어가 무심히 주둥이를 벌리고 제 새끼를 삼키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서야, 그녀는 그 까닭을 확실히 알았다. 어찌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그녀는 그 얘기를 어머니에게 해주었다.

“배가 고픈가……?”

옹알이하듯 중얼거리는 어머니의 입에는 흰 빨대가 촉수처럼 물려 있었다. 그즈음 어머니는 삼시세끼 쌀뜨물 같은 죽을 빨대로 빨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버티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고 제 새끼를 잡아먹어요?”

“천지에 새끼밖에 잡아묵을 게 었나 보구만.”

“엄마도 참, 아무리 그래도…… 어미 뱃속이 무덤이 될 줄 새끼들이 알았겠어요?”

“어미 뱃속만헌 무덤이 어데 있을까.”

그후로 새끼 금붕어는 눈에 띄게 줄어 서른마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배가 터져 죽으면 어쩌나 싶게 사료를 넉넉히 주는데도, 어미 금붕어는 여전히 새끼들을 집어삼켰다. 터진 주머니처럼 주둥이를 벌리고 지느러미를 한가로이 흔들면서…… 불어터진 사료들이 부유하면서 수족관 물만 탁해졌다.

“마포대교는 지났나?”

정숙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애숙은 대꾸가 없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어머니만 멀거니 바라봤다. 막내딸이 자신을 그렇게나 바라보는 걸 모르는 듯, 어머니는 기척조차 없었다. 미역 같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그녀들은 차창 밖 풍경을 보지 못했다. 강변북로가 얼마나 막히는지,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대충 넘겨짚을 뿐이었다.

“언니, 이제야 엄마를 모시고 옥천에 가네……”

애숙이 손으로 자신의 목을 감싸쥐더니, 어깨가 들리도록 숨을 토했다.

“엄마가 옥천에 얼마나 가보고 싶어했어.”

“그러게 말이다, 옥천에 꼭 한번 모시고 내려가겠다고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옥천 갈 날을 기다리더니만……”

애숙의 눈 밑, 미더덕처럼 우글쭈글 부어오른 살이 오그라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얘.”

조곤조곤 말을 나누면서도 그녀들은 어머니를 바라보느라 서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정숙이 문득 등진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커튼 자락을 조금 들추었다. 커튼으로 애써 차단하고 있던 빛이 쏟아져들었다. 빛은 그녀의 두 눈동자 초점을 흩뜨리고, 애숙의 목덜미에 파스처럼 들러붙었다.

“몇시였더라?”

애숙이 고개를 외로 떨어뜨리고 자신의 발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앞뒤가 트인 쌘들을 신고 있었다.

“두시 조금 넘어서였지……”

정숙이 그때까지 움켜쥐고 있던 커튼 자락을 놓았다.

“내가 언니한테 전화한 게……”

“열한시쯤이었지.”

“시계를 볼 정신도 없었네…… 그러게 내가 뭐랬어? 몸이 아래로 축축 처지는 게 멀지 않은 것 같다고……”

애숙은 어머니를 일으켜 앉히느라 자신이 어찌나 진땀을 뺐는지 떠올렸다. 40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는 어머니의 몸은 자꾸만 땅거미처럼 까라졌다.

“어떻게 너 혼자 했냐?”

정숙이 애숙의 전화를 받고 달려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옥천에 내려갈 채비를 마치고 조용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애숙 혼자 어머니의 옷을 갈아입힌 것이었다.

“언니가 언제 올 줄 알고.”

“택시 타면 이십분 안짝인걸.”

“어제도 다녀가겠다더니만……”

“어제는 네 형부가…… 아니다……”

정숙은 어머니 쪽으로 손을 뻗다 거두어들였다.

“깜박했네, 그렇잖아도 오늘 당숙모가 다녀간다고 했는데.”

“여태 안 다녀가셨다냐?”

“누가 모시고 와야 오지 혼자는 못 오시겠나봐.”

“만우는 들어왔나?”

만우는 당숙모의 큰아들이었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은 게 벌써 대여섯해 전이었다. 나이가 정숙보다는 아래였고, 애숙보다는 위였다.

“못 들어온 지 꽤 되나봐. 사업이 어려운지 전화도 통 없는 것 같더라…… 만우오빠 때문에 당숙모가 속 많이 썩었지. 만우오빠…… 그 언니는 여태 보험 하지?”

“나도 보험 하나 들어줬지 뭐냐.”

“언니는 그래도 들어줬나 보네, 나는……”

애숙은 눈을 바늘처럼 가늘게 뜨면서 고개를 저었다.

“보험 들어달라고 우리 집까지 찾아왔더라. 그 여편네, 큰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보니까 장례식장서도 보험 팔고 다니더라.”

“큰어머니 돌아가신 게 삼년 전이지?”

“그렇지…… 그 양반이 돌아가신 게. 아무리 그래도 장례식장에서까지 보험을 팔고 다닐까. 그런 사람은 생전 처음 봤네.”

“누굴 붙들고 그렇게 보험을 팔았을까?”

“죽치고 앉아 명우 처를 붙들고 한참을 떠들기에, 뭔 얘기를 그렇게 하나 했더니 보험 얘기더라.”

“그 언니가 명우 처를 언제 그렇게 봤다고?”

“그러게 말이다. 결혼식 때나 겨우 봤겠지…… 얘, 명우 처가 초등학교 선생이라고 했냐?”

“정식 선생이 아니라 특별활동 선생이라던걸. 특별활동 시간에 가르치는 사람 말이야. 독서지도사라고 했던가……?”

“선생 며느리를 다 얻는다고 작은어머니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더니만. 명우가 직장이 반듯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물이 훤칠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교사 며느리를 다 얻나 했지 뭐냐?”

“엄마가 그래서 작은어머니를 별로 안 좋아했잖아, 쓸데없이 허세가 있다고.”

운전기사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녀들은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었다. 누구와 통화하는지는 모르지만 옥천 어쩌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옥천으로 내려가는 중이지…… 애숙은 휴대전화로 시간을 살피면서 새삼스레 중얼거렸다. 옥천서는 지금 한창 장례식장이 꾸며지고 있을 터였다. 영정사진을 가져다 놓고, 국화로 그 주변을 하얗게 장식하고, 조문객에게 낼 음식을 주문하고…… 고속도로가 아무리 막혀도 그녀들과 어머니는 네다섯시간 뒤면 옥천에 도착할 것이다. 해가 길어졌다지만 그새 세시가 넘었으니 옥천에 들어설 즈음에는 날이 어둑어둑할 것이었다.

“애숙아, 나는 꼭 오년 만이다.”

“언니, 오년이 뭐야? 나는 칠팔년은 된 것 같아…… 옥천이 저 어디 동떨어진 섬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못 가봤을까?”

그녀들은 마지막으로 옥천에 내려갔던 날을 떠올리는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옥천도 변했겠지?”

“변하면 얼마나 변했을까.”

“안 변하는 게 없는 세상인데 옥천이라고 그대로이려고.”

딸들이 옥천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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