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이명박 이후’를 내다보며
이게 사는 건가
세대를 가로지르는 연대의 질문
엄기호 嚴奇鎬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저서로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닥쳐라, 세계화!』 등이 있음.
uhmkiho@gmail.com
청춘이 화제다. 불황이라는 출판시장에서도 청춘과 관련된 책은 잘 팔리는 아이템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출간 이후 계속 전 분야에 걸쳐 1위를 놓치지 않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레알 청춘』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처럼 20대의 현실을 그들 자신이 솔직하게 고발하는 책에서부터 『스무살, 절대 지지 않기를』 같은 변형된 자기계발서에 이르기까지 청춘을 화두로 삼은 책들이 넘쳐나고 있다. 청춘은 취직이 되지 않아 자본주의 시장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는데, 반대로 청춘에 대한 화두는 자본이 눈독을 들이는 가장 매혹적인 아이템이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청춘은 왜 화두가 되었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이들이 처한 총체적 난국 때문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specification)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취직이 될까 말까 한 세상이다. 구인시장만 봐도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한다. 신입을 데려다 가르치고 숙련시키는 비용을 지불하기 싫은 것이다. 자연히 노동시장의 초기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다들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스펙 경쟁이다. 학점과 영어는 기본, 제2외국어니 자격증이니 인턴 경력이니 하며 자기소개서를 한줄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야 한다.
이제 청춘은 지쳤다.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인지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더라도 결국 사회에서 필요없는 존재, ‘잉여’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시시각각 침투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위로와 격려에 목말라한다. ‘아니야. 너희는 괜찮아. 지금 지쳤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잖아. 너희는 청춘이야. 다시 일어설 수 있어. 힘내.’ 세상에 이보다 더 달짝지근한 위안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청춘을 위로하는 책이 범람할 수밖에 없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청춘이 패기있게 이 상황을 돌파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개인적인 차원의 위로만 구하는 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록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처음 등록금 촛불문화제가 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대학생들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불씨는 기대와는 달리 들불로 번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권의 동향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잦아들어버렸다. ‘486’들이 보기에 이런 일이 1980년대에 벌어졌더라면 전국의 대학생들이 대동단결하여 나라를 한번 뒤집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청춘은 자기 문제인데도 걱정만 하거나 남이 해결해주기를 바라지, 스스로 힘을 모아서 해결하려는 것 같지 않다. 그러니 이들에 대한 불만이 높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현재 한국의 청춘, 그중에서도 대학생들의 문화적 특징을 해석하고 그것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전과 비교해 대학생들의 사회적・경제적 위치가 얼마나 추락했고, 이런 조건의 변화가 사회와 타자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추적해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화적 특징을 ‘세대론’으로 해석하는 문화비평적 작업이 아니다. 세대론이란 당대의 특징을 한 세대의 특징으로 전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대를 통해 당대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대는 당대를 드러내는 창(窓)인 것이지, 당대에 대한 동시대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알리바이일 수는 없다. 이 글은 문화이론에 입각하여 현재 대학생들의 문화적 특징으로부터 역으로 우리 시대의 당대성(contemporaneity)을 드러내고 동시대인을 형성하는 정치적 작업이 될 것이다.
갑자기 가난해지다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고등학교 때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가난을 대학에 와서 실감하게 되었다고 토로하는 경우를 의외로 많이 접한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예전에는 결식하는 몇몇 친구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던 빈곤이 자기 문제로 확 다가왔다고 증언한다. 은폐되어 있던 빈곤이 삶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이 중심에 등록금이 있다. 대학생활에서 부각되는 가난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등록금 투쟁에 왜 그토록 많은 에너지가 몰렸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다음 두 학생의 사례를 들어보자.
세현(가명)은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다. 꿈같은 새내기 첫 학기를 보내고 고향으로 내려가자마자 아버지는 그에게 장학금을 받았는지를 먼저 물어보았다. 오랜만에 본 자식에게 성적 이야기부터 하는 게 야속해서 발칵 화를 냈더니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는 장남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