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정치적인 말의 모습과 조건

시와 정치의 소통을 추구하는 최근 논의를 읽고

 

 

김종훈 金鍾勳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시와 삶과 노동시의 재인식」 「미래의 서정에게」 등이 있음. splive@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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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행되고 있는 시와 정치에 관한 논의는 십여년 전에 있었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會通)에 관한 논의를 떠올리게 한다. 말하고자 하는 대상들이 서로 다른 층위에 놓여 있음을 확인한 뒤, 그 둘의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는 순서가 그러하다. 당시 최원식(崔元植)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대별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 주목하며 글을 시작했다.1) 최근 진은영(陳恩英)은 집회에 참석하는 일 등 시민으로서의 참여는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시를 통한 참여는 어렵다는 말로 시와 정치의 간극을 드러냈다.2) 최원식은 좋은 작품에는 두 사조가 이미 회통하고 있기 때문에 “비평담론 안에 갇힌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을 창작측으로 방(放)”해야 한다며 글을 맺었다.3) 진은영은 글의 마지막에서 “삶과 정치가 실험되지 않는 한 문학은 실험될 수 없다”고 하며 제 분야의 자유분방한 실험과 접합을 제안했다.4)

그러나 이 두 논의가 꼭 포개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시에 관한 논의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 구획한 영역을 교란하고 있고, 정치에 관한 최근 논의는 삶의 문제와 밀착해 있다. 이는 진은영의 모색을 최원식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라기보다는 회통론을 촉발시켰던 논의 중의 하나인 진정석(陳正石)의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 여기게 한다. 진정석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포괄하는 ‘광의의 모더니즘’과 추상화 이전의 근대적 경험에 밀착한 ‘리얼리티’를 설정한 뒤, 이 둘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주체들의 출현을 요청했다.5) 거칠게 대입하자면 이때 ‘광의의 모더니즘’은 문학적 텍스트로서의 시와 대응하고, ‘리얼리티’는 삶과 경험을 경유하여 사회적 텍스트로서의 정치와 대응한다.

십여년 전의 논의가 지금 본격적이고 전면적으로 개진되는 까닭은 우선 2000년대 이후 여러 개성적인 목소리가 시에 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평은 이 새로운 목소리들을 이해하려 분주했다. 그때와는 다른 정치적 상황도 이 논의를 부추겼다. 2008년에 ‘촛불’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08년 겨울 진은영은 시와 정치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20091월에 용산에서 여섯명이 죽었고, 5월에 김해 봉하마을에서 한사람이 죽었고, 6월에 작가들이 성명을 발표했다. 시와 정치에 관한 논의는 이어졌다. 논의는 2000년대의 시와 비평이 알게모르게 미적 자율성의 권위를 높이는 쪽으로 흘러간 것은 아닌지, 정치적인 것이 거기에서 소외되고 있지 않은지 되물었다.

잠재된 삶의 부면(部面)을 시에 끌어들어야 한다거나, 기존의 것과 단절하고 질서를 초과하는 자리에서 시와 정치의 만남을 모색해야 한다거나, 말과 사유와 삶의 자리를 지상의 다른 자리로 옮겨 익명의 힘을 맞이해야 한다거나, 시와 정치의 제휴를 가능한 불가능성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은 크게 보았을 때 같은 기제를 지닌다.6) 이질적인 것의 표현이 다를지라도, 출현하는 시의 장소와 모습과 시기가 다를지라도, 이들은 모두 ‘정치적인 것’을 시쓰기의 영역에 포섭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과거 회통론과 관련된 논의와 최근의 비평이 제출한 결론의 성격 또한 닮아 있다. 이들은 모두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는 말하지 않지만, 또한 당장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미적 자율성의 권위에 대해 회의를 품을 수는 있으나 미적 자율성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고, 시와 정치의 거리를 좁히려 할 수는 있으나 그 차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문학의 장에서는 문제를 푸는 과정이 대개 정답이 아니라 전망을 제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끊임없는 질문을 요구하는 문학의 장 안에서 제시된 정답은 임시방편일 경우가 많다.

이 글은 ‘정치적인 것’을 시쓰기의 영역에 포섭하려는 최근의 논의를 따라간다. 특별히 주목하는 지점은 거기에 인용된 시와 그 분석들이다. 인용된 시는 2000년대의 것으로서 이 시대의 고민을 반영하며 시에 출현한 ‘정치적인 것’의 모습을 언뜻 보여준다. 시 분석을 함께 다루는 까닭은 최근의 논의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또한 그 논의가 요구하는 시의 조건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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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은 거듭해서 1980년대 박노해(朴勞解)와 백무산(白無産)의 시를 새로 도착할 정치시의 귀감으로 삼았다.7) 순정한 언어로 감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