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중국문학의 현재, 동아시아문학의 가능성

 

한 샤오꿍 韓 少 功

소설가. 1953년 중국 후난성 출생. 대표작으로 『마차오사전』 『보고정부』 『암시』, 산문집 『열렬한 책읽기』 등이 있음.

 

백지운 白 池 雲

문학평론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중문학. 역서로 『위미』 『열렬한 책읽기』 『시간』 등이 있음.

 

ⓒ 송곳

ⓒ 송곳

 

백지운 안녕하세요. 글로만 뵙던 한 샤오꿍 선생님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게 되어 영광입니다. 창비 독자들을 위해 선생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부터 드릴까 합니다. 1980년대 ‘뿌리찾기 문학(尋根文學)’이라는 슬로건으로 문단에 등장해서 1996년 『마차오사전(馬橋詞典)』 출간까지, 한 선생님께선 전통과 전위 사이를 오가며 문학적 쇄신을 시도해왔습니다. 90년대 이후에는 격동하는 중국사회의 문화생태를 해부하는 메스로서 ‘산문’ 장르를 새롭게 부활시켰고요. 문학과 삶에 대한 선생님의 깊은 사유와 부단한 실험정신은 문학의 종언과 위기가 심심찮게 회자되는 한국문학계에도 많은 자극을 주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동아시아 문학인들이 서로 지혜를 교환하며 새로운 길을 터가기를 바라는 차에 이런 자리가 마련되어 특히 기쁘네요. 우선 오랜만에 한국에 오셨는데 느낌이 어떠신지요?

韓 少 功 소설가. 1953년 중국 후난성 출생. 대표작으로 『마차오사 전』 『보고정부』 『암시』, 산문 집 『열렬한 책읽기』 등이 있 음.

韓 少 功
소설가. 1953년 중국 후난성 출생. 대표작으로 『마차오사전』 『보고정부』 『암시』, 산문집 『열렬한 책읽기』 등이 있음.

 

한 샤오꿍 저도 기쁩니다. 한국은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에요. 10년 전 서남재단에서 초청해서 처음 왔었죠. 한국작가와의 교류는 많지 않지만, 학자들과는 좀 알고 지냅니다. 최원식(崔元植) 백영서(白永瑞) 교수는 10여년 전 뻬이징대학에서 백낙청(白樂晴) 선생 저서의 출간토론회로 만났고, 그후에도 몇번 만나서 아주 친근합니다. 전에도 느꼈지만 서울은 참 큰 도시예요. 관리도 잘돼 있고요. 중국과 시차도 없고 음식맛도 비슷해서, 제게는 집처럼 편안해요.

 

백지운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후난(湖南) 분이시죠. 거기 음식이 한국사람에게도 잘 맞거든요.

 

한 샤오꿍 맵잖아요. 오늘 아침에도 어떤 분이 저한테 매운 음식 먹을 줄 아느냐고 묻더군요. 당연히 안다고 했죠.(웃음)

 

백지운 후난 음식이 한국 음식보다 더 매운 걸 사람들이 잘 몰라요. 후난은 유명한 작가들도 많이 배출했죠. 띵 링(丁玲)이나 톈 한(田漢) 같은 5·4시기 현대문학의 거장들도 후난 출신이던데요.

 

한 샤오꿍 션 충원(沈從文)도 있고요.

 

백지운 맞아요. 저도 그의 고향인 펑황(鳳凰)에 가 봤는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예전에

白 池 雲 문학평론가. 연세대 국학연구 원 연구교수, 중문학. 역서로 『위미』 『열렬한 책읽기』 『시 간』 등이 있음.

白 池 雲
문학평론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중문학. 역서로 『위미』 『열렬한 책읽기』 『시간』 등이 있음.

그의 소설 『변성(邊城)』을 읽으면서 1920,30년대 그토록 엄혹하던 시절에 어떻게 이런 한폭의 그림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지 의아했었는데, 막상 거기 가보니 이해가 저절로 되더군요. 소설 속 장면이 현실에 그대로 있더라고요. 듣자 하니 선생님도 후난으로 귀향하셨다면서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한 샤오꿍 벌써 11년 됐어요. 매년 절반은 후난 미뤄현(羅縣)에서 지내요. 미뤄강 근처죠. 오랫동안 일해온 하이난성(海南省) 작가협회와 담판을 했어요. 사직하겠대도 안 받아줬거든요. 결국 반반 양보해서 사직 안하는 대신 반년의 자유를 얻었죠. 미뤄에 있으면 농사지으며 노동할 수 있어 좋습니다. 땀 흘리니 건강에 좋죠. 그리고 교수, 편집자, 기자, 작가, 평론가 같은 지식계를 벗어나니 다른 사람들의 생활이 더 잘 보여요.

 

 

중국문학, 지금 어디에 와 있나

 

백지운 그럼, 최근 중국문학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중국문학의 움직임이 양적·질적으로 굉장히 활발해졌습니다. 한국 독서시장에서도 분명 2000년 이후부터 번역이 비약적으로 늘었고, 위화(余華)나 쑤퉁(蘇童)처럼 마니아층을 확보한 작가들도 생겼죠. 그런데 이렇게 밀려드는 중국문학을 수용할 준비가 한국독자에겐 충분치 않은 것 같아요. 현대중국의 사회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도 하고, 또 소개된 작가들이 중국문단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잘 모르거든요. 그런 한국독자를 위해, 지금 중국문학의 지형도를 간략히 그려주셨으면 합니다. 중국문학은 지금 어디에 와 있나요?

 

한 샤오꿍 대체로 문화혁명 직후인 신시기(1970년대) 이후 10년에서 15년 사이가 중국문학의 전성기였다 할 수 있어요. 그때는 아무나 대충 써도 50만부는 팔았거든요.

 

백지운 50만부요?

 

샤오꿍 문혁 직후라 사람들이 문학에 굶주려 있었거든요. 또 TV나 인터넷도 없고 신문도 지금 같지 않았으니 문학이 주요 엔터테인먼트였죠. 다음 시기, 그러니까 1990년대 후기에 들어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출판이 상업화되면서 에로물, 폭력물 같은 저급문학이 주류로 올라섰죠. 거기에 주식하는 법, 연애하는 법, 유학가는 법 같은 이른바 ‘How to’ 씨리즈가 출현했어요. TV와 인터넷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연속극 시청자가 천만, 아니 억대를 넘으면서 문학의 입지는 더 작아졌죠. 그 작아진 문학을, 저는 네가지 색깔로 구분하곤 합니다. 첫째는 ‘옐로우’예요. 돈 먹는 베스트쎌러죠. 돈 색깔이 노랗잖아요. 수적으로는 이 옐로우의 비중이 제일 큽니다. 둘째는 ‘레드’죠. 공산당 기관이 지원하는 혁명역사나 영웅전기 같은 거요. 정부가 투자한 기획상품이 많습니다. 셋째는 ‘블랙’, 서양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상품입니다. 여기엔 포장된 ‘지하문학’도 있어요. 국외유출이 어렵지도 않은데 일부러 필름으로 떠서 신비한 척, 서양매체에 호들갑을 떠는 거죠. 마지막으로는 ‘화이트’가 있어요. 이른바 ‘순문학’에 가까운 순결한 문학이죠. 모옌(莫言)이나 쑤퉁처럼 예술적·사상적 지향을 지닌 작가들이 여기 속해요. 80년대와 비하면 이들의 시장은 계속 줄기만 했죠. 쑤퉁이 그러더군요. 자기 독자 수가 영(0) 하나씩 없어진다고.(웃음)

 

백지운 쑤퉁은 한국에서도 유명한데, 가장 좋을 땐 얼마 정도 팔렸나요?

 

한 샤오꿍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진 100만부 파는 건 일도 아니었죠. 지금은 10만 정도일 걸요.

 

백지운 그럼 지금 중국의 베스트쎌러 작가로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요?

 

한 샤오 한 한(韓寒), 꿔 징밍(郭敬明) 같은 청년작가가 더 잘나가요. 무 쯔메이(木子美)처럼 전문적으로 성(性)을 주제로 쓰는 작가도 있는데 이런 책들은 전문가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시장에선 영향력이 대단해요. 작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 매년 6천여종의 장편소설이 출판된다고 합니다. 엄청난 양이죠. 하루 평균 10여편이니까. 하지만 문학과 일반인들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어요. 전에 대학에서 문학전공 석·박사과정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홍루몽(紅樓夢)』 읽어본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더니 4분의 1쯤 들더군요. 그럼 프랑스 문학작품을 세권 이상 읽어본 사람 손들라 했더니 3분의 1도 안됐어요. 이건 20,30년 전보다 더 퇴보한 거예요. 오히려 문화혁명처럼 폐쇄된 시절에도 중학생이 러시아 소설 열권, 영국·프랑스 소설 열권 읽는 건 별일도 아니었거든요. 그러니 지금을 호황기라 할 수 있나요?

 

백지운 한국도 비슷해요. 사회에 대한 고민과 문학적 열정은 같이 가는 면이 있죠.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80년대가 문학적으론 더 풍요로웠던 것 같아요.

 

한 샤오꿍 물질주의, 소비주의 풍조가 인간의 정신공간을 압살하고 있어요. 가장 명시적인 것이 출판의 시장화입니다. 옛날에도 출판사가 이윤을 따졌지만, 전체 이윤을 봤지 지금처럼 책 하나하나에 이문을 보려곤 안했어요. ‘단행본 개별정산제’가 보편화되면서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 시나 학술서가 태반이에요. 이런 제도는 문화를 끌어내립니다. 게다가 인터넷 충격도 기술적 원인 중 하나예요. 인터넷에서 음악 들으면서 주식하고 채팅하는 문화에 길들면서, 조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