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이명박 이후’를 내다보며
중산층의 욕망과 커지는 불안들
김현미 金賢美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저서로 『글로벌 시대의 문화번역: 젠더, 인종, 계층의 경계를 넘어』 『친밀한 적: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공저) 등이 있음.
hmkim2@yonsei.ac.kr
1. 빚더미 중산층과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
한국 중산층1)의 ‘위기’ 담론은 1997년 IMF 구제금융사태 이후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한국 중산층의 정치적 출현을 축하하던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 10년 만에 중산층은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IMF사태 직후 중산층의 위기에 대해서는 고용불안정, 실업, 도산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즉 중산층의 주요한 생계부양자인 화이트칼라 남성가장의 실업이나 비정규직화, 자영업자의 사업 실패 등이 급격한 경제적 하락과 가족해체의 원인이었다. 최근 들어 중산층의 위기 원인은 급증하는 ‘빚’이다. 국내 가계부채는 2011년 3월 기준으로 GDP 대비 85.9%인 801조 4천억원으로, 개인 가처분소득의 1.5배를 넘는 수준이다.2) 실질소득은 증가하지 않음에도 소비가 증폭하기 때문에 빚을 얻어 소비를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한국전쟁 이후 절대빈곤의 상황에서 빠른 경제발전으로 1980년대에 현대적인 의미의 중산층이 등장했고, 현재는 이들의 세대적 계급재생산이 광범하게 이뤄지는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당연히 계급재생산의 방식이 집단적일 뿐 아니라 동질적인 동시에 확장적이며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경쟁의 바탕에는 ‘나만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집단으로부터의 이탈과 추락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전에는 일자리나 소득수준을 놓고 벌이던 중산층간의 경쟁이 사회적 재생산 영역으로 급격히 확장되고 있다. 중산층으로서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고 그 이상의 지위를 자녀세대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사회적 재생산의 영역, 즉 의식주, 육아, 교육, 건강 및 외모, 휴식 및 오락, 지식과 세계관의 전수 등에서의 지위경쟁에 참여해야 한다. 문제는 이 영역이 급격히 시장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빚더미 중산층은 사회적 재생산 비용이 급증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빈곤계층의 삶의 불안정성과 위기도 문제지만, 중산층의 위기를 심각하게 토론해야 하는 것은 중간 정도의 자산가 계층도 이제 스스로의 재생산을 이루어내지 못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고학력자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결정을 통해 구축되었다고 자부해온 중산층 가족의 ‘기획적인 생애전략’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 때문에 불안감은 가속되고 위기는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중산층은 형편이 어려울 때 가용할 신용자원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에 실질적인 위기 대처나 사회변혁의 필요성에 가장 둔감한 계층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자산인 집을 소유하고, 규칙적으로 임금을 받고, 증가 가능성이 높은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 중산층은 모든 일상영역의 상품화과정에 적극적인 소비자로 참여하는 데 익숙하다. 이들은 상품소비자로서의 선택을 사회적 선택과 동일시하고 구조적으로 생겨나는 삶의 위협을 애써 외면한다. 때문에 중산층의 위기는 정치적 무감성의 결과기도 하다.
이 글은 중산층의 욕망과 불안을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와 연결해 사유하고자 한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문화발전의 원동력이던 중산층이 경험하고 있는 계급재생산의 불확실성, 문화적 혼종성의 불안, 젠더갈등의 증폭을 중심으로 중산층 가족의 위기를 탐색하고자 한다. 가족 구성원간의 팀워크를 중시하며 계급상승을 모색했던 중산층 부모와 자녀가 왜 동상이몽할 수밖에 없는지, 신자유주의 경영기법을 내재화한 부모가 어떻게 ‘돈’으로 자녀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면서 계급재생산에 대한 불안한 욕망을 불온한 방식으로 실현하려 하는지,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요리, 세탁 등의 자활노동 능력이 부재한 남성과 자녀의 무기력이 어떻게 중산층 여성의 노동강도를 심화시키면서 젠더갈등을 촉발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통의 해법에 대한 상상력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2. 자본주의의 ‘재생산적’ 전환과 일상의 상품화
사회적 재생산은 출산과 보육, 성장 및 교육의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특히 미래의 노동인구를 만들어내고 이들의 노동력이 일상적인 차원에서나 세대적 연속의 측면에서 유지되는 데 필요한 의식주, 안전, 건강, 돌봄의 제공뿐 아니라, 그 사회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지식, 가치체계와 문화적 관습을 전수하고 집합적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제반 과정을 포함한다.3) 구성원의 생물학적 재생산뿐 아니라 사회적 행위의 재생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4)
문제는 자본주의 축적 위기 이후 더이상 생산영역에서 초과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1980년대 이후 ‘재생산’영역이 급격히 상품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재생산적 전환’이라 불리는 이 흐름은 자본주의체제의 전환, 즉 상품을 만들어내는 생산영역에서 일상생활의 재생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재생산영역으로 자본이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적 존재성’를 상품화하는 산업은 인공출산 및 대리모 중계업, 산후조리원과 노인요양 및 돌봄 시설, 장례 및 상조 써비스업까지 ‘생명자본’사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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