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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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崔民錫

1977년 경북 포항 출생. 제13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 searacer@naver.com

 

 

 

쿨한 여자

 

 

1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순전히 외로웠기 때문이다. 돌려줄 것이 있거나, 할 말이 남아 있거나, 둘 사이에 청산할 빚이 있진 않았다. 물론 약속은 있었다. 헤어지더라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같이 가자는 터무니없는 약속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 때문에 만났다고 하면 나조차 콧방귀를 뀔 것이다. 하지만, 외로운 것 이상으로 무언가가 있긴 했다. 나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의 이별에는 뭔가 정확히 매듭짓지 못한 것이 있어서, 그것을 완전히 묶어버리거나 아예 풀어버리거나 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었다. 물론 그러지 못한 채 3년이 지났고, 그사이 나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감정의 실체를 서로 외로웠다고 표현하기로 했다. 언어란 이렇게 항상 카탈로그에 존재하는 옷과 같다. 실제로 입어보면 싸이즈가 맞지 않거나 색상이 약간 다르거나 해서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없다.

어쨌든 우리는 외로웠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외로웠다. 왜냐면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만나기 전에는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거라는 심증은 있었지만, 그걸 확인할 뚜렷한 길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나와 헤어지고 난 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여러명(열두명은 충분히 넘을 것이다)의 남자친구를 만나왔다. 대부분 멍청한 이들이었길 바란다.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것은, 남자친구가 교체되는 타이밍에 약간의 중복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글프긴 하지만, 나와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따라서 크게 낯설지는 않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군대 간 틈을 꿰차고 새로 등장한 골게터였다. 골키퍼는 나라를 지키느라 몹시 바빴으므로, 한가하게 여자친구 따위를 지킬 수만은 없었다. 그것은 주로 할 일이 없는 백수나 설거지를 취미로 삼는 남편들이 하는 일이라고 이 사회는 가르치고 있다(이것은 절대로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은하계에서 가장 절박한 생물인 군인의 여자친구를 뺏은 나는 은하계에서 가장 비열한 생물이라는 생각을 5분 정도 하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맹세코,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나 역시 우주에서 가장 불쌍한 생물이던 시절, 나 하나쯤 없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이 나라를 지키느라 가장 야비한 생물에게 여자친구를 뺏겼던 기억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녀의 복잡한 연애관계도를 조금이라도 눈치챘다면, 아마 그녀의 가여운 생물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그녀를 쏠로라 생각했다.

내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보이고, 만날 때마다 외롭다는 말을 호흡처럼 해대는 그녀를 누가 쏠로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어쩌면 내 이기적인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나의 개인적 희망이 잠재적 추정을 사실로 단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에게 불쌍한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우리가 사귀기로 약속하고도 한참 후였다.

어느 날, 그녀는 전화기를 꺼놓았다. 나는 여러통의 전화와 메씨지를 보냈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하루 뒤에 연락이 왔다.

남자친구가 휴가를 나와서 전화를 수백통씩 해대는 바람에 잠시라도 전화기를 켜놓을 수 없었어,라고 몹시 태연히 말해 나는 아연하고 말았다. 마치 오늘 날씨는 제법 나쁘지 않은데,라는 유의 메마른 말투였다. 그러고는 이내 짧게 “미안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격정적으로 불타오르는 분노를 대답 대신 침묵으로 표현했다. 나의 분노가 약 5초간 타오르자, 그녀는 “진.심.이.야.”라고 말했다. 꽤나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한음절씩 끊어서 말하는 그녀의 말에선 방탕의 종지부를 찍고 신을 영접한 이의 신앙고백 같은 느낌까지 감돌았다. 그러고선 급작스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지금까지 너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 확신하건대 앞으로도 너 같은 사람을 만나진 못할 거야. 내 평생의 사람이야. 혹시 만약에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말이야.”

 

음성이 들어온 곳은 달팽이관이었지만, 반응이 가장 먼저 나타난 곳은 동공이었다. 갑작스럽고 황당한 고백에 나의 동공은 확대되었다. 순간

 

“나랑 바람피워놓고서, 이제 와서 무슨 애정 타령이야. 니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야. 사람을 이런 추잡한 치정에 끌어들여놓고, 이제 와서 사랑이라니. 말만 그럴싸하면 다야. 뭐? 평생의 사람?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정말. 그러고서는 나보고 쿨하지 않냐고? 도대체 뭐가 쿨한 건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넘기던 침이 목에 걸려 어— 어—, 하는 갈라진 소리만 냈다. 그러자 그녀는 “너도 같은 생각이길 바래. 진.심.으.로.”라고 다시 힘주어 말하고선, “푹 자. 자고 나면 정리될 테니”라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아, 여기서 그녀가 나와 동갑이라고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그녀는 나에게 반말을 했으나, 나이는 일곱살 아래였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날 보니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며 반말을 하고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 기억으로는 우리가 살을 섞고 난 후였던 것 같다.

다시 고백 장면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전후맥락이 생략된 급작스러운 발표문을 들은 사람처럼 그 고백에서 진심을 눈치채지 못했다. 붉으락푸르락한 채로 전화를 걸까 말까 생각하다가, 전화를 거는 것이 과연 의연과 솔직함의 어디쯤에 해당하는 행동일까 고민했다. 고백의 진실성 따위에 대해선 신경쓰지 못했다. 당시의 나로선 그랬다. 하지만 6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이 말이 완벽한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

우리는 헤어졌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헤어지지 않은 사람처럼 지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로 안부를 묻거나, 가끔 만나서 영화를 보거나, 어쩌다가 술에 취해 서로를 찾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연락의 빈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는 헤어졌다는 말이 철저히 맞았다.

공식적으로 완벽히 헤어진 사이였다.

하지만 서로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는 만날 때보다 더 자주 서로를 찾았다. 그녀가 이별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온라인상에 있던 나와의 모든 연결망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온라인 네트워크의 일촌관계는 물론 주로 쓰던 메씬저 친구부터 거의 쓰지도 않는 메씬저까지. 지갑을 잃은 사람이 기억을 짜내어 모든 동선을 추적하며 하나씩 가능성을 소거해가듯, 그녀는 나와 닿았던 모든 연결망들을 차례로 잘라냈다. 내 쪽에서는 헤어져도 그런 것쯤은 추억으로 놔두어도 상관없지 않으냐는 생각이었지만, 그건 낙천적인 기대일 뿐이었다. 그녀는 단호했다.

그러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접근경로를 차단하더니 오히려 온라인상에서 나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미니홈페이지에 게시물을 하나 올리면, 그녀는 마치 대화하듯이 그녀의 미니홈페이지에 답장을 남겼다.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고 하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그녀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연적인 치료의 시간을 보낸 후, 서서히 내 생각이 났다고 이해해야 하나 싶었지만, 나로서는 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

어쨌든 그녀가 온라인상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내가 한 외화의 영어대사를 내 홈페이지에 올렸을 때였다. 나는 문법이 틀린 영어대사를 쓰기 좋게 문법을 고쳐 올렸다. 그런데 그녀가 그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온라인상에서 나를 쭉 관찰해왔다. 우리가 헤어진 지 1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녀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동안 나는 어땠느냐 하면,

… 역시 그녀를 관찰해왔다. 주도면밀하게.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헤어지자마자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청량한 해방감을 느꼈다. 공기는 상쾌했고, 발걸음은 가벼웠고, 폐 속까지 가득 차는 자유로 나의 몸은 부풀었다.

그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유형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몸은 허공중에 부유하곤 했다. 표면적으로는 당장은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녀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완전한 반대 유형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사랑해주기보다는 사랑받길 원했고,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길 바랐고, 내 편이 되어주기보다는 자신의 편이 되어주길 원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녀의 남자로 산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크게 얼굴을 따지지 않는 편인데, 공교롭게 그녀는 꽤나 예쁜 편이어서(모델을 하기도 했다. 물론 잠시였다)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기운을 가져다주는 것이지만, 그것이 과할 때는 옆에 있는 사람에겐 적지 않게 피곤한 일이었다. 나로서는 그저 분위기가 귀엽고 상큼해서 그녀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기쁨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 좋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외모에 반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상처를 받았다. 나는 물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외모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지만, 아무리 수사를 갖다붙여도 진심이 수반되지 않은 수식어는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장미와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노력을 가상하게 생각해주는 정도였다. 그녀를 달래고자, 눈은 유리구슬 같고, 다리는 우유 빛깔이고, 엉덩이는 탱글탱글한 비치볼 같아서, 좌우지간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렇게 칭찬하려고 맘먹고 보니 칭찬할 구석이 자꾸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빠져들었다고 습관처럼 말하다보니, 어느 순간 그녀의 외모가 정말로 예뻐 보였다. 심리가 말을 따라간다 해야 하나. 점차 그 말은 내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결론은 이별 후에 내려졌다. 종합하자면,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에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어느 누구보다도.

 

3

퇴근에 관한 한, 명백히 두 부류가 존재했다. 정시 퇴근을 하는 부류와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부류. 나는 가급적이면 정시 퇴근을 하려는 부류에 속했다. 회사 지하주차장을 벗어나자마자, 척 맨지오니의 「필 쏘 굿」(Feel So Good)을 플레이시킨다. 회사가 있는 여의도에서 홍대까지 ‘필 소 굿’ 한곡을 듣는 시간이면 도착할 정도였다. 먼저 트럼펫 소리가 나오고, 거기에 베이스 음과 기타 음이 얹어진다. 느린 듯 서서히 풀어놓는 연주가 1분 정도 지나면 차는 마포대교 위를 달리고 있다. 이때부터 기타와 씸벌즈, 퍼커션이 차례로 합류하며 퇴근의 풍경이 빚어진다. 데킬라 썬라이즈의 잔 밑동처럼 물들기 시작하는 여의도의 하늘과, 강변북로 위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자동차들. 차창을 활짝 내린 후 척 맨지오니가 뿜어내는 트럼펫의 소리와 바람의 소리를 혼합시켜, 나와 그의 합주로 하루를 내린다. 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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