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이명박 이후’를 내다보며

 

2013년체제는 새로운 코리아 만들기

배를 만들기 전에 거칠고 광대한 바다를 먼저 보자

 

 

김대호 金大鎬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저서로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 『한 386의 사상혁명』 『진보와 보수를 넘어』 『노무현 이후: 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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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소찰(大觀小察)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미국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케네디, 레이건과 더불어 재임중 국정 운영을 매우 잘한 대통령으로 꼽힌 조사결과를 놓고 그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첫째는 자신이 이끄는 나라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역사의 조류 속에서 나라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깨닫고, 그 바탕 위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둘째는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더 번영한 나라와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1)

역사의 조류 속에서 나라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깨닫는 것은 흔히 역사감각(sense of history)이라고 한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선상에서 나라의 위치와 방향을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흔히 국제감각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기 위해선 다른 존재와 비교해야 하듯이, 자기 나라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 세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OECD 지표를 주요하게 참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역사감각과 국제감각은 사고의 시공간적 확장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위치(위상과 객관적 처지)와 세계의 흐름(방향과 속도)을 파악할 수 없다. 이끌어갈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멀찌감치 떨어져 망원경으로도 조망해야 한다. 일자리 사정, 기업과 가계 형편, 건강과 범죄 추이, 직업과 배우자 선호도 등 미시흐름을 살피고, 산업구조, 고용구조, 정치구조의 변화 등 거시흐름과 함께 세계화, 지식정보화, 기후변화, 중국의 부상 등 세계사적 흐름도 헤아려야 한다.

 

 

2061년에 편찬될 코리아 역사

 

우리 시대를 멀찌감치 떨어져 망원경으로 내다보자. 지금으로부터 50년 뒤인 2061년, 우리의 자손이 펼쳐볼 코리아 근현대사 교과서를 상상해보자. 21세기 첫 10년간의 시대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는 어떤 것들이 선택될까? 추측건대 615남북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비극적 죽음,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하고 싶다’는 청년의 절규, 최악의 출산율과 자살률 그래프 등이 선정되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1990년 이후 한국의 자살률 그래프와 노인자살률 국제비교 그래프는 아무래도 0순위가 되지 않을까 한다. OECD는 노인자살률(10만명당 자살자 수)을 표기하기 위해 원래 5명, 10명, 15명으로 증가하는 왼쪽 눈금을 사용하는데, 한국의 폭증하는 노인자살률을 표기하기 위해 20명, 40명, 60명, 80명 (…) 160명으로 증가하는 별도 눈금을 만들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자살률 그래프를 보면, 잔잔했던 바다에 90년대 초반부터 큰 풍랑이 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에서도 65세 이상 노인자살률 그래프는 그야말로 거대한 쓰나미를 연상케 한다. 자살이라는 것이 아무리 개인의 실존적인 행위라 하더라도, 그 원인을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깝고도 직접적인 원인은 노령연금제도가 부실하고, 근로소득이든 자산소득이든 사적이전소득이든 노인들이 소득을 얻을 기회가 너무 적기 때문일 것이다. 멀고 간접적인 원인을 보자면 급격한 핵가족화(대가족 공동체의 해체)와 도시화, 가계 교육비 부담, 중국발 산업구조조정 압력, 벤처중소기업의 발목을 잡아 결과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틀어막는 기득권 과보호의 노동・금융・유통시장 및 원・하청관계, 부가가치를 국내화하는 능력(부가가치 유발계수)과 고용을 창출하는 능력(고용계수)이 현격히 떨어지는 산업구조 등이 꼽힐 것이다. 한반도의 기후 및 일조량과 한민족의 성정과 문화, 절대적인 부의 수준 등을 종합하면 한국은 그리스, 스페인, 이딸리아, 멕시코 등 라틴계 민족처럼 자살률이 결코 높을 수 없는 나라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살대란, 특히 노인자살대란은 90년대 후반 북한의 대량기아사태처럼 일종의 사회적 대학살이라고 기록되지 않을까?

그런데 노인자살대란을 파고들어가보면 우리 시대 고통과 갈등이 대부분 거의 동일한 뿌리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급격한 사회적 지각변동으로 인해 변화의 압력이 거대하게 밀어닥치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대응하지도 못하는 정치사회적 구조와 무능이다. 이 중심에는 한국정치와 지식인사회의 취약한 현실진단・해결 능력과 저열한 원(願)이 자리하고 있다. 그로 인해 국가가 복지로써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정의로써 사회적 강자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2061년에 코리아 근현대사의 시대구분을 하는 역사가가 있다면 지금을 어떤 시대범주에 넣을까? 추측건대 전후 복구가 본격화된 195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후반까지 대략 30여년은 냉전과 분단체제하에서 남북한이 각각 동서 양 진영의 모범생으로 발전해가는 시기로 기록하지 않을까? 그로부터 대략 2010년대 중반까지 30여년은 수명이 다한 남북의 발전체제와 분단체제를 해체하여 평화번영이라는 새로운 발전체제를 정립해가는 시기로, 그후 대략 30여년은 코리아의 재통합을 이루고 한민족이 세계사적 사명을 이행해나가는 시기로 기록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기록될 역사를 만들고 싶다. 지금이 새로운 발전체제를 모색하는 대전환기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지난 30년간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남미 등 대부분의 문명국에서 이전 수십년과는 확연히 다른 변화를 바라는 대중적 열망을 배경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개혁하려는 시도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관통해온 정치사회적 화두는 단연 개혁과 통일이었다. 1987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연출한 민주・노동세력은 일찍부터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혁명, 변혁, 개혁, 통일을 부르짖었다. 역대 대통령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 시대(전두환),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노태우), 신한국(김영삼), 제2건국(김대중), 새로운 대한민국(노무현), 선진화 원년(이명박) 등 정권의 간판구호들이 그 증거다. 6월항쟁과 더불어 대전환의 분수령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