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동아시아 지역문학은 가능한가
대만 ‘향토문학’의 동아시아적 맥락 *
백지운 白池雲
문학평론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중문학. 역서로 『위미』 『열렬한 책읽기』 『시간』 등이 있음. jiwoon–b@hanmail.net
1. ‘제3세계’라는 교량
한국에서 대만문화는 대중적 관심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냉전기 동아시아 역내 사회주의 세력의 방어기지로 수립된 양국의 우호관계가 탈냉전시대에 이르러 단교(1992)로 종결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물론 단교 이전이라 해서 양국이 상호이해에 기반한 참다운 우호국이었다고 하긴 어렵다. ‘자유중국’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했던 대만은 중공(中共)에 빼앗긴 중국의 대리자(surrogate China)일 뿐, 그들의 삶 자체가 우리의 시야에 진지하게 들어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역설적’ 의미에서 대만‘열(熱)’이 한국문화계에 의미심장하게 일었던 때가 있다. 대체로 1980년대 초에서 후반 사이, 어떤 특정한 지적・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대만과 한국은 잠시 만났다 결별했다. 짧은 해후는 그후 시나브로 잊혀져갔지만, 그대로 망각에 방치할 일은 아니다.
‘열’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비자각적이었던 이 문화현상의 발단은 1983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황 춘밍(黃春明)의 중단편집 『사요나라, 짜이젠』이었다. 1970년대 당시 대만문단의 주류였던 모더니즘의 강력한 비판자로 등장한 ‘향토문학’ 작가 황 춘밍의 작품집이 소설가 이호철(李浩哲)과 소장 중문학자이자 평론가인 성민엽(成民燁)의 뛰어난 번역으로 한국 독서계에 소개되었다. 대만문학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한국문단에 민중적이고 토속적인 언어로 대만사회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헤친 이 소설집이 전달한 파장은 작지 않았던 듯하다. 그 단적인 예가, 이 책에 수록된 단편 「두 페인트공(兩個油漆匠)」이 1980년대 한국의 대표적 민중극단 ‘연우무대’에서 상연된 사실이다. 서울대 연극반 출신 오종우에 의해 「칠수와 만수」로 각색된 이 연극은 초연(1986) 당시 평단과 관객 양측에서 호평을 받으며 서울에서만 397회 공연에 무려 5만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등 공전의 히트를 쳤고, 문성근과 강신일이라는 대스타를 배출했다. 이어, 8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를 이끈 박광수 감독의 데뷔작으로 영화화되었고(동아수출공사 1988), 당대 최고의 배우 안성기가 주연을 맡았다. 대종상 신인감독상・각색상,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청년비평가상(3위) 등을 휩쓸었으며 제3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40대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대다수가 「칠수와 만수」를 보았거나 최소한 들어 알고 있겠지만, 그 원작이 대만소설임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1) 대만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주 원인이겠지만, 이 작품이 당시 한국사회의 모순과 소외층의 울분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너무나 한국적인 텍스트로 재탄생한 것 또한 주요한 이유가 아닐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선 1970~80년대 한국과 대만 사회의 구조적 유사성 때문이었다. 1970~80년대 대만과 한국은 안으로는 군부독재, 밖으로는 대미・대일 종속외교를 발판으로 삼아 눈부신 성장신화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대만 원작과 한국 연극 속의 주인공들은 이 떠들썩한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약간의 변형도 있었다. 대만 동부산간 출신의 가난한 원주민 ‘아리’와 ‘원숭이’는 한국으로 건너와 기지촌 양공주 누이를 둔 ‘칠수’와 비전향 장기수의 아들 ‘만수’가 되었다. 순박한 시골 잡역부를 한순간에 죽음으로 몰아가는 매체의 비정함을 통해 자본주의의 탐욕적 속도를 고발했던 원작에서 나아가, 「칠수와 만수」는 분단과 냉전의 아픔까지 아로새긴 한층 정치적인 텍스트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황 춘밍의 한국 도래 이면에는 또다른 문맥이 있었으니 바로 1970년대 지식계에 불었던 제3세계열이었다.2) 먼저 『사요나라, 짜이젠』이 당시 창작과비평사가 기획・간행한 ‘제3세계총서’의 일환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알렉스 헤일리, 가싼 카나파니, 하림 바라카트, 응구기 와 시옹고 등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중동 작품을 망라한 이 총서는 1976년부터 1988년까지 총 16권이 간행되었고, 『사요나라, 짜이젠』은 그중 제6권이었다. “대만문학이 황 춘밍에 이르러 제3세계문학으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했음을 천명한 표지 문구나 “뚜렷한 작가의식에 기초한 제3세계적 특색”이 “분신과도 같은” 한국문학에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옮긴이의 말은, 당시 ‘제3세계’가 황 춘밍을 읽는 중요한 코드였음을 보여준다. 식민지와 냉전, 군사독재, 외세의존적 경제발전 등 근대 이래 동아시아가 겪은 굴곡의 심층을 유사한 행보로 지나왔음에도 이상할 만큼 서로를 돌아보지 않았던 한국과 대만에 있어서, 『사요나라, 짜이젠』의 출현은 보이지 않는 끈을 가시화하는 귀중한 찰나였다.
그런가 하면, 황 춘밍의 소설집이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일본 지식인이 했던 매개적 역할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한국어판 『사요나라, 짜이젠』이 저본으로 삼았던 『さよなら・再見』(田中宏・福田桂二 譯, 1979)은 일본에서 최초로 번역된 대만현대소설집이었다. 이 책의 출간을 주도했던 타나까 히로시(田中宏)는 일본-아시아 관계사 연구자이자 제3세계, 그중에서도 재일코리언, 재일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연대에 정력적인 활동을 펼친 인물이었다. 추측컨대, 한국어판 『사요나라, 짜이젠』이 출간된 구체적 계기는 1981년 일본 카와사끼(川崎)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AALA)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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