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들은 내가 유교를 공부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다. 여성의 욕망과 권력을 인정하지 않은 유교에 왜 공을 들이냐는 것이다. 당신이 조선시대 여성으로 태어나면 행복하겠냐고도 묻는다. 애증이 뒤섞인 나의 복잡한 심경을 밝혔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나는 늘 마음이 불편하다. 여기에는 유교라는 사상적・문화적 지반에 선 자신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 그럼에도 유교를 넘어서야 한다는 강박적 요구가 혼재돼 있다. 하지만 언젠가 문제를 돌파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동아시아 유교문명 비평서라고도 할 만한 김상준(金相俊) 교수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를 살펴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책의 방대한 내용 가운데 중요한 관점의 하나는 저자가 표방하는 ‘중층근대성론’이다. 다중근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