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동아시아 지역문학은 가능한가
일본 전후 문학담론과 아시아적 시각
역사적 상상력과 자본주의적 상상력
안천 安天
토오꾜오대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박사과정. 일본 현대문학 및 비평 연구. 주요 평론으로 「현대 일본의 새로운 ‘계급’을 둘러싼 지적 지형도」 「가라타니 고진과 현대 일본」 등이 있음. aniooox@gmail.com
한국에서 ‘동아시아문학’이 논의되는 이유 중 하나로 일본소설이 유독 많이 읽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중화권 소설까지 읽히게 된다면 한국은 동아시아문학을 논하는 데 가장 유리한 환경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에서는 ‘동아시아문학’이 현실성을 띠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일본독자들은 원래 외국소설을 별로 읽지 않는다. 한국이나 중국 소설뿐 아니라 서양소설도 마찬가지다. 물론 서양소설이 한국이나 중국 소설보다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있긴 하지만, 일본소설과의 규모 차이는 확연하다. 일반독자에게 외국문학의 위상 자체가 높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동아시아문학’은 아직 관념으로서만 존재한다. ‘동아시아문학’ 같은 하나의 문학적 단위가 설정되기 위해서는 그 단위 내에 고유한 공통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동아시아 국가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차이를 보여왔으며 과연 이 차이가 ‘근대화 이전의 공통된 문화유산’이나 ‘비서양권 중 가장 근대화에 성공한 지역’이라는 공통성 혹은 지리적 근접성으로 극복 가능한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문학’이라는 관념의 실현 가능성은 물론, 그 당위성에 대해서 필자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동아시아라는 관점에서 일본의 근현대문학을 논하는 것은 일본만의 맥락 혹은 한국만의 맥락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각지대를 가시화하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일본의 문학담론은 동아시아에 대해 어떻게 논해왔는가, 만약 논하지 않았다면 왜 침묵했는가, 침묵했다면 그 침묵은 어떠한 형태를 띠었는가. 전후 일본문학을 중점적으로 논하면서 이 질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1. 탈아입구, 대동아 공영권, 냉전하의 근대화
‘아시아’라는 용어는 현재 아시아라 불리는 지역 밖에서 도래한 것으로, ‘서양’이 스스로를 정의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따라서 근대 서양과 충돌하기 전까지 조선, 중국, 일본에는 스스로가 ‘동아시아’에 속한다는 인식이 없었다. ‘우리’는 서양과의 충돌을 통해 비로소 ‘동아시아’라는 자기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는 ‘세계사’라는 서양 중심의 독특한 역사체계에 조선, 중국, 일본이 편입됐음을 의미했다. 애초에 ‘세계사’라는 지적 장치가, 근대화에 이르는 과정을 역사적 필연으로 여기는 세계관을 내면화하는 제도였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아시아’라는 자기인식의 수용은 ‘세계사’라는 위계질서의 주변부에 마련된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했다.
따라서 서양에 대한 공포가 커질수록 이 새로운 정체성은 자기긍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자기 안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지양하기 위한 기제로 기능했다. 근대화를 도모하던 시기의 슬로건을 ‘탈아입구(脫亞入歐)’로 삼은 일본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코모리 요오이찌(小森陽一)는 이러한 일본 근대화의 특징을 ‘자기 식민지화’라고 불렀다.1) 일본이 근대 서양의 가치체계를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후진적 요소를 ‘아시아’라는 개념에 응축시켜, 스스로를 ‘아시아적 가치를 부정하고 이를 서양 중심의 근대적 질서로 재편하는 운동체’로 정의했을 때, 이미 논리상으로는 아시아에 속하는 다른 주변국을 근대화=식민화하는 주체로서의 일본, 즉 제국으로서의 일본을 긍정하는 기본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아시아라는 개념을 긍정적으로 갱신하려는 시도 또한 있었다. 1903년, “아시아는 하나다”(Asia is one)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동양의 이상』을 쓴 오까꾸라 텐신(岡倉天心)은 “오늘날 아시아가 할 일은 아시아적 양식을 옹호하고 회복하는 것”2)이라며, 서양이 아닌 아시아의 고유한 적극적 가치를 도출해 아시아 각국이 각성하고 단결할 것을 호소했다.
이처럼 근대 일본에서는 아시아를 둘러싸고 배제와 동일화의 역학이 동시에 성립했는데, 일본이 서양을 모델로 삼아 아시아를 근대화=식민화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한, 사회 내에서의 아시아담론 또한 배제와 침략의 성격이 우세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대만・류우뀨우(瑠球)의 식민지화, 1차대전 등을 거치면서 일본은 꾸준히 서양 제국주의를 모방해갔고, 동시에 ‘세계사’의 중심부에 점점 가까워졌다.
하지만 ‘세계사’의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대외적으로는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과 갈등이 격화되었고, 대내적으로는 식민지 확대로 인해 민족을 초월한 통치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이 증대됐다. 또한 1차대전 이후 서양에서 유행한 ‘서양문명의 몰락’이라는 화두는 아시아 관련 담론을 활성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때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새로운 맥락 속에 재소환한 일본은, 한계에 다다른 서양 근대문명의 극복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띤 동아시아적 주체를 확립한다는 미명하에 ‘동아시아 협동체’와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운다. 이와 동시에 애초에 침략적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했던 각양각색의 아시아담론들마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하위담론으로 재편되고 만다.
문학담론의 경우, 프롤레타리아문학으로 대표되는 정통 맑스주의나 무정부주의 계열의 작가 및 비평가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로부터 모든 인민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므로 자연스레 식민지 해방과 국제적 연대를 내세웠지만, 당국의 혹독한 탄압으로 1930년대에 괴멸한다. 그후 일본 문예비평의 아버지라 불리는 코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를 중심으로 한 ‘문학계(文學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