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지층의 고독

박형준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조강석 趙强石

문학평론가,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 교수. 평론집 『아포리아의 별자리들』 『경험주의자의 시계』 『비화해적 가상의 두 양태』 등이 있음. outeast@naver.com

 

 

3541박형준(朴瑩浚)의 시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의 언어는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박형준의 시에는 이른바 ‘메타적’인 것이 한움큼도 검출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의 직접성을 지닌 시를 우리는 참 오랜만에 읽고 있다. 서정시를 ‘서정적 자아의 개별 발화’로 가장 엄격하게 규정한 독일 문예학자 디터 람핑(Dieter Lamping) 같은 이가 읽어도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시를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읽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서정과 주체에 대한 최근의 복잡한 논의들을 뒤로하고 이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문학과지성사 2011)는 온전히 시인 자신인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로 가득하다고 말해야겠다. 시적 화자가 등장할 극장도 주체들이 난분분하는 혼몽도 없이 시인 자신의 목소리가 쟁쟁 울리는, 마치 온갖 소리로 가득한 ‘지(하)층의 방’과 같은 내면을 우리는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래된 것은 낡은 것과 다르다.

그러니 이 시집에서, 반영되거나 재현되거나 상상되거나 기입될 아무런 필요도 없이 세계는 순정한 진술들에 의해 툭툭 불거진다. 억지로 꾸미려는 의지가 하나도 없이 순순히 새어나오는 말들에 힘입어 박형준은 세계와 대면하는 대신 자신을 포함한 대기적 세계를 모든 시에 불어놓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불거지는 세계의 대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성분은 슬픔이다.

슬픔에 대해 일가견이 없는 시인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박형준은 슬픔에 ‘대해서’ 말하는 대신 그것을 풀어내고 있다. 이 시집에서 자주 눈에 띄는 시어인 슬픔, 고통, 울음 등은 단속과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실연(實演)하는 인격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 시집 고유의 특징 역시 바로 이 점에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시집은 화자를 위한 극장도 주체를 위한 구조도 지니고 있지 않다. 연극적 목소리를 빌리는 수고도 다면적 욕망의 중재도 모두 번거로울 따름이라는 것이다. 직접성, 그것만이 이 시집의 목소리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모든 내면의 사태는 그것에 대해 사유되거나 진술되는 대신 독자를 직접 초대한다. 시집 곳곳에서 서정적 자아가 거주하는 ‘지층의 방’에 대한 언급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물론 시인 자신이 오래 살던 거처이면서 동시에 내면의 물화라는 구체성을 지니는 이미지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슬픔에 대한 토로나 사유나 진술로 간주하게 하는 것과, 우리가 이를 읽으며 ‘슬픔의 방’이라는 물리적 실재를 실감하게 하는 것은 그 기량에 있어 얼마나 다른 것이랴.

“집을 향해 가는 내 시간이 아프다”(「공터」), “등뼈를 가진 생물은 울어야 하는/이 길, 이 어두운 골목길에서/슬픔은 뼛속까지 갉아먹는다”(「봄 저녁의 어두운 질주에 관하여」). 이것은 내면의 주소가 예컨대, 남가좌동 어디쯤 실재한다는 전갈이다. “방금 나온 집을 뒤돌아보자/휘파람을 불며 바람에 떨리는/먼 유리창,/소중하지만 이제 감출 것도 없는 비밀들/저녁 어스름 속에서 떠다니고 있다”(「저녁의 눈」). 이것은 마치 기형도와 같이 내면을 ‘빈방’으로 건축하는 기술이다. “집 안의 창문들이/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새벽/쓸쓸한 손이 땅에/독음(獨淫)처럼 고독하게/곯아떨어져 있다/목련꽃 송이 몇/쓰레기통 옆에 떨어져 있다”(「독음(獨吟)」). 이것은 저 스스로 쟁쟁 우는 슬픔과 “사물 속에 빛나는 고통”(「저녁 빛」)이 바로 이 시집의 단일한 서정적 자아의 독음이라는 증거다. 이 구절은 오랜 독음의 투사(投射)다.

물론 그것은 예의 그 내면의 방, 남가좌동 지층 어디쯤으로 지시된 방으로의 투사이다. 아니, 바로 그 방이 투사의 물리적 증좌(證左)다. 아니, 서정적 자아의 슬픔과 사물의 고통이 스스로 주소를 지니게 만드는 박형준의 독특한 시적 기량의 증좌다. 다만 우리는 그의 독음에 자신의 슬픔과 사물의 고통뿐 아니라, 그래서 물러지는 것들만이 아니라 “견고한 고독”(「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까지 포함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층이라는 주소에서 오래 살았다”로 시작해서 “가난이 있어/나는 지구의 이방인이었다”를 거쳐 “이사 가기 전날 밤/내 영혼은 어떤 나무로 다음 생에/지구에 서 있을 것인가/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는 것이다”로 마무리되는 시 「창문을 떠나며」를 ‘남가좌동 유독 박형준방’으로 고쳐 읽으며, 백석(白石)을 떠올려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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