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제14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13114

천정완

1981년 문경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서사창작과 졸업. wrongseason@gmail.com

 

 

 

부풀어오르다

 

 

형은 체조선수였다. 그가 은퇴를 결심한 날, 나는 형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술을 마셨다. 비가 내리다가 느닷없이 맑게 갠 7월의 어느날이었다. 체육관 앞 포장마차에서 형은 주문한 안주가 나올 때마다 아이처럼 웃었다. 그날 형은 술을 많이 마셨고, 많이 울먹였고, 망가진 손을 주제로 계속 같은 농담을 했다. 그가 체조를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다.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2위로 입상했을 때, 철봉에서 사뿐히 내려서는 형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를 신동이라고 불렀다. 당시 형을 가르친 코치의 말을 빌리자면 형은 체조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형이 대회에서 입상한 것은 그때뿐이었다. 형은 은퇴하는 날까지 대회가 끝날 때마다 운이 나빠서 혹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라는 위로를 받는 유망주로 남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경쟁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은 사람처럼, 은퇴를 결심하는 순간까지 단 한번도 좌절하지 않았다. 누가 내게 형과 형의 체조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고요했다고 말하고 싶다. 형은 산을 옮기는 사람처럼 조용하고 치열하게 체조를 했다. 내 생각에 그는 체조를 사랑했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형에게서 직접 그 말을 듣지 못했다.

형이 죽었다. 나는 신축한 지 석달도 되지 않은 빌딩의 누수를 탐지하고 있었다. 천장에서 샌 물이 건물 외벽을 타고 흘러 곰팡이가 피어버린 벽을 바라보며 나는, 형수의 담담한 목소리를 통해 형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모든 누수는 징조를 동반한다.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분명히 징조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분명히 우리가 감지해내지 못한 징조가 있었다. 상조회사에 전화를 하고, 사망진단서를 떼는 동안에도 나는 형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형수가 울고 있었다. 형수는 아직 상복을 채 다 걸치지도 못하고, 위에는 검은색 저고리를 아래에는 무릎이 늘어난 바지를 입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두 손을 정중하게 모으고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형수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카는 놀이터에 온 듯 상 아래를 기어다니며 놀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선 나를 발견한 형수가 급하게 눈물을 닦았다. 나는 채 매지 못한 형수의 저고리 고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슨 일이에요?

형수는 대답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린다. 형수와 그 남자 사이에 단단한 벽이 생긴다.

—사모님께 음식에 관해 말씀을 드렸는데, 식사를 10인분만 주문하셔서요.

직원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친절하지만 감정이 배어 있지 않은 말투였다.

—저희는 쉰명이 넘지 않아요.

형수가 반발했다. 형수는 죽음을 감지한 동물처럼 목을 쑥 빼고 씩씩거렸다.

—병원 규정상 한번에 음식이 50인분 단위로 들어가야 합니다. 아까 설명드렸듯……

—저희는 문상객이 쉰명이 넘지 않는다구요. 스무명도 안 올 거야, 아마.

형수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직원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보였다. 그 순간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술에 취해 내게 찾아와, 자꾸 우는 형수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던, 혼자서만 간직한 비밀을 토해내는 듯하던 그 얼굴. 화가 났다.

—가만히 계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형수가 잠깐 나를 보더니, 아직 영정도 도착하지 않은 접견실로 들어갔다. 직원은 두 손을 모은 채 형수가 들어간 곳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50인분으로 해주세요.

내가 말했다. 그럼 일단 50인분으로 하겠습니다.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서류들을 내밀었다. 서명을 받은 직원이 돌아가고, 상조회사에서 보냈다는 도우미 여자 두명이 도착했다. 그녀들은 음식이 도착하기 전에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비치된 커피믹스와 종이컵의 포장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장내에선 철 지난 해수욕장같이 몇사람만 천천히 움직였다. 그날 형은 우는 형수가 두렵다고 했다. 언젠가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형은 고장난 녹음기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형수가 상복을 갖춰입고 나왔다.

—도련님은 아무것도 몰라요……

형수는 머뭇거리다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숨을 골랐다. 마치 오랜 시간을 달려온 사람처럼.

 

형의 특기는 철봉이었다. 형의 유해는 번데기처럼 수의에 싸여 관에 들어갔다. 관은 어린시절 방학숙제로 만들던 국기함만큼이나 싸구려였다. 형은 체구가 엄청나게 컸으므로, 관도 보통의 그것보다 훨씬 넓어서 꼭 합판으로 만든 벽돌처럼 무뚝뚝했다. 그래도 관은 빈틈없이 꽉 찼다. 장의사가 능숙하게 염을 하는 동안 형수가 곡을 했다. 장의사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처럼, 형수는 딱 그 정도의 곡을 했다. 형의 이마에 형광등 불빛이 고요하게 고여 있었다. 거대한 몸으로 관에 누워 얼굴만 내놓은 형은 죽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보던 그 모습, 침대에서 자고 있던 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흔들어 깨우면 눈을 뜨고는 배가 고프다고, 배가 고파서 못 살 것 같다고 말할 것 같았다. 형은 죽은 지 16시간 만에 형수와 내가 보는 앞에서 관 속으로 들어갔다. 관뚜껑이 닫히고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