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9982

백수린 白秀麟

1982년 인천 출생.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paper_petal@hanmail.net

 

 

 

폴링 인 폴

 

 

이것은 폴에 관한 이야기다. 더도 덜도 말고 딱, 내가 아는 만큼의 폴에 관한 이야기. 이것이 폴이라는 한 인간의 실체인가 하면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타인과 조우하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그 착각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를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그것을 폴에게서 배웠다. 폴 자신은 내게 그런 것을 가르쳐준 일 없노라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므로 나는 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저 멀리 바다 건너, 나는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대륙의 한복판에서 한 여자의 남편이 되겠다고 서약하고 있을 폴.

 

나는 도대체 어쩌다가 폴에게 빠져버린 것일까.

 

폴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폴의 담임을 맡게 된 재작년 가을이었다. 처음 폴이 우리 반으로 배정되었을 때, 레벨 테스트를 담당했던 동료교사 윤은 내게 메모를 남겼다. 회화는 그럭저럭 가능하나 한글은 하나도 쓸 줄 모르는, 전형적인 교포 레벨. 첫 수업시간에 나는 폴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중국인, 일본인, 독일인으로 구성된 우리 반에 ‘재미교포 스타일’을 하고 있던 사람은 단 한명밖에 없었으니까.

안녕하세요. 폴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습니다’ 체를 미처 배우지 못해 말끝에 무조건 ‘요’를 붙이던 폴의 자기소개가 떠오른다.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는 그날도 틀림없이 내가 좋아하는 보조개를 만들며 쑥스러운 듯 “요” 하고 발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무렵 나는 그의 보조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고, 다만 그가 재미교포라는 사실에만 주목했다. 수많은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한국어수업을 할 때, 역시 가장 곤란한 부류는 교포였다.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그들에게 기초부터 다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피차 상당히 지루하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회화가 가능한 교포들은 너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해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다른 초급자에게 위화감을 주었고 학기 중반부를 넘어서면 수업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분위기를 망쳐놓기 일쑤였다. 나는 폴의 존재 때문에 수업 첫날부터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재미교포답게 싹싹했고, 유쾌했고, 수업시간에 적극적이었다. 나는 폴이 수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와 동시에 다른 학생들이 폴 때문에 수업에 방해를 받는다고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그 균형을 맞추느라 매일 진땀을 뺐다. 그런 탓에 폴과 가까워지게 된 것은 수업시간이 아니라 개인면담 때였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다른 한국어교육기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몸담고 있는 기관이 도입한 것은 ‘오피스 아워’ 제도였다. 안 그래도 많은 수업과 수당에 포함되지 않는 과한 잡무에 치이던 강사들에게는 고역이었지만, 오피스 아워의 취지는 분명했다. 학생들의 고충을 실시간으로 들어주고 수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학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인들이 개인면담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폴은 달랐다. 그는 오피스 아워이기만 하면 아무때나 나를 찾아왔고,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해 심각한 얼굴로 물어보았으며, 그러고 나서는 일상생활의 고충이라든지, 한국에서 겪은 문화충격 같은 것들에 대해 한참을 토로했다. 그것도 알아듣기 곤혹스러울 정도로 지독한 영어식 발음으로 말이다. 내가 귀찮아하는 줄도 모르고.

덕분에 나는 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그는 시카고에서 왔고,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누나와 함께 자랐으며, 많은 교포들이 그러하듯 언어장벽 때문에 사춘기시절 부모와의 골이 깊어졌다. 또, 나는 그가 한때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이제는 포기했으며 어느날 불현듯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져 이곳을 찾아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타지에서 외로웠던 탓일까. 의무감 때문에라도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누군가 필요했던 것일까. 어차피 판에 박힌 교포들의 사연이라 여기고 그가 떠드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다음 수업 교안을 짜거나, 주말에 쇼핑해야 할 물건들의 목록을 떠올리며 건성으로 들어주기 일쑤였는데도 폴은 참 열심히 나를 찾아왔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한달 사이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폴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몇 안되는 내 친구들 모두 어느덧 애엄마, 애아빠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귀찮기만 하던 폴의 방문이 언젠가부터 아주 조금씩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폴은 내가 규칙적으로 단둘이 만나는 첫번째 남자였다.

주변의 모두가 바닷물이 들고 나듯 연애와 실연을 반복하는 그 오랫동안, 나는 늘 혼자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벽을 치고 산다며 쉽게 진단을 내렸다. 좋게 말해주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지 않아 그렇다는 식으로 에두르기도 했다. 나는 딱히 나 자신을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다만 주변의 권유로 소개팅이나 맞선 자리에 나가보아도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가 별로 없었을 뿐이다.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해보라며 다가오면 두려워졌고, 반대로 자기를 이해해달라 덤벼대면 진력이 났다. 사람들이 적당한 거리를 지킬 줄을 몰라. 나는 늘 투덜댔다. 진씨는 눈이 높은가봐. 직장동료들은 수군거렸다. 오래 혼자 지내다보니 이상형의 기준만 높아가는 것이 사실이긴 했다.

물론 폴은 내 이상형의 조건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폴은 나보다 훨씬 어렸다. 나는 이제 삼십대 중반을 향해 있었고, 폴은 이십대 중반을 막 지나선 나이였다. 연상연하의 커플이 더이상 낯선 시대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여섯살 차이는 조금 많게 느껴졌다. 나는 폴을 향한 나의 감정이 제자에 대한 스승의 사랑 혹은 나이를 초월한 우정, 뭐 그 비슷한 지점에 위치한다고 믿었다. 그러는 사이 초급과정을 뗀 폴은 한국어 공부를 그만두고 한 학원에 나가 초등학생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만나 함께 술을 마시며 오피스 아워를 계속 이어갔다.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 친누나 같아요.

폴이 유리꼬에 대해서 처음으로 말을 꺼낸 것은 혀가 풀린 채로 내게 누나 같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술이 엄청 썼다. 폴은 내가 허락만 하면 누나라고 불러댈 기세였다. 분명 고마움의 표시랍시고 내뱉은 말이었겠지만 나는 평생 맛보지 못했던 상실감을 그순간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언젠가부터 폴과 만날 때면 어려 보이려고 포니테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혹스러웠다.

사실 폴을 알게 되었을 즈음부터 나는 한국어교사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패턴화된 수업과 박봉에 비해 과한 업무량 탓이었다. 몇년간의 한국어교사 생활 끝에 내가 얻은 것이라고는 수업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약간의 테크닉과 갈수록 견고해지는, 외국인에 대한 모종의 편견뿐이었다. 출신 국가에 따라 학생을 분류하여 그에 맞는 가장 능률적인 수업방식을 찾으면 그걸로 족했다. 그런 편견에 따르면 폴의 붙임성 역시 미국인 특유의 것이었으리라. 나에게 친근한 게 꼭 그런 기질 때문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도대체 어느 틈에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것인지. 나는 낭패감을 느끼며 나에게 네번째로 누나 운운하는 폴 앞에서 묶었던 머리를 풀었다.

그러나 그날의 술자리에서 나를 참담하게 만든 것은 폴이 나를 누나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폴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자각이 아니라, 폴이 내게 털어놓은 유리꼬를 향한 마음이었다. 초급반 수업을 들었던 작고 귀엽게 생긴 유리꼬. 폴이 사랑하는 사람이 유리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의 늙고 커다란 몸뚱이를 감추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을 해? 심술처럼 불쑥 그런 말이 입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질문인지는 내가 더 잘 알았다. 그러므로 답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다행히 그는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폴이 유리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유리꼬의 무엇을 사랑했는지, 그 둘이 얼마나 애틋한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기 시작했는지는 그다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둘의 사랑이 커져가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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