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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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조동관 약전』 『호랑이를 봤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참말로 좋은 날』 『지금 행복해』,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아름다운 날들』 『도망자 이치도』 『인간의 힘』 등이 있음. songsokze@gmail.com

 

 

 

홀린 영혼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나는 난생처음으로 부반장이 되었다. 이전까지 반장, 부반장은커녕 학급 간부 역할도 해보지 못한 내가 반 아이들의 비밀투표로 선출되는 부반장이 된 데는 담임선생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는 투표를 하기 전 부반장 후보로 직접 나를 추천하고 노골적으로 내게 투표할 것을 종용했다. 담임이 나를 눈여겨본 이유는 그가 내 아버지의 술친구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4년 동안 반장을 지냈고 5학년이 되어서도 어렵지 않게 반장이 된 정영호는 담임의 비호를 받는 부반장을 대놓고 견제했다. 반장이 있는 한 부반장은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얼떨떨한 상태로 눈치를 보며 지내던 어느날, 종례가 끝나고 반장의 구령에 따라 인사를 마친 뒤에 담임이 “오세호, 이리 나와!” 하고 나를 불렀다. 그는 교탁 속에서 하얀 면보자기로 싼 도시락을 꺼내 내게 주면서 “이거 우리집에 갖다줘라” 하고 말했다. 그게 그가 담임을 맡은 반의 부반장이 할 일인 듯싶었다. 영호는 담임 모르게 내게 한껏 눈을 부라렸다. 나는 담임의 도시락을 책가방에 집어넣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담임은 자전거를 타고 교문을 나서고 있었는데 다른 교사들 두엇도 함께였다. 내 아버지의 단골 술집인 기차역 앞 식당에 가서 술을 마실 게 분명했다.

실상 나는 담임의 집이 정확히 어딘지 몰랐다. 학교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읍내 북쪽, 새로 지은 집이 많은 신흥주택가에 살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나는 읍내에서 4킬로미터쯤 떨어진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고 신흥주택가는 물론 기와집이 흔하고 오일장이 열리는 가축시장 거리, 상설시장이 있는 중앙시장 거리도 가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과 학교 사이의 길을 익힌 뒤 4년 내내 그 길만 왔다 갔다 한 셈이었다.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는 읍내 중심부에 있는 극장에 갔다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주머니까지 털리고 온 이야기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너무도 실감이 나서 내가 코피로 얼굴을 온통 붉게 칠갑한 채 울면서 저녁 어스름에 돌아오기라도 하는 양 서럽고 가슴이 조이기도 했다. 이야기의 결론은 그 무서운 읍내에 되도록 가지 말고, 가야 한다면 세명 이상 무리를 지어 갈 것이며, 읍내에서 우리 마을 근처로 놀러오는 아이들이 있다면 반드시 보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읍내에 사는 아이들은 우리 동네 근처에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향교마을을 지나 읍내 중심부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중앙시장이 있는 거리로 접어들면서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읍내 중심부에는 시장 상인들이 설립한 초등학교가 있었다. 물론 중앙시장 거리는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다른 학교 아이들이 통과하는 것을 그냥 보아넘기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들에게 바칠 돈이나 물품이 없다면 성의가 없다는 이유로 두들겨맞는 것은 물론이고 들어온 입구까지 발길에 채여 땅바닥을 굴러나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걸어서 시장을 통과하려 했으나 곧바로 사나운 파수견 같은 아이들의 눈에 띄고 말았다. 그들은 이를 드러내고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뛰어 달아났다. 다행스럽게도 읍내 아이들은 오래도록 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네 영역 밖으로 내가 물러난 것을 확인한 뒤에 저희끼리 만족스러운 웃음을 주고받으며 돌아가버렸다. 나는 가방을 들고 뛰었으면서도 빈손으로 따라온 그들을 따돌렸다는 데 자긍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나면 무사히 빠져나올 자신이 없었다. 결국 중앙과 동쪽, 서쪽에 있는 다른 학교 아이들이 있을 법한 모든 장소를 우회해 읍내 밖으로 드넓게 펼쳐진 들판을 걸어서 가야 했다.

초봄이어서 바람이 찼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눈에 들어가서 손으로 비벼 닦아내느라 한참을 지체했고 이대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걸음이 늦춰졌다. 담임이 살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신흥주택가에 도착한 때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내가 태어나 살아온 농촌과 읍내 신흥주택가 골목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골목은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담으로 반듯하게 구획되어 있었고 크든 작든 집집마다 대문이 달려 있었다. 대부분 닫혀 있는 그 문을 두드려 담임의 집이 어디인지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대신 저녁을 짓는지 밥냄새가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청국장찌개 냄새에 목이 메어왔다. 도시락 심부름만 아니었다면 나는 식구들과 따뜻한 방에 둘러앉아 저녁밥상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었다. 도시락 심부름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면 한사코 부반장을 마다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찌할 줄 모르고 바람 부는 골목에 서 있을 때 자전거를 탄 내 또래의 아이가 나타나 찌릉, 하고 종을 울렸다.

“야, 너 낙남 다니는 놈 아니야? 여기까지 뭐하러 왔냐?”

읍내 아이에게 제대로 걸렸다 싶었다. 도망갈까 생각해봤지만 자전거를 타고 있는 상대라면 몇걸음 가지도 못해 잡힐 게 뻔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도 다리가 땅에 닿을 만큼 키가 컸다. 얼굴은 희었고 상고머리를 했으며 목에 갈색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자전거는 아동용이 아닌 어른들이 타는 날렵한 형태의 새것이면서 세련돼 보였다. 자전거가 아니라도 그 아이는 왕자처럼 귀티가 났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내가 더 거지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딘지 인상이 낯익었다.

“대답해봐, 이 자식아. 낙남 다니는 놈이 여기까지 왜 왔냐고?”

그러고 보니 아이의 높고 갈라지는 목소리 또한 왠지 들어본 것처럼 느껴졌다. 곧 4천명쯤 되는 낙남의 일원일 수 있었다. 내가 말없이 아이를 쳐다보는 동안 가능성은 점점 현실이 되었다.

“너, 귀머거리야 벙어리야?”

아이는 엄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제 귀와 입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게 왜 웃을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도 낙남 다닌다.”

아이가 말길을 터주고서야 나는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몇학년인데?”

5학년.”

“나도 5학년인데. 여기 살아?”

“그래. 이 동네로 이사온 지 몇달 됐다. 그게 아니라도 나는 원래 매일 읍내를 한바퀴 돈다.”

나는 봄날의 샘물처럼 희망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그런 나의 변화를 눈치챈 듯 내게 몸을 기울였다. 귀가 발갛고 이뻤다.

“나 도시락 심부름 때문에 담임 집 찾고 있는데 어딘지 몰라. 네가 좀 찾아줄래? 담임 이름이 안병수야.”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읍내에 사는 아이에게 뭔가를 부탁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가 치를 수 없는 어떤 대가를 요구할까봐 긴장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따라와” 하더니 앞장섰다. 아이가 자전거를 천천히 몰긴 했어도 따라가려면 노예처럼 뛰어야 했다. 기다렸다는 듯 담임의 빈 도시락이 덜거덕덜거덕 소리를 냈다. 내 도시락은 수저를 도시락과 따로 담아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여기다.”

아이가 나를 데려다준 곳은 깔끔한 단층주택이었다. 마당 한구석에 양은대야를 얹어서 쓰는 세면대와 수동펌프가 있었다. 아이가 스스럼없이 대문을 밀고 들어가 현관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며 라디오 소리가 새어나왔다. 흰 형광등 불빛 아래 밥상을 둘러싸고 앉아 있는 식구들이 보였다. 포마이카 상에 차려진 저녁을 보자 설움이 복받치며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집이 아닌데. 안선생은 다음 골목에 살지.”

마른 몸에 흰 얼굴을 한 중년남자가 말했다. 그는 거기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의 교사였다.

“그런데 너는 김사장 아들 아니냐? 요 앞 삼거리 이층집에 이사온?”

남자의 관심은 아이에게 향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희 집 건평이 이백평이나 된다는데 정말이야?”

나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어서 당황했고 또한 거기에 계속 있을 이유도 없어서 황급히 그 집에서 물러나왔다.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몇마디의 대화가 더 오고간 뒤 아이가 따라나와서 나를 보고는 소리쳤다.

“야, 너 운 거냐?”

아이는 내게서 가방을 받아서 자전거 손잡이에 걸었다. 놀리는 기색은 없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걸었다.

담임의 집에도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담임은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고 옷까지 갈아입고 밥상머리에 앉은 참이었다. 술기운으로 얼굴이 불콰한 그는 나를 보고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시간이 걸렸어? 집이 어딘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