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감정교육
김애란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을 위한 노트
권희철 權熙哲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인간쓰레기들을 위한 메시아주의」 「노아의 방주로부터 대홍수를 구출하기」 등이 있음. northpoletrain@gmail.com
*이 글은 웹진 『뿔』에 게재한 「기쁜 슬픔, 슬픈 기쁨」(2011.7.11)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1.
『두근두근 내 인생』에 대한 비판적 독해들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 보여주는 고통은 (삶과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예술적으로 장식되어 있거나 농담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진짜 고통’은 완화되고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순화되며 삶의 참다운 비극성은 은폐되고 만다. “고등학생 부모, 조로증 환자가 겪는 삶의 고통을 그렇게 ‘시크’하고 ‘쿨’하게 표현해도 되는 걸까”1) 혹은 “심지어는 고통을 참고 있는 그의 부모들마저 이 소설 속에서는 그저 실없이 웃고 떠들면서, 상황의 비극성을 회피하고 있는 것인지”2) 묻거나 “김애란은 이 고통과 아픔을 기분 상하지 않을 정도의 규모로 축소”하며 “약간의 눈물과 적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애잔함, 그리고 키치적 아름다움으로 이를 순화시켜 제시한다”3)고 지적하는 독해들. 이는 마치 『두근두근 내 인생』이 충분히 고통스럽지 않다는 점에 불만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두근두근 내 인생』의 결함이 텍스트의 실상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좀더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예컨대 ‘슬픔의 자리를 대신한 키치적 아름다움’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된 다음의 문장들은 과연 삶의 비극성을 은폐하는 것일까.
아버지는 자기가 여든살이 됐을 때의 얼굴을 내게서 본다.
나는 내가 서른넷이 됐을 때의 얼굴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4)
아버지가 아들에게서 보는 오지 않은 미래, 여든살의 자신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보는 겪지 못한 과거, 서른넷의 자신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아들 한아름은 조로증에 걸려 불과 열일곱의 나이에 여든살의 육신이 되어 죽음을 예감해야 했고, 그런 아들이 젊음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자신보다 빠른 속도로 늙고 죽어가는 순간을 아버지 한대수는 서른넷의 얼굴로 목격해야 했다. 여기에 세부적인 에피소드들이 첨가될수록 이 기묘한 마주봄은 이들 부자가 겪어야 하는 육체적 통증이 되고, 타인의 시선과 경제적 압박 등 고통스러운 삶의 세목들까지 거느리게 되어 더욱 아프게 되풀이해서 환기된다.
김애란(金愛爛)은 앞의 인용문에 뒤이어 “열일곱은 부모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서른넷은 자식을 잃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고 물었는데 프롤로그 이후의 『두근두근 내 인생』 전체를 이 물음에 대한 답변처럼 읽을 수도 있겠다. ‘열입곱이어서, 서른넷이어서가 아니라, 도무지 부모가 된다거나 자식을 잃기에 적당한 나이란 있을 수 없다. 그 적당하지 않음이 우리의 삶을 관통할 때의 고통의 디테일이 『두근두근 내 인생』이다.’ 그러므로 김애란의 저 문장들에서 삶의 비극성과 거기에 따르는 곡진한 슬픔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또는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자식이 되고 싶어요”(173면) 같은 문장을 두고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웃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유머의 과잉’(이명원)이라 읽는 것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자식이 되고 싶다는 것은 철없는 아이의 우스꽝스러운 소망이 아니라, “건강한 것. 형제간에 의좋은 것. 공부를 잘하는 것. 운동을 잘하는 것.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것. 부모보다 오래 사는 것”(같은 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이룰 수 없는 조로증에 걸린 소년의 절망이며, 동시에 그런 절망을 숨긴 채 부모에게 내줄 수 있는 선물을 찾아내려는 소년의 분투이기 때문이다. ‘웃기는 자식’이 되고자 하는 저 유머가 눈물겨운 것임을 알아보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아마도 『두근두근 내 인생』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그대로 따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보다는 이 작품을 지배하는 정서가 깊은 슬픔이라고, 그리고 그 슬픔이 다만 슬픔 안으로 침몰하지 않도록 분투하는 것이 『두근두근 내 인생』에 걸려 있는 내기라고 보는 편이 실상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자신 때문에 잃어버린 부모의 청춘을 되돌려주기 위해 마련한 선물, 『두근두근 내 인생』의 마지막에 첨부된 한아름의 소설 「두근두근 그 여름」조차도 순수한 기쁨의 순간들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때 우리는 그걸 했어. 그때 우린 그걸 한번 더 했어. 그때 우린 그걸 계속했어. 그리고 우리는 그게 몹시,
‘좋았어.’
바야흐로 진짜 여름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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