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배지영 裵志瑛
1975년 서울 출생.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으로 『오란씨』가 있음. beassi@hanmail.net
그들과 함께 걷다
11월의 밤이었다. 남자는 탐욕스러운 기세로 밥을 먹었다. 여자는 젓가락을 든 손을 식탁에 올려놓은 채 냄비받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천천히 밥을 먹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라 그런지 여자의 낯빛은 아침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괜찮은 거야?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기를 기다렸다. 여자는 눈을 내리깐 채 갈치조림에 넣은 무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조금만 이상해도 연락해. 무전기를 쓰든 종을 울리든.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얇은 입술을 오물거릴 뿐이었다. 남자는 두툼하게 썰어놓은 햄 두조각을 젓가락으로 한꺼번에 찍어 입에 넣었다.
그건 좀……
여자가 남자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짜증스러운 표정이 여자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그만 갖다놔. 몸에 좋지도 않고.
남자는 여자를 물끄러미 건너다봤다.
왜 그렇게 봐?
여자가 물었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올렸다.
이뻐서.
남자는 멋쩍게 웃었지만 여자는 웃지 않았다. 모욕이라도 당한 듯 얼굴을 붉혔다. 남자는 난처한 듯 미간을 긁었다. 손톱이 몇번 오가기 무섭게 살갗이 발갛게 일었다. 여자는 그걸 유심히 봤다.
시골로 갈까?
남자가 말했다.
냉동고도 만들어볼게. 당신이 원하는 것들은 천천히 나르면 그만이고. 뭐가 걱정이야.
여자가 젓가락을 식탁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거의 다 처리됐다며?
여긴 너무 넓어. 자꾸 기어나온다고.
몰라. 맘대로 해.
여자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남자는 수저를 빈 그릇 위에 포갠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설거지는 둬. 씻고 나서 내가 할게.
남자는 자상한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자는 남자의 표정을 가식적이라 여겼다. 남자는 그릇을 개수대에 올려놓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듯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양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여자는 밥을 한술 듬뿍 떠서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샤워기의 물줄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도 들렸다. 일을 마치고 나면 목욕부터 하라는 간단한 요구를 남자는 끈질기게도 들어주지 않았다. 손만 대충 씻고 나와 허겁지겁 밥을 먹곤 했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 때문에 여자는 도무지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배가 당겨왔다. 남은 밥과 국을 음식물쓰레기 통에 버리고 그릇은 개수대에 올려놨다. 여자는 싱크대를 붙들고 숨을 골랐다.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 오늘이 될 수도 있었다. 준비를 많이 했지만 불안은 줄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은 아기가 태어났던 날의 기억이 그녀를 눌렀다. 여자는 아기를 강으로 떠내려보내는 남자의 벌건 목덜미가 마음에 걸렸다. 피부병이 아닐지도 몰랐다. 어쩌면, 성병의 증거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기가 죽은 건지도 모른다고 여자는 멋대로 단죄했다.
밖에선 ‘걷는 자’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질질 끌며 걷는 그들의 발소리가 지긋지긋했다. 무리는 크지 않은 모양이었다. 소리는 곧 멀어졌다. 이어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개들마저 무리짓는 걸 좋아했고 걷는 자를 따라다녔다. 불과 이년 전만 해도 애완견으로 기르던 것들이다. 용케 집 안을 탈출하여 나온 개들은 무리를 지으면서 사나워졌다. 소리를 내며 걷는 자에겐 무조건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남자와 여자도 차로 이동하지 않을 땐 되도록 발소리나 말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밖이 어두워져 창문엔 여자 얼굴만 비쳤다. 그녀는 무표정한 자신의 얼굴을 낯설게 쳐다봤다. 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물을 틀었다. 설거지를 하겠다고 하고선 남자가 제대로 지킨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한 경기만 보고 나서, 한 캔만 마시고 나서, 책을 읽고 나서 하겠다고 하다가 결국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곯아떨어졌다.
왜 하필.
여자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세상엔 남자와 여자 단 둘뿐이었다. 여자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
남자는 욕실을 정리하지 않는 여자가 못마땅했다. 바닥엔 샴푸와 바디클렌저, 색색 병에 담긴 갖가지 화장품이 놓여 있었다. 남자는 실수인 양 그것을 발로 차 쓰러뜨렸다. 타일에 부딪히는 소리가 남자의 마음을 조금 후련하게 했다. 남자는 여자가 백화점에서 했던 행동을 잊을 수 없었다. 여자는 닥치는 대로 물건을 카트에 담았다.
에덴이 따로 없어!
여자는 소리를 질렀다.
고작 열쇠고리일 뿐인 것에 붙은 가격표를 보고 남자는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1년치 급여와 맞먹었다. 처음엔 남자도 물건을 골랐으나 곧 시들해졌다. 창문이 없는 백화점 안은 냄새로 지독했다. 특히 1층은 지하 식품매장에서 올라오는 냄새로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여자는 마스크도 쓰지 않고 백화점 곳곳을 돌아다녔다. 일을 마친 후의 남자 몸에서 나는 냄새에 예민하게 구는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남자는 비상전력이 가동되는 인근 공장의 냉장고과 냉동시설에 각종 식료품과 의료용품 등을 비축했다. 별다른 보관이 필요 없는 공산품은 필요할 때마다 가져오면 그만이었다. 부족한 건 없었다. 아니, 너무 넘쳐났다.
정작 남자를 감동시키는 건 사소한 것들이었다. 가령 따뜻한 물이나 쌓아놓고 먹을 수 있는 통조림이나 캔맥주 같은 것들.
남자는 샤워기를 틀었다. 수증기가 욕실 안을 채웠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기는 매번 그를 감동시켰다. 지붕엔 태양전지가 있고 지하실엔 석유로 작동되는 발전기도 있었다. 지하수를 이용한 별도의 상하수도 시설 역시 완벽했다. 남자도 여자처럼 에덴이 따로 없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남자는 세상 끝이 오기 전에도 몸에 냄새 풍기는 일을 했다. 하수관에 쌓인 퇴적물을 청소하고 노후한 관을 수리하는 일이었다. 떠벌릴 정도는 아니지만 준설원이라는 직업에 긍지도 있었다. 여러 일을 전전하다 얻게 된 자리였기에 애착이 컸다. 오물을 걷어내고 남자는 물청소까지 말끔히 했다. 그런다고 돈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몸만 축날 뿐이었다. 동료들은 빈정댔지만 남자는 자신만의 작업스타일을 고수했다.
그러나 일을 할수록 남자는 자신의 일이 부끄러워졌다.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야간작업 지시가 내려왔을 때, 시급으로 계산되던 급여가 재료비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3개월 단위로 계약을 맺고 강제로 며칠씩 쉬게 할 때, 남자는 부끄러웠다. 남자는 그 일을 5년 동안 했다.
동료 가운데 남자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이는 경력 20년차인 송 조장이었다. 송 조장은 아파트 하수도관 전문이었다. 그 일은 기술뿐 아니라 감이 있어야 했다. 층수가 높고 세대수가 많을수록 하수도관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송 조장이 가리킨 관의 윗부분을 전기드릴로 도려내면 정말 그곳은 기름덩어리와 오물로 틀어막혀 있었다. 송 조장은 오물을 걷어내고 분사노즐을 집어넣었다. 분사된 물이 역류해 오물과 함께 얼굴에 쏟아지기도 했으나 송 조장은 당황하지도 않고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신중한 그의 모습은 숙련된 전문의가 막힌 혈관을 찾아내 고난도 의술을 펼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남자가 감탄하면 송 조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 주택가에 있는 하수관거를 청소하고 수리하는 일이었다. 몸집이 작고 날래지 않으면 지름 80센티미터도 안되는 하수도관에 기어들어가는 일은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오롯이 남자의 몫이었다. 송 조장도 할 수 없었다. 그 점에서 남자는 자신이 준설원 B조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맨홀 아래 지하에서만 통용됐다. 일을 마쳐도 씻을 곳이 허락되지 않았다. 공공기관마저 그들에겐 샤워실을 내주지 않았다. 대중목욕탕이나 찜질방은 출입할 생각조차 못했다. 손님들의 항의를 받고 쫓겨났다는 최씨 이야기를 들으며 남자는 최씨를 탓했다. 남자는 작업차 호스에서 나오는 물로 몸을 씻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를 딱딱 부딪치며 얼굴이나 손만 대충 씻고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었다. 배어버린 냄새 때문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수 없었다. 몇년을 굴러먹은 노숙자보다 더 지독한 냄새였다. 사람들은 코를 막으며 비켜섰다. 남자는 뻔뻔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 물 묻은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얼어붙었다.
야간작업을 할 때면 남자는 출근하는 직장인들에 섞여 퇴근했다. 그들에겐 비누 냄새가 났다. 남자는 그들을 흘깃댔다. 신호등이 바뀌기 무섭게 횡단보도를 바삐 건너는 사람들,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무리를 지어 걷는 사람들. 남자는 냄새를 풍길까 멀찌감치 떨어져 가거나 벽에 바짝 붙어 빠르게 걸었다. 남자의 모습은 초라하고 볼품없었다. 키는 평균치에 한참 못 미쳤고 얼굴은 평균치를 훌쩍 넘을 만큼 컸으나 이목구비는 희미했다. 걸음걸이도 우스꽝스러웠다. 걸음마를 떼는 시절 치명적인 사고로 교정 불가능한 걸음걸이를 갖게 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어찌 보면 지병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두팔을 흔들었는데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남자는 외면했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인적 없는 골목길에 들어서면 남자는 종종 걷는 연습을 했다. 발을 쭉쭉 뻗기도 하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건들대며 걷기도 했다. 방자하게 팔자걸음을 해보기도 했다. 어느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연습을 할수록 남자의 걸음걸이는 점점 괴상망측한 모습으로 변했다.
세상 끝이 왔을 때 남자는 지하철 공사중에 터진 하수도관을 수리하기 위해 지하에 있었다. 지하철 공사장 쪽 일은 최씨 담당이었다. 그날 최씨는 몸이 아파 결근했다. 유독가스 때문인지 오물 때문인지 피부가 벌겋게 일어나더니 입안마저 헐었다. 밥은 못 먹고 술만 꿀꺽꿀꺽 삼키더니 드디어 앓아누운 모양이었다. 별 수 없이 남자가 내려갔다. 남자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일은 높은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밧줄에 묶여 20여미터를 내려가는 동안 그는 두눈을 질끈 감았다. 오줌을 지릴 뻔했다. 무사히 바닥에 내려왔으나 진득한 퇴적물과 오물이 무릎께까지 차 있었다. 흡입 호스는 힘을 쓰지 못했다. 너무 깊이 수직으로 내려와 있어서 흡입력이 현저히 낮아진데다 물이 가득 차 있어 더욱 그러했다. 양수기를 내려달라고 해서 그는 물을 먼저 퍼냈다.
암벽 무너지겠어. 조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