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창훈 韓昌勳
1963년 전남 여수 출생.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나는 여기가 좋다』, 장편소설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열여섯의 섬』 『꽃의 나라』등이 있음. kkunha@naver.com
그 악사(樂士)의 연애사
그 친구 집은 바닷가에 있었다. 집은 작았다. 탁월한 능력이 있는 목수라 해도 화장실과 부엌을 함께 만들어 넣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대신 주변이 넓었다. 문 앞으로 천막 쳐놓은 공간이 있고 그 아래로는 압력솥과 냉장고, 식기 따위가 있었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통으로 쓰는 냉동고와 플라스틱 수납박스 같은 것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너머로는 갈대밭이었다.
나는 산 중턱에 살았다. 섬에는 높은 산이 없어서 친구집까지도, 봉우리까지도 모두 십분 거리였다. 내 거처는 농장을 했던 곳이라 나무가 많았다. 비파나 황칠나무처럼 귀한 것도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이 농장이었던 때는 오래전이었다.
십여년 전 그 땅을 구입한 집안이 있었다. 그 가족은 오로지 호미와 괭이질로 비탈을 일구었다. 파낸 돌은 차곡차곡 기초와 담벼락이 되었다. 십년을 꼬박 채우고 나자 농장은 모습을 갖췄다. 그들은 당시 유행하던 오렌지와 양다래를 심었다.
그곳은 사람의 수고가 시간과 만나면 어떤 물리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한눈에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긴 시간의 노동이 무슨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지도 증명하고 있었다. 집안의 노인들과 며느리는 중노동으로 인해 병을 얻었고 오렌지와 양다래가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차례대로 눈을 감았다.
그들이 세상을 뜨자 아무도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농장을 지어놨다고 해서 나무가 스스로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과실은 단맛을 배지 못했고 전원주택 형태로 지어놓은 조립식 집은 형태가 비틀어졌다. 그저 새들만 날아와 부리질 하다가 제 짝을 불렀다. 노고가 폐허로 변한 것이다. 이런 경우 땅을 샀던 게 득인지 독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내가 그곳을 얻게 된 것은 마을에서 빈방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인은 혼자 남은 아들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높은 액수의 사글세를 원했다. 땅의 마지막 역할은 그런 것이었다.
뒷산과 묵정밭, 나무숲이 나의 배경이라면 그 친구에게는 해수욕장과 푸른 바다가 있었다. 파도소리와 갈매기, 바다직박구리도 있었다. 그와 나의 차이는 또 있었다. 내 마당에는 녹슨 바비큐 구이통과 허물어진 닭장과 빈 기름통이 굴러다녔지만 그의 마당에는 색다른 것이 있었다. 야마하 PSR–2100 디지털 키보드, 롤랜드 앰프, 롤랜드 싸운드 모듈, 이퀄라이저 같은 것들. 그것 때문에 천막을 쳐놓았던 것이다.
그런 물건들은 술병 든 여자들이 왔다갔다 하고 우주볼 조명이 돌아가는, 습습하고 퀴퀴한 지하에 있어야 옳은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예전에 그런 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야간업소 건반주자, 일명 마스터였고 몇년 전까지 그 일을 했다.
그가 악기와 음향기기를 짊어지고 지상으로 올라온 것은 노래방의 번성 때문이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노래방이 생겨나자 악사(樂士) 직업은 퇴색되었다. 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마침내 섬마을 경로잔치를 끝으로 폐업했던 것이다.
야간업소 마스터라면 마르고 신경질적인 사내를 떠올리기 마련이나 그는 그런 선입견을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우선 덩치가 씨름선수를 연상하게 했다. 힘도 셌다. 그런 탓에 직장을 잃은 비참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해수욕장 마을의 자칭 이장이었다. 그의 셈법에 따르면 그곳의 총 인구는 3.5명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노인 내외가 사는 집이 한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선배가 살았다 말았다 하는 컨테이너가 있었다. 육지의 야간업소에서 기타를 친다는 그 선배는 어쩌다 한번씩 오기에 0.5명으로 쳤다. 그 이상한 셈법대로 하면 나는 그 마을의 4.5명째 주민이었다.
사람 드문 곳에서는 벼슬하기 쉬운 법이다. 그는 단박에 개발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나에게 주었다. 주민들에게 던져준 직함은 여러개였다. 스스로는 이장 겸 어촌계장이며 노부부는 각각 노인회장과 자문위원장, 심지어 0.5명에 해당되는 선배도 마을 운영위원장이었다. 물론 면사무소와 해수욕장이 속한 리사무소에서는 인정해주지 않아서 우리의 자존심을 조금 상하게 했다.
나에게는 고양이가 한마리 있었다. 정확히는, 나에게 사람이 하나 생겼다,고 고양이가 말하는 게 맞았다.
농장으로 이사를 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해장죽(海藏竹)과 오동나무를 한팔 길이 정도 쳐낸 거였다. 명색이 섬인데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서운했다. 일을 마치자 수평선이 나타나고 저 아래 악사 친구의 작은 지붕과 천막도 보였다. 그때 내 발목에 몸을 문지르는 게 있었다. 노란 점이 있는 암컷 고양이였다.
주인 말에 의하면 길고양이 한마리가 스며들어 새끼를 낳았으며 얼마 후 뿔뿔이 흩어졌는데 무녀리 하나가 사람 쪽으로 줄을 섰다는 것이다. 그 녀석은 간혹 찾아오는 집주인에게 의지해 살다가 새로 나타난 나를 자신의 파트너로 정했다.
그에게는 강아지가 있었다. 진돗개라는데 먹성은 똥개 품성이었다. 그 녀석은 무어든 먹었다. 내가 지나가다 잠깐 서 있는 동안에도 나를 쫓아와서 운동화를 핥곤 했다. 그만 좀 처먹어라, 너는 돼지가 아니고 개야 개. 고함치는 소리가 내 집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그래도 이름은 번듯했다. 빅토르 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야.”
섬에서 외국 뮤지션 이름을 가진 개는 그 녀석이 유일했다. 하지만 빅토르 최, 네 글자를 연속 발음하기는 쉽지 않았다. 개는 주로 이인칭으로 불리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는 꼬박꼬박 풀네임을 불렀지만 나는 성을 빼고 불렀다. 빅토르. 그의 선배는 그것도 귀찮았는지 토르라 불렀다. 노부부는 백구라고 불렀다. 어떻게 불러도 혀를 빼물고 달려왔다. 모든 주민에게 각자 다른 이름으로 불린 개도 빅토르가 유일했을 것이다.
개가 음계를 이해한다면서 시범을 보인 적도 있었다. ‘도’를 치고 나서 내려다보면 빅토르는 가만히 있었다. ‘레’를 쳐도 그랬다.
“빅토르 최, 너 ‘미’ 좋아하지?”
‘미’를 치자 엉덩이를 흔들며 앞발을 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음계가 아니라 말을 이해하는 쪽에 가까웠다. 앞의 두번은 주인이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니까 저도 그렇게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악사는 빅토르가 ‘미’를 좋아하는 개라고 우겼다.
그는 자식을 가져보지 못한 탓에 강아지에게 자신의 성(姓)까지 물려주었지만 정작 밥 챙겨주는 것은 아주 성가셔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든 아니든 빅토르는 계속 먹어야 하는 개였다. 그래서 내 집에까지 얻어먹으러 올라오곤 했다. 뒷날 듣기로, 그는 목줄을 풀어주며 이런 말을 종종 했단다.
“저 위에 가봐. 지금쯤 밥했을 것이다.”
짐승에게 들볶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밥을 먹고 있으면 고양이가 현관 유리문에 코를 박고 바라보았다. 무언가 먹는 모습을 누가 보고 있는 것도 불편한데 녀석은 앞발로 문을 긁으며 애절하게 울기까지 했다. 나도 아침저녁으로 남의 밥 차려주는 신세가 되었다.
밥 준다는 소문이 고양이 세계에 퍼졌다. 몇몇 놈들이 밥그릇을 거쳐가더니 나중에는 몸집이 크고 인상도 고약한 검정고양이가 나타났다. 몇번 싸움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지붕으로 도망쳤다.
고양이가 자신의 밥을 반 정도 남겨둔 게 그때부터였다. 배가 부르거나 입맛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틀린 짐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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