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미경 鄭美景
1960년 경남 마산 출생.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내 아들의 연인』, 장편소설 『장밋빛 인생』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아프리카의 별』 등이 있음. mkjung301@hanmail.net
달콤한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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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면서 그거 하나 사와라.
버스에서 막 내리는 순간 날아온 문자를 본 추는 저도 모르게 버스 정류장 주위를 살펴보았다. 엄마는 이 근처 어딘가에 CCTV를 설치해놓은 게 틀림없다. 혹은 천리안을 가졌거나. 아니면 이 예지력은 정녕 그것들의 신묘한 약효일까.
버스에서 내릴 때면 밀려오던 빵냄새의 행복감은 엄마가 그놈들을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끝났다. 성냥팔이 소녀의 마지막 성냥개비처럼 마음까지 훈훈하게 데워주던 달콤한 냄새는 이제 추의 얄팍한 지갑을 털어가는 재앙의 냄새로 바뀌었다. 어쩌겠나. 잔 매는 맞아줘야지.
추가 들어서는 걸 본 빵집 아저씨는 달라는 소리를 하기도 전에, 오늘은 재고가 없어, 하며 카스테라를 꺼냈다. 얼마 차이 안 나는데 신선한 걸로 사다드려. 그나마 하나 남았네. 거저 주는 것도 아니면서 생색은. 누가 먹는지도 모르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건 칠천원에 주지만 재고가 없는 날엔 겨우 천원을 깎아준다. 어머님이 워낙 좋아하시니 드리긴 하는데 이렇게 하면 우리도 남질 않아, 우는 소리까지 보탠다. 이거면 나흘이나 버틸라나. 지갑에 달랑 한장 남아 있던 만원짜리를 내밀고 도너츠 하나를 집을까 망설이다 그냥 거스름돈을 돌려받았다. 설탕에 굴려낸 도너츠는 추가 가장 좋아하는 빵이다. 이렇게 사는 줄 누가 알아. 그동안 이놈의 카스테라에 들어간 돈만 해도 오십만원은 좋이 될 것이다. 지난주에도 그랬다. 버스에서 막 내리면서 엄마의 문자를 받았다. 들어오면서 그거 하나 사와라. 집에 들어서자 연속극에 완전히 몰입해 있던 엄마는 눈을 몇번 깜박여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꺼칠한 새끼 얼굴보다 손을 먼저 쳐다보았다. 아이고, 아까 나갔다가 깜박했지 뭐냐. 깜박하긴. 카스테라는 언제나 추가 집에 오는 날 바닥났다. 분심이 공복감과 섞여 자글자글 끓어오른다. 엄마가 처음부터 못 주겠다고 딱 잘랐으면 이렇게나 헛돈을 카스테라에 쏟아붓진 않았을 것이다.
손에 쥐고 있으면서 안 주는 에미가 어디 있겠어. 좀 두고 보자.
어렵사리 돈 얘기를 꺼낼 때마다 엄마는 그렇게 여운을 남겼다. 복작거리는 골목시장을 걸어오르며 추는 오늘 꺼낼 얘기를 중얼중얼 몇번이나 연습해본다. 추의 집, 아니 엄마 집은 시장이 끝나는 지점에 있다. 일층은 절반으로 나누어 화장품 할인점과 죽집에 세를 주었고 이층은 엄마가 쓴다. 그 위는 원룸인데 추는 거기서 세가 얼마나 나오는지 모른다,기보다는 엄마가 가르쳐주질 않았다. 봄가을로 세금 내고 시도때도 없이 고장나는 데 수리하고 나면 입 하나 근근이 풀칠하기도 어렵다. 숫자로 얘기하면 간단할 걸 엄마는 언제나 몇줄의 비극적 문장으로 풀어냈다. 설이 지난 후로 독한 추위는 없었지만 아직 봄은 아니다. 추는 문을 열고 들어서며 오히려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루는 난방을 하지 않아 바깥보다 더 써늘하다. 엄마는 안방에서 연속극을 보며 손바닥에 쑥뜸을 뜨고 있다가 돌아보았다.
“왔냐?”
역시나 들어서는 추의 얼굴보다는 손을 먼저 쳐다본다.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쑥뭉치들을 핀셋으로 툭툭 털어내고는 손바닥을 싹싹 비비더니 문갑 위에 올려놓은 종이상자를 소중히 안아내린다. 뚜껑을 열자 반질거리는 흑갈색 점들이 확 흩어진다. 모두 한가지 종이나 크기는 제각각이다. 이것들은 날마다 새끼를 치는 걸까. 깨알 크기부터 엄지손톱만한 것까지 촘촘하게 모여 있다. 고물거리는 그것들은 추가 보기엔 영락없는 바퀴벌레인데 엄마는 절대 아니라고 우긴다. 그럼 뭔데? 따지듯 물어보면 엄마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은근하고 달착지근해진다. 이름이야 있지. 이름을 알아서 뭐 할라고. 부를 것도 아니고. 사실 이름을 부르면서야 어떻게…… 하며 말끝을 흐렸다.
엄마 이론으로는 이게 집안에 번성하면 부자가 되는데 그건 부수적인 효과고 오래된 고질병에 이보다 더 영험한 약이 없다는 것이다. 젊어서 늑막염을 앓았다는 엄마는 빨리 걸으면 숨이 찬 것도, 환절기면 마른기침이 심해지는 것도, 날이 궂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는 것도 다 늑막염의 후유증이란다. 추의 눈엔 엄마가 남달리 허약해 보이진 않는데 추의 그런 견해를 엄마는 정 없다며 서러워했다.
왔냐, 하며 추를 희뜩 쳐다보던 것과는 달리 정이 넘치는 눈길로 고물거리는 모양새를 한동안 내려다보던 엄마가 손을 내밀어 바닥을 슥 훑는다.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손바닥이 스치는 곳에 있던 놈들을 남김없이 쓸어담는 동작은 어찌나 빠르고 정확한지 볼 때마다 새삼 경이롭다. 주먹을 쥔 채 입안에 보리차를 머금고 있다가 고개를 젖히는 동시에 손에 쥐었던 것을 입안에 탁 털어넣고 꼴깍 삼키는 과정은 숙련된 마술사의 손놀림처럼 군더더기 없이 환상적이다. 채 넘어가지 않았는지 다시 보리차를 마시려고 입을 조금 여는 순간 급변한 환경으로부터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던 놈들의 머리 부분이 입가로 삐죽 나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등으로 자연스레 밀어넣는 엄마의 표정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종교적 차원의 신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종이상자 안은 그사이 평온을 되찾는다.
처음엔 엽기적이었지만 추는 언제부턴가 이 대체의학의 잔혹함에 무심해졌다. 좁고 캄캄한 어둠속에서 바둥대고 있을 그것들의 공포를 상상하면 이상한 쾌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그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몰입되면서 중독성 있는 재미마저 느껴졌다. 아무 목적 없이(얘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반박할까?) 이토록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다니! 놈들의 먹이를 종종, 아니 거의 매번 자신이 조달해야 한다는 사실만 빼면 적의를 느낄 까닭이 없었다. 미워하며 정든다더니, 언제부턴가 이것들은 수시로 추의 눈과 뒤통수 사이에 출몰하여 바글거리곤 한다. 지칠 때나 불안할 때, 화날 때나 막막할 때,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는 무심한 순간에도.
육 센티미터쯤이나 될까. 종이상자가 높지 않은데도 그것들은 바깥으로 나오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다. 상자 가운데에 카스테라를 놓아두는 작은 접시 하나가 있는데 뚜껑을 열어놓아도 놈들은 카스테라의 자기장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면 엄마가 먹어치운 만큼 수가 불어나 있고 가장자리엔 후춧가루처럼 검고 고운 배설물이 소복했다. 화장실 정도는 구분하는 놈들인 것이다. 그것들이 엄마의 예쁜 위장에 도달할 즈음이면 엄마는 언제나 깊은 애도를 표한다.
“아이고, 이 불쌍한 것들. 난들 먹고 싶어서 먹겠냐. 늑막염이 오래되면 가슴에 물이 차서 주사기로 한 대롱씩 빼내야 된다는데, 그게 다 네 짐 아니냐. 네 생각을 해서라도 내가 참 열심히 먹는다.”
“많이 잡솨. 많이 잡수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그것들을 삼킨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은 말끔한 얼굴로 엄마는 해맑게 웃는다. 벼르던 얘기를 꺼내기에 맞춤한 분위기였다.
“엄마, 가을 오기 전에 결혼을 했음 좋겠는데, 우리 여기 들어와 살면 안될까?”
엄마는 무척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는데 눈꼬리가 심하게 쳐진 바람에 길쭉한 세모꼴이 되어버렸다.
“얘 좀 봐! 지금 그 방이 어때서. 에미 골병든 거 안 보이냐? 오죽하면 이것들 먹고 있는 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이 몸으로 며느리 밥해대라고? 새끼 낳으면 키우라고? 난 못해.”
“누가 밥해달래? 아침 안 먹고 다녀.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올게. 아니, 우리가 집안일 다 할게.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들어와 사는 동안은 애도 안 낳을게. 엄마, 그 방이 작아서가 아니라, 새해 들어서 월세를 이십이나 올려달라는데 매달 칠십을 어떻게 부담해.”
“한번 생각해봐라. 혼자 벌어서는 굶어죽기 딱 알맞으니 네 색시도 일하러 나가겠지. 여기서 같이 살면, 시간 없고 부엌일 서툰 민혜가 하겠니, 손 빠르고 맛있게 하는 내가 하게 되겠니?”
추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엄마는 다시 조근조근 따져물었다.
“며느리 야근하느라 늦는 날, 내 밥만 차려먹으면서 넌 기다렸다 네 색시 오면 같이 먹어라, 너 같으면 그럴 수 있겠니?”
“사실, 그럴 수는 없겠죠.”
“거봐라. 같이 살다보면 결국 나만 나쁜 사람 되는 거야. 서운하다 생각 마라. 같이 산다는 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소린데, 꼭 남자가 집 마련해야 되는 법이라도 있니. 네가 키가 작냐, 인물이 빠지냐. 남의 집 자식들은 연애도 계산속 있게 하더만, 내 복에……”
엄마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마른기침을 쏟아낸다. 기침소리는 늑막이 아니라 목구멍 끝에 매달려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거절당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아니, 말도 못하게 서운하다. 법정 전염병 환자라도 이렇게 대놓고 어깨를 돌려세우는 건 아니지. 울컥했지만 더 밀어붙였다간 아예 판을 깨게 생겼다. 사실 집문제야 엄마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처음 듣는 얘기도 아니다. 상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을 먼저 하라. 일단 거절당한 후 진짜 원하는 걸 꺼내라. 협상 전문 실용서에서 읽은 얘기다. 추는 서운한 낯빛을 감추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그건 됐고. 엄마, 오백만 빌려줘. 그냥 달라는 거 아니야. 딱 일년만 빌려줘. 나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고 일어설 거 아냐. 일년 뒤엔 원금하고 은행이자 쳐서 한번에 돌려줄게. 각서라도 쓸게. 아들 한번 믿어봐.”
나름 콧소리에 어깨도 살짝 흔들어보았다. 오백 얘기도 처음은 아니다. 다만 여태까진 유산 먼저 주는 셈치고 그냥 달라 했었다. 카스테라 사들고 다니며 무던히도 실랑이를 했지만 엄마는 맷집 좋게 버텨왔다. 결혼할 아들이 홀어머니 모시고 살겠다는 걸 거절한 판에, 일년 후에 이자까지 쳐서 갚겠다며 빌려달라는 것마저 안된다 하지는 못할 것이다. 추의 계산이었다.
그랬는데 엄마는 세모꼴 눈으로 추를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석가모니와 가섭이 이러했겠지. 그 눈빛은 백마디 말을 담고 있었고 그 한마디 한마디가 눈에서 눈으로 전해져왔다. 차라리 꽥 소리라도 지르면 이렇게 힘이 빠지진 않겠다. 엄마는 상자 위로 머리를 굽히고는 아기 어르듯 콧소리를 내며 카스테라 한조각을 접시에 놓아준다.
“오백만원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는 오빠가 카스테라 사왔네. 많이 먹소, 많이 먹어. 예쁜 새끼들.”
가까이 있던 놈들부터 달려들어 카스테라 조각에 머리를 박기 시작한다. 카스테라는 금세 까맣게 끓어오르는 액체처럼 보인다. 몸에 비해 유난히 작은 머리통은 막무가내 들이밀기에 딱 좋은 구조다. 그렇긴 해도 어디에나 뒤처지는 놈들이 있다. 기웃거리다 도무지 틈을 찾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놈이 하나 보인다. 재빠르게 오가는 것들 사이에 가만히 멈추어 있는 놈을 지켜보다 가운뎃손가락으로 꾸욱 눌러버렸다. 깨알만한 머리로는 생각이란 걸 하지 말아야지, 이놈아. 누릿한 체액이 터져나온다. 미약한 몸부림마저 없다. 엄마가 등을 찰싹 때리며 비명을 질렀다. 얘 좀 봐! 어찌나 아픈지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건 추다. 던져준 먹이도 못 챙겨먹는 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