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사심없는’ 비평은 어떻게 가능할까

한기욱 평론집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복도훈 卜道勳

문학평론가. 평론집으로 『눈먼 자의 초상』이 있음. nomadman@hanmail.net

 

 

2031그간 한기욱(韓基煜)의 평론을 틈틈이 읽어왔다. 그러나 내가 그의 비평에 대해 품었던 한두가지 오해가 이번 그의 첫 평론집을 읽으면서 다소 교정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여기에 하나의 단서조항을 덧붙여야 하겠다. 그것은 한기욱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인 내가 생각하는 문학과 그가 생각하는 문학의 입장 차이가 당분간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차이가 앞으로 비평의 어느 교차점에서 어떤 식으로 다시 만날지, 아니면 또 나란히 평행선을 그을지 당장은 알 수 없겠지만. 그러니 이 짧은 리뷰는 한기욱의 비평에 대화를 건네는 첫 시도라고 해도 좋다.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창비 2011)를 읽으면서 나는 한기욱의 비평이 운신하는 폭이 꽤 넓고, 매우 유연하다는 인상을 새롭게 받았다. 소설의 핵심적인 메시지만큼이나 그것이 발화된 맥락을 곰곰이 에둘러 살펴가는 섬세함과 조심스러움, 그리고 작품의 성취도에 대한 소홀함 없는 분명한 평가는 이 평론집에서 내가 새삼스럽게 다시 배운 비평의 덕목이다. 3부에 실린 외국문학에 대한 글도 그렇고 국내작가의 경우에도 김영하(金英夏)와 하성란(河成蘭)에서 출발해 김연수(金衍洙)와 배수아(裵琇亞)를 거쳐 공선옥(孔善玉)과 전성태(全成太)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모더니즘 소설에서 리얼리즘 소설까지, 한기욱이 다양하게 펼친 독법의 풍경들은 나 또한 호기심을 품고 한걸음 디디게 할 만큼 적잖이 매력이 있었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배수아의 「올빼미의 없음」을 평하며 “탁월한 스승에 대한 ‘영향의 불안’(anxiety of influence)”(136면)을 언급할 때는 평론집 전반에 걸쳐 고유명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스승에 대한 제자의 은근한 속내마저 환기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한기욱의 비평에서 가장 문제적이고 논쟁을 살 만한 부분은 1부에 실린 글들이겠다. 87년체제론에 입각한 리얼리즘 문학의 유연한 계승, 백낙청()의 ‘시적 경지’라는 리얼리즘의 요체에 대한 적극적인 문학적 적용과 옹호, 6·15선언의 정신과 그것의 문학적 구현. 한기욱은, “다시 시작해야 할 것과 계승해야 할 것”을 분별하지 않으면서 “문학의 무력함과 불가능성을 철저하게 인식하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 비평계 일각에 대해 선을 긋는다(9면). 2000년대 문학이 이전 문학과 단절된다는 ‘젊은 평론가들’의 시각과 입도선매(立稻先賣)의 전략에 대해 그가 거부감을 드러낼 때, 그 젊은 평론가들 중에는 나도 끼어 있으리라. 한기욱은 97년체제론의 근거가 되는 IMF사태의 “표층에서 드러나는 변화”를 “빙산의 일각”으로 간주한다(107면). 그러나 ‘젊은 평론가들’ 가운데 한명인 나는 이 ‘빙산의 일각’과 부딪친 충격에서 문학을 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나도 6·15선언이 가져다줄 “변화의 심대함”(같은 면)을 삶과 문학으로 체감하면 좋겠다. 전술적으로라도 한기욱은 다른 입장에 대해 더 유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한기욱이 그간 10년 동안 써온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런데 주로 1부에 실린 최근의 글들로 올수록 두드러지는 말이 하나 있다. 내가 그의 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감동적으로 읽은 대목에 나오는 이 말은 ‘사심없음’이다. 내 생각에 ‘사심없음’은 한기욱의 비평이 은밀히 지향하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이때 ‘오늘을 산다는 것’은 그저 현재를 산다는 뜻이 아니다. 충만한 순간을 산다는 것이고 그 순간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는 뜻일 것이다. 따라서 ‘오늘’은 시간 개념만이 아니라 어떤 존재의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삶의 경지’를 뜻한다. (…) 오히려 ‘고해 같은 세상살이’ 속에서도 ‘살아 있음’ 자체가 ‘생생한 기쁨’임을 깨닫는 사심없음의 경지랄까. 문학이란 이런 삶다운 삶이 실현되는 ‘시적’인 순간의 설렘과 떨림을, 고해 같은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을, ‘오늘’이라는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예술이 아닐까.”(27면)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 2008)의 한 대목을 고평하는 부분에서 언급된 ‘사심없음’은 속물의식과 냉소주의에 맞서는 촛불항쟁의 “시민의식”에서도 볼 수 있고(67면), “새로운 문학의 단초를 찾”(87면)을 때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비평가 한기욱이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삶과 문학이 분리되지 않는 ‘사심없음’의 경지! 이 사심없음이 매슈 아널드(M. Arnold)의 비평에서 온 것이든, 백낙청의 리얼리즘론에서 온 것이든, 『시경(詩經)』의 사무사(思無邪)에서 온 것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히 독야청청한 문학론은 아닐 비평의 이 ‘사심없음’마저 비틀 수 있는 대담함이 한기욱의 비평에 더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