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013년체제 논의의 진전을 위하여
새로운 사회모델과 도시비전
주택정책과 재정비사업을 중심으로
변창흠 卞彰欽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저서로 『저성장시대의 도시정책』 『위기의 부동산』, 『토지문제의 올바른 이해』(이상 공저) 등이 있음. changbyeon@sejong.ac.kr
1. 서울시에서 시작된 2013년체제의 실험
지난 1월 30일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은 취임 후 3개월간의 경청과 토론과정을 거쳐 뉴타운사업과 재정비사업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발표했다. ‘서울시 뉴타운・정비사업 신정책 구상’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정책에서는 기존의 소유자 중심, 사업성 기준의 전면 철거형 정비사업을 거주자 중심, 주거권 기준의 공동체・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박시장은 뉴타운・재개발사업으로 고통받는 시민에게 시정책임자로서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많은 언론과 시민들은 2002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시작했던 뉴타운정책이 10년 만에 후임 시장을 통해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업임이 확인되었으며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에 발표된 재정비정책은 서울시의 의지만으로 절대로 실현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중앙정부가 기존의 뉴타운・재정비사업에 대해 인식을 전환해야 할 뿐 아니라, 서울시가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한 정비사업이 추진 가능하도록 예산을 지원하고 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개정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의 정책 발표 이후 국토해양부는 뉴타운사업의 매몰비용 부담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뉴타운사업과 정비사업은 토지 등의 소유자가 조합을 구성해서 추진하는 민간사업이기 때문에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 매몰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비구역의 과다지정에 대해 우리 사회 모두가 책임을 공유하고 비용도 분담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입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이명박정부와 시민후보 출신 서울시장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넘어 재정비사업과 주택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뉴타운사업이 종전대로 추진되면 많은 문제점이 생긴다는 데는 누구나 동감하지만 이 사업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의 권력 재편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이후 경제활성화와 부동산시장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추진해온 정책수단들을 폐기하고 서민의 주거안정을 보장하도록 전환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정치세력이 국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서울시는 전국의 도시와 주택 분야에서 발생한 문제와 모순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이며, 동시에 이 문제 해결의 압력이 가장 큰 지역이기도 하다. 뉴타운사업은 서울시에서 시작되어 국회의 법률 제정을 거쳐 도시재정비촉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확대됐지만, 서울시에서 뉴타운사업의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기에 그 해법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선 것이다. 다행인 것은 박원순 시장이 그 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서울시는 도시 및 주택정책에 관한 한 2013년체제의 실험장이자 선도적 공간이 되고 있다.
2. 도시부동산정책에서 구체제의 극복 과제
87년체제의 부동산정책과 그후
사회경제 분야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체제로 흔히 거론되고 있는 것이 87년체제다. 한국사회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대표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성과를 낳았지만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민주화세력도 독재와 반민주에 대한 저항을 1차적 목표로 형성되었기에 대안적인 사회경제질서를 도출해내는 주체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사회적 평등과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을 위해 새로운 비전을 설정하고 실천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87년 민주화투쟁 이후 활동가들은 노동, 농업, 도시 등 각 분야 실천의 현장으로 뛰어들었고, 연구자와 대학원생 등은 사회경제체제의 모순 극복과 대안 마련에 전력하게 되었다. 이른바 학술운동이라 불리는 연구실천운동을 기치로 내건 학술단체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결성되었다.
도시부동산 분야에서 1987년 이후의 제도적 기반은 이러한 실천적인 노력보다 사회경제적인 여건 변화 때문에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3저호황’으로 부동산투기와 주택가격 폭등, 전세대란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1989년 분당, 일산, 산본 등 수도권 5개 신도시 건설과 주택 200만호 공급 구상을 발표했다. 그해 정기국회에서는 개발이익환수제,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로 대표되는 토지공개념 3개 법률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대규모 개발사업을 통해 개발이익을 활용하여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주택을 공급하는 신도시 건설방식은 그후부터 최근까지 ‘팽창시대’에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주택의 대량생산과 이를 뒷받침하는 수요촉진정책, 분양주택 위주의 공공주택정책 등이 이 시기 정부 조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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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봄호 새로운 사회모델과 도시비전변창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