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한국의 중산층을 다시 생각한다

 

 

구해근 具海根

미국 하와이대학 사회학과 교수. 국내 소개된 저서로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등이 있음.

hagenkoo@hawaii.edu

 

*이 글은 2010년 필자가 서울대 규장각 국제한국학센터 초빙연구원으로 있으며 조사 연구한 결과에 크게 도움을 받았음을 밝혀둔다.

 

 

중산층의 위기가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1990년대말 외환위기 이후 그리고 최근의 세계적 경제불황 속에서 한국 중산층이 소멸 또는 몰락하고 있다는 인식은 정치권과 미디어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많은 공감과 함께 연구와 논의가 있어왔다.1)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중산층 논의는 대체로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왔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논의가 중산층을 어떤 고정적인 성격의 집단으로 간주한 채 그 집단에 속한 사람의 수가 얼마나 줄어들고 있는가에만 관심을 집중했을 뿐, 그 집단의 내부구성이나 사회적 성격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논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이 강조하듯이 중산층은 결코 어떤 객관적 지표에 의해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고, 한 사회의 전체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와 성격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사실 경제적 기준에서만 본다면 현재 한국 중산층의 평균소득이나 생활수준은 과거에 비해 결코 낮지 않을 것이며, 또한 소득분배 면에서 규모를 측정해보더라도 2009년 현재 전체 가구의 67%가 중산층에 속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2) 좀더 체계적인 최근 분석에 의하면 중산층 비율은 2003년의 60.4%에서 200955.5%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다.3) 이러한 여러 통계 수치들은 확실히 지난 몇년간 한국의 중산층이 축소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러나 엄연한 사실은 아직도 한국에서는 중산층이 두꺼운 층을 형성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층에 속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중산층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중산층은 분명히 와해 또는 몰락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가 단지 많은 중산층 가정의 경제상태가 악화되어 하층으로 떨어져나간다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중산층은 단지 양적 축소만이 아니라 중대한 질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즉 현재 한국 중산층은 과거 경제개발기에 존재했던 비교적 동질적이고 유동적인 사회계층에서 점차 내부적으로 분화하면서 사회이동의 통로가 막힌 계층집단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 안정세력이 아니라 좌절감과 불안이 고조되고 정치적으로 예측하기 힘든 사회세력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한국 중산층의 위기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글로벌시대에 이들이 놓인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맥락을 분석하고, 이 시대에 중산층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이 글의 목적은 필자가 2010년과 2011년 여름 한국에서 관찰과 비공식 심층면접을 통해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중산층의 변화를 포괄적인 각도에서 분석하는 데 있다.

 

 

1. 경제개발시대의 한국 중산층

 

중산층의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계층의 형성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사회계층/계급은 역사적 소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한국의 중산층은 1960~80년대에 형성된 경제발전의 산물이다. 이 시기의 급속한 산업화는 많은 관리직과 전문직 그리고 사무직 종사자를 생산해냈고, 그와 함께 도시 자영업자도 증가함으로써 자연스레 중산층의 중추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한국 중산층은 이러한 경제적 변화에만 의해서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여러 의미에서 중산층은 담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중산층은 정통적인 사회학 개념인 중간계급과 달리, 상반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계급 개념이라기보다 경제발전에 따른 생활수준의 향상과 생활양식의 변화를 나타내는 비맑스주의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중산층 개념의 등장은 박정희정권의 경제발전 지상주의와 관련이 있고, 이른바 ‘중산층 사회’를 이룩함으로써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군사정권의 전략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중산층 개념이 순전히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서만 생겨난 것도 아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실제로 국민 대부분의 생활수준을 현격하게 향상시켰고, 자신의 경제적 위치가 부모세대와 그리고 자신의 과거 상황과는 무척 달라져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중산층은 이러한 개인의 계층상승의 경험과 열망을 대변해주는 개념이었다.

이처럼 중산층은 경제가 발전해가는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1980년대까지 한국의 중산층은 경제적 위치가 크게 다르지 않은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돼 있었고, 신분상승을 열망하는 많은 서민에게 중간층 또는 주류층에 진입할 수 있는 사회적 이동의 통로를 제공했으며 비교적 열려 있는 계층이었다. 박정희정권 시절 많은 국민이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너도 나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꿈을 품었던 것은 일종의 사회계약(social contract)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 암묵적 계약은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고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기꺼이 경제발전에 기여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중산층이 이처럼 사회적・정치적 안정세력으로 자리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가 열린 집단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중산층으로의 진입이 비교적 쉽고, 이를 통한 사회적 상승이동의 기회가 많은 구성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조건이 1970~80년대 한국에는 존재했다.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었고, 일단 중산층 성원이 된 후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직장에서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하고 봉급이 오르고 집도 마련하고, 또 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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