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2013년 이후 무엇을 먹고살까
김병준 金秉準
국민대 교수, 정책학. 전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 저서로 『높이 나는 연: 성공하는 국가, 성공하는 국민』 『지방자치론』 등이 있음.
정대영 鄭大永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저서로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 『신위험관리론』 등이 있음.
홍종학 洪鍾學
가천대 교수, 경제학. 저서로 『한국경제 새판짜기』(공저), 역서로 『성장친화형 진보』 등이 있음.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본지 편집위원. 저서로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경제』 『중국 농업, 동아시아로의 압축』 등이 있음.
이일영(사회) 안녕하십니까. 2012년 올해 두번의 선거가 한국사회에 전환점을 만들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큰 변화의 흐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집권세력이 붕괴에 가까울 정도로 처절하게 무너지고 있어서 오히려 걱정이 되는 상황이죠. 자칫하면 성찰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진보개혁세력이 정치적으로 자만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권이 정책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는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고요. 젊은층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이 좌절과 분노 속에서 사는데, 이들의 말을 간단히 표현하면 “먹고살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복지나 분배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다행스럽지만 그러다보니 먹고사는 문제의 원천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고민이 소홀해진 것 같아요. 아마 누구든 국정을 책임지게 되면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피해갈 수 없을 텐데,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일선 현장에서 애써오신 선생님들을 모시고 말씀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위기의 본질은 뭔지,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성장을 기초로 해서 무엇을 먹고살아갈 건지 기탄없이 토론해보려 합니다.
참여정부 임기 내내 정책분야에서 중책을 맡으셨던 김병준 교수님, 한국은행에서 오랫동안 재직하며 금융과 실물경제를 다뤄오신 정대영 선생님, 경제전문가로서 학계와 시민운동계에서 활동하시는 홍종학 교수님, 이렇게 세분 모셨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 정부에서 고생이나 안하셨는지,(웃음)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金秉準
국민대 교수, 정책학. 전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 저서로 『높이 나는 연: 성공하는 국가, 성공하는 국민』 『지방자치론』 등이 있음.
김병준 저는 현정권에 대해 일종의 동병상련 같은 게 있어요. 그들이 안고 있을 고민, 그게 꼭 내가 정부에 몸담았을 때 했던 고민의 연속선상에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요. 상당히 괴로울 거예요. 어떤 건 해결이 가능한 부분이 보이기도 하는데 어떤 건 아예 캄캄한 때가 많거든요. 한편으로는 걱정도 크죠. 이전 정권에 있던 사람들과 고민을 공유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이일영 특별히 고생하신 건 없습니까?
김병준 고민을 공유하는게 아니라 조사한다고 해서,(웃음) 거의 1년 정도 괴로운 시절을 보냈죠. 저 자신보다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더 괴로웠죠. 어떻게 보면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당혹스럽고 고생스러웠던 건 사실입니다.
정대영 저는 운이 좋다면 좋다고 말할 수 있는데, 참여정부 말기에 독일에 나가서 작년 봄에 들어왔습니다. 해외에 머물면서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수 있었고 우리 경제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덕분에 한국경제에 관한 조그만 책도 하나 썼고요.
홍종학 저는 이 정부 내내 너무나 편했습니다. 저희 같은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에(웃음) 조용히 지냈고 다행히 공부도 좀더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현정부 출범할 때 이 정부는 틀림없이 실패할 거라고, 서민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아까 김교수님 말씀대로 이전 정부들에서 고민해온 게 있는데 현정부는 들어서자마자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이를테면 미국의 보수주의 철학을 그대로 가져왔거든요. 이들은 그동안 보수주의 철학을 구현 안했기 때문에 한국경제가 어려웠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저희가 보기에는 문제의 본질에서 너무나 벗어난 터무니없는 얘기죠. 가뜩이나 구조적 모순이 있는데 이런 보수주의 정책을 쓰면 더욱 힘들어질 테니까요. 불행히도 그 예상이 현실화되는 것을 목도해야 하는 게 너무나 안타깝죠.
2013년체제의 시대적 과제
이일영 구체적인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간단히 여쭙고 싶습니다. 어떤 집단이든 정권을 맡으려면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여러 문제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데, 제일 중요한 건 뭐고, 올해와 내년을 거치면서 중요한 의제로 부각되어야 하는 게 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鄭大永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저서로 『한국경제의 미필적고의』 『신위험관리론』 등이 있음.
정대영 우리 경제는 각 부문의 심각한 양극화와 불균형 등 워낙 고질적인 문제가 많아서 몇가지로 모으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여기에다 어떤 부분은 과도하게 신자유주의식 경쟁에 노출돼 있는가 하면 다른 부분은 과거와 같이 보호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노동시장만 보더라도 전문직이라든가 공공부문은 우리 경제능력에 비해 아주 후한 대우를 받고 있고,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는 마치 허허벌판에 서 있는 상태죠. 금융부문도 은행들은 과보호 상태고, 서민 금융기관은 심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일정한 방향으로 전체가 잘못됐으면 해결이 쉬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불균형 때문에 한쪽 방향의 정책만으로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게 더 큰 어려움입니다.
김병준 쉽게 말해서 제일 큰 과제, 우리가 궁극적으로 풀어야 할 것은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일자리고 일자리를 통해서 오는 수입이죠. 구조적으로 일자리가 잘 생기지 않게 되어 있는데다 노동시장이든 자본시장이든 투자든 소비든 다 왜곡되어 있으니 더 어렵죠. 장년과 중년 고용률은 안정적이거나 좀 올라갔는데, 청년층 고용률은 떨어지고 있어요. 노동이나 수입의 질도 상당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젊은 세대에서 분노가 일어나는 거죠.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이 그 분노에 올라타려 하고, 야당도 다분히 선동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치, 사회, 경제 전체가 다 무너지고 있죠. 이런 것이 청·장년층의 먹고사는 문제, 일자리 문제로 옮아오는 것이고, 이것을 어떻게든 풀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홍종학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는데 정부는 뭘 하고 있느냐는 거죠. 정부는 과거의 정책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1980년대의 경우에는 대기업이 성장하면 자연적으로 고용이 늘어났어요. 저희가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하더라도 상당수 대기업이 매년 몇만명씩 인력을 뽑아서 훈련시키고 했단 말이죠. 정부가 대기업에 지원을 해주면 그것이 자연적으로 고용증가로 이어지는 체제였거든요. 지금도 대기업에 대한 지원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의 경우에 실효세율이 10퍼센트밖에 안된다는 얘기도 나오고, 투자세액공제를 몇년째 없애자고 하는데 못 없애고 있어요. 그런데 예전에는 투자가 늘면 고용도 늘어났지만 지금은 투자가 늘어도 더이상 고용이 늘지 않는데, 정부는 엉뚱한 데 신경을 쏟고 있단 말이죠. 민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유주의정책이 들어오니까 민영화를 했죠. 그렇다면 민영화를 하니까 고용이 늘어났느냐, 자본과 재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니까 고용이 늘어났느냐? 오히려 대기업의 고용은 줄어드는 상황이 됐죠. 시대가 바뀌었는데 정부는 계속 옛날 정책을 고수하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이일영 재벌이 과대하게 커졌는데, 많은 고용을 만들어내지도 못하면서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일터를 빼앗는 형국이에요. 그런데 과거의 정책 프레임은 그대로 작동해서 대기업을 보호해주고 있죠. 이런 과정이 이명박정부 들어 심화되면서 이제는 국민 대중의 심리적 저항선을 넘어서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김교수님께서 아까 동병상련이란 표현을 하셔서 말인데요.
김병준 참여정부도 죄가 많죠.(웃음)
이일영 그래서 여쭤보고 싶어요. 재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프레임이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어온 거 아닌가, 민주정부 10년과 이명박정부가 뭐가 다른가 하는 질문은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아요.
김병준 나중에 우리가 길게 논쟁해야 될 대목이기도 하죠. 참여정부 때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경제력 집중 문제에 과연 정답이 있는가. 주요 대기업들이 매출의 80퍼센트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는 마당에 굳이 쫓아가서 경제력 집중 문제를 물고 늘어져야 되겠는가 하는 시각도 사실 내부에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기업지배구조 문제에 해답이 있는가. 현대, 삼성이 아무리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지배구조지만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굴러간다고 하니, 우리 상식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겠느냐, 그런 데에 대해 굳이 교과서대로 해야 되느냐 하는 유보적 의견도 있었죠. 그러나 이견이 전혀 없던 것은 공정거래였어요. 이것만큼은 정말 제대로 하자고 했는데, 결국 그도 쉽지 않았습니다. 출자총액제한도 점차적으로 풀렸죠.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걸 전제로 했지만요.
가장 마음에 걸리는 문제는 MB정부 들어와서 계열사가 무진장 늘어났다는 겁니다. 이게 사실 참여정부 말부터 시작됐어요. 자기들끼리 내부거래 하고 친인척 회사를 세워 일감 몰아주기 하는 기업들을 공정거래 차원에서 엄격하게 다뤘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단 말이죠. 현대기아차부터요. 참여정부 막판에 이런 부분에 주의를 덜 기울였다는 반성을 합니다. 그때 대기업 계열사 내부거래로 곤란을 겪은 협력업체 종업원들이 저한테도 메일을 보내오거든요, 당신들이 잘못해 회사가 구석에 몰려서 결국 내가 일자리를 잃었다고. 그런데 요즘 대기업의 계열사가 몇십퍼센트 늘어났다, 이런 보도를 보면 가슴 아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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