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양현아 『한국 가족법 읽기』, 창비 2011

가족법을 통해 한국사회를 사유하다

 

 

김수진 金秀珍

서울대 여성연구소 책임연구원 soojinhara@gmail.com

 

 

4657양현아(梁鉉娥)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한국 가족법 읽기: 전통, 식민지성, 젠더의 교차로에서』는 100여년에 걸친 한국 가족법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박사학위논문을 포함하여 20여년간 저자가 쌓아온 연구와 실천의 깊이를 더하여 숙성된 언어와 큰 울림을 간직한 두툼한 역작으로 탄생한 이 책은,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의 시선을 통해 한국 여성됨(과 남성됨)의 사회적 생산기제를 밝힐 뿐 아니라, 한국 근대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촘촘하게 펼치고 있다.

『한국 가족법 읽기』는 법을 텍스트이자 상징체계로 다루는, 우리 학계에서는 드문 법사회학적 접근을 취한다. 저자에게 법문은 단순한 “분쟁해결의 도구라는 협의의” 의미이거나, “국가가 합법적 절차에 따라 제정한 실정법”이기보다는, 역사의 기록이자 한국의 가족질서를 보여주는 문서자료다. 나아가 성별을 초월한 보편적 규범이 아니라 성별의 질서를 내장한 텍스트, 곧 “사람들이 자기 심성을 다스리는 규범체계이자 여성들이 그 안에서 살던 은유적 공간”(95면)이다.

하지만 이 책이 학계에 던지는 울림은 다른 데 있다. 한국사회의 심층 구조를 이루는 가족이라는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가져오는 지역성(locality)과 역사성(historicity)이라는 열쇠말이 그것이다. 저자는 서구의 가족법 이론이나 페미니스트 연구를 한국에 단순 적용하는 식의 태도를 철저히 경계한다. 대신 저자는 “전통과 관습으로 지배되어온 역사성을 띠고” 있는 한국 가족의 고유한 성격에 착목하여 가족법에 투영된 질서와 논리를 그 내부에서 분석해 들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서구의 가족법과 페미니스트 연구가 전제하는 소가족 모델로는 한국의 친/가족 체계를 포괄할 수 없다. 한국의 경우 핵가족 가구형태가 존재하지만, 실제 이 소가족의 성격은 친/가족의 맥락에서 작동하며, 부부간 관계를 넘어 수평적・수직적 관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친/가족은 서구의 가족법 연구가 전제하는 것과 달리, 사적 영역과 중첩되면서도 그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는 공간으로, 공사(公私) 이분법 구도를 가로지르는 어딘가에 있다.

여기서 저자가 가장 고투하여 일궈낸 성과는 이 전통과 관습이 식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저자는 가족법개정운동이 다시금 일어난 1990년대말, 유림(儒林)과 페미니스트 모두 호주제를 한국의 전통으로 당연시하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호주제를 둘러싼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적 인식틀을 수정하는 데 기여했다. 식민지시대의 관습 조사, 가족법개정운동을 둘러싼 담론들, 나아가 조선 후기 종법(宗法) 연구를 치밀하고 날카롭게 묘파하는 저자의 해체적 분석을 통해, 우리는 일제시기 관습에 대한 일본당국의 해석이 우리의 전통을 역사가 소거되고 동결된 무엇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음을 깨닫게 되고, 나아가 일본식 ‘가()’제도와 혼융된 호주제의 모습을 우리의 전통으로 상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 가족법 읽기』는 가족법을 여성으로서 읽는다. 저자는 이것이 여성의 입장을 전제로 법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안정된 여성의 입장이라는 것이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며, 제도와 이념에 앞서 여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제도와 이념이 여성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접근은 오히려 가족법에서 구성되는 ‘여성’이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이다. 이 책은 이 질문을 시종일관 제기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친/가족이 어떻게 여성과 남성을 생산하는 가장 핵심적인 장소이며, 탁월한 주체 생산의 기제가 되는지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저자는 친/가족 체계를 두가지 측면, 즉 신분관계와 재산관계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 본다. 가족법상에서 신분관계란 “가족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위치’”로서, “이 위치를 구성하는 권리와 의무에 수반하는 역할과 태도”를 규정한다(364~65면). 혈족, 친족, 호주제도, 부모자식관계, 재산상속에 대한 규정을 통해 여성의 위치와 역할이 만들어진다. 여성은 이 가족법의 질서에서 남성과 다른 신분에 속한다. 그러므로 애당초 남녀 ‘차별’은 여기서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들 간의 비교와 경쟁이 문제된다. 그러므로 “여성에게 하나의 세상”인 친/가족이라는 공간은 “남성과 철저히 분리된 채, 여성 간의 비교와 경쟁이 일어나는 정교한 젠더정치의 장”이며, “여성을 여성이 되게끔 하는, 즉 길들이고 생산하고 욕망하게 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이다(42~43면).

그렇다면 이 가족/사회적 질서는 여성을 왜 이렇게 만들어내는가. 저자는 이것이 부계계승(父系繼承) 제도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호주제를 폐지하기 전까지 가족법은 단적으로 부계를 구성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기제였음을 통렬히 드러낸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여성들은 이 가족법에서 성()과 본(), 금혼범위, 제사, 족보, 호적 중 어느 것도 자신의 계통을 가지지 못했다. 한마디로 여성은 가족법에서 “존재는 하지만, 계통을 이을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제도적 무능력자인 것이다. 이 부계계승은 한국사회 가부장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한국 남성됨과 여성됨의 제도적 모체다. 그러므로 제8장의 제목인 ‘호주제도 폐지, 그 산을 옮기다’라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가족법개정운동은, 저자의 지적대로 2005년 호주제 폐지 이후 ‘부계성본주의(父系姓本主義)의 완화된 유지’를 담은 개정법을 만드는 데 그치긴 했지만, 한국 페미니즘의 고유한 문제영역을 포착한 지역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사상이, 한 시대가 그 사회가 제기하는 질문에 대해 그 사회의 사유와 언어로 답하고자 하는 지식과 지혜의 총합이라 한다면, 이 책은 그 이름에 값하는 무게를 가진다. 저자는 한국의 역사에서 가족적 혈통이라는 상상적・사회적 질서 속에서 여성들이 어디에 존재(또는 부재)했는지 낱낱이 해부하고 드러냈다. 그리고 한국의 페미니즘은 이 동결된 전통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무엇을 놓아야 할지 차분히 묻는다. 저자가 가리키는 곳은 “근대의 이름으로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과의 교감을 잃지 않는” 우리의 전통이다. “그 교감을 모계의 조상과도 만들어내는 노력”이며, “조상 간의 평등을 복원”하고, “기억되지 않았던 모계조상들과 접촉하는” 제도를 만들어냄이다(530~34면).

저자가 벼려온 이 사상의 실마리는 어디서 왔을까. 자신의 책이 자신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들과의 오랜 대화라고 한 저자의 말이 그 기원을 짐작게 한다. 저자는 여성의 핵심적 위치인 어머니를 숭배하거나 신비화하지 않으며 희생자로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질문하고, 그곳에 있는 그들에게 말을 걸며, 그들의 말을 들었다. 그 (숨겨진) 말이 우리의 삶과 가장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법조문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지만, 무척이나 효과적인 ‘법문’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