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 권여선 장편 레가토

 

권여선과 함께 ‘레가토’를

 

 

심진경 沈眞卿

문학평론가. 199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저서로 『떠도는 목소리들』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 『한국문학과 섹슈얼리티』 등이 있음.

 

 

2199

ⓒ 송곳

 

 

“후일담이 어때서?”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오정연. 1979년 대학 입학, 한 학기 만에 휴학, 낙향, 이듬해 1980년 광주에서 돌연 실종. 그녀는 왜 갑자기 휴학했을까? 고향집에는 왜 갔을까?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는 아직 살아 있을까? 오정연의 실종을 둘러싼 이 질문들은 30년 넘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소설의 안팎에서 던져진다. 그런데 도대체 오정연은 누구인가? 권여선의 새 장편소설 『레가토』(창비 2012)는 갑자기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을 통해 현재와 단절된 과거의 한때를 소환해 그 시절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계속되고 있었으며 끊임없이 현재의 삶을 직조해왔음을 보여준다. 소설 제목이 ‘레가토’인 것은 그 때문이다. 레가토(legato)란 둘 이상의 음을 부드럽게 이어 연주하는 주법의 기호다.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그러다보니 두 시간대가 구성상 단절적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사실 시간이 그렇게 뚝뚝 끊어질 수는 없는 것이죠. 제가 소설 제목을 ‘레가토’로 한 이유도, 비록 현재와 과거 사이에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가로놓여 있지만, 그걸 스타카토식으로 끊어서 읽지 말고 레가토식으로 이어서 읽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시간이 이어진다고 해서, 그게 계속 하나의 음만 내어서도 안되고, 어떤 한 음이 지속되는 와중에 다른 음이 새롭게 끼어들고, 그래서 음들이, 시간들이 겹쳐지는 효과가 생기기를 바라고 이 소설을 썼죠.

 

사실 나는 처음에 이 소설의 제목을 자꾸 ‘레트로’(retro)로 착각했다. ‘레가토’라는 말이 낯설어서 잘못 기억하기도 했거니와, 소설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고하고 소급하는 후일담 형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기존의 후일담 소설과는 무언가 다르다. 무엇보다 기존 후일담 소설에서 흔히 발견되는 ‘빛나는 과거/타락한 현재’ 같은 도식이나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후일담 소설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기존의 관습을 따르기보다 독특한 ‘권여선식 후일담’의 문법을 창조해내고 있다. 실종된 오정연의 행방을 찾는 데 소설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이 크게 보아 과거에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가는 탐색담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그 일례다. 그래서 나는 작가에게 『레가토』가 후일담 형식을 배반하는 후일담 소설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작가의 말인즉 꼭 그런 것은 아니란다.

 

그래도 저는 이 소설이 후일담의 틀에 맞는 면이 많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부터 우리는 후일담 소설을 폄하하고 폐기하고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양식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저는 그게 항상 불만이었어요. 물론 예전에 쏟아져나온 후일담 소설이 모두 바람직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건데, 유독 80년대를 다룬 후일담만 후진 형식인 것처럼 취급하고, 이미 다 마모되어 더이상 생산적으로 기능할 수 없는 양식이라는 암묵적인 판정을 내려버린 거죠. 그런 판정에 대한 제 나름의 불만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쓸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고민과 연결됐죠. 그리고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제대로 된 후일담을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어느 시대의 얘기를 쓰든, 자신이 쓰기 전에 이미 양식화된 스타일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 스타일을 지나치게 답습하고 고착화시키지만 않는다면, 다시 말해 다양하게 변주하고 진화시킨다면, 언제든 새로운 형식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 소설을 쓰면서 후일담의 틀이나 형식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물론 그 고민의 결과가 유효한지는 앞으로 따져봐야겠죠. 차이가 있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니까요. 저는 이 소설을 후일담이라고 부르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어떤 변주를 했건 『레가토』는 후일담이긴 하거든요.

 

‘후일담이 어때서?’라는 작가의 이 도도한(?) 태도는 ‘후일담적’이라고 부를 법한, 그간 작가가 써온 소설의 어떤 특성을 연상시킨다. 권여선 소설에서 사건은 대개 회고적 시선으로 사후에 기억되고 구성된다. 그래서 권여선 소설의 인물들은 뒤늦은 사랑, 뒤늦은 실연, 뒤늦은 후회, 뒤늦은 분노를 한다. 과거의 사건이나 관계, 그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은 언제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후적으로 (다시) 경험되고 이해된다. 그리고 이때 과거는 언제나 현재의 강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