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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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鄭梨賢

1972년 서울 출생. 200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연인들』 등이 있음. deepoem@hanmail.net

 

 

 

장편연재 1

내 모든 것

 

 

프롤로그

 

김정일이 죽었다. 20111219일 정오, 나는 혼자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밥 한공기와 그저께 끓인 감자국, 멸치볶음과 김치에 도시락용 김을 곁들인 간소한 식사였다. 습관적으로 켜둔 스마트폰의 FM라디오 어플리케이션에서 그 소식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털구름이 걸린 자리는 공기가 희박할 것 같았다. 아닐지도 모른다. 안에서 밖의 세계에 대하여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자국 국물을 개수대에 따라 버리고 남은 찌꺼기들을 음식물쓰레기통에 쏟아부었다. 침묵 속에서 세제 거품을 많이 내어 천천히 설거지를 했다.

집을 나서면서 썬글라스를 쓰는 것은 비 오는 날이나 눈 내리는 날이나 변함없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다. 진갈색 렌즈 너머의 거리는 침침하고 적막했다. 나는 털목도리를 칭칭 감고서 정직한 보폭으로 걸었다. 건조하고 쌀쌀한 날씨였다. 나는 정면만 바라보며 걸어갔다. 아무데도 두리번거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요새는 가끔 내 인생의 목표가 오로지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용히 닳아가는 것.

도봉산행 7호선 전철은 오후 139분에 도착했다. 어제 이맘때보다 2분 느렸다. 빈자리에 앉는 것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곧 노원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지하철로 오가는 동안 신문이나 책을 보는 것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필요한 학습교재를 제외하곤 나는 여간해서는 신문도 책도 읽지 않았다. 영화를 안 본 지도 아주 오래되었다. 뇌 속에 새로운 것을 단 한톨도 집어넣고 싶지 않다. 나는 다만 퍼내고 또 퍼내고 싶다. 쩍쩍 갈라진 밑바닥이 다 드러날 때까지.

돌이켜보면 지난 삶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받는 과정이었다. 비효율적인 인생이다. 절망스럽지는 않다. 대부분의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세상에는 기어이 무엇인가가 되고자 안간힘 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구 위의 모든 산 이름을 외우거나 스와힐리어 공부를 하거나 꿀벌을 치거나 인공수정을 하거나 시를 쓰거나. 그래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스무살 이후로 나는 생에 대해 어떤 기대도 품지 않아왔다. 아주 가끔 그때의 나를 꿈속에서 만난다. 잠결에 나는 그 장면을 숨죽여 내려다본다. 구겨진 황토색 세수타월, 그 아래 수놓인 ‘京仁山岳會雪嶽山登頂記念’이라는 궁서체 글자, 빳빳하게 굳어가는 그녀의 왼쪽 새끼손가락, 손톱에 발린 요사스러운 형광연둣빛 매니큐어,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마룻바닥, 그 위에 점점이 흩뿌려진 핏방울, 핏방울들을. 깨어나면 찬물로 오래 세수를 하고 이를 닦는다. 텅 빈 위장에 뜨거운 인스턴트커피를 들이부으면서, 누구하고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안도한다.

1층엔 편의점과 헤어숍, 치킨집, 안경원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2층엔 교회와 피씨방이 나란히 들어선 오래된 건물이 일년째 내가 출근하는 곳이었다. 나는 3층으로 오르는 계단참에서 썬글라스를 벗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하버드보습학원의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후덥지근한 기운이 이마에 훅 끼쳐왔다. 오후 느지막이 출근해 자정께 퇴근하는 것이 이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밤마다 내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할 필요도 없었고, 아침마다 억지로 눈뜰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밤 945분을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되었다.

책상 위에 놓인 시간표를 확인했다. 오늘도 다섯시간이었다. 나는 매일 네시간이나 다섯시간씩 강의를 했다. 그만큼을 내리 떠들다보면 나중에는 말하기 전에 뇌에서 한번 거르는 과정이 절로 생략되어버리곤 했다. 한시간 전 다른 반에서 했던 농담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또 던지고 있음을 깨닫고 진절머리가 난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애초에 직업을 찾아야 했을 때 내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대학에 입학했으나 졸업장은 가지지 않은, 즉 대학 중퇴자에 불과한 젊고 안 예쁜 여자가 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사회쌤, 일찍 오셨네.

부원장이자 중등부 국어강사인 김이 턱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제가 몇살 위라는 걸 알고부터 은근슬쩍 존대어미를 잘라먹는 사내였다.

—좀 전에 이상한 전화 왔었는데.

—전화요?

—응. 웬 여자가, 쌤 이름 대면서 바꿔달라는 거야. 처음엔 학부모인 줄 알았지. 안 계시다고 했더니 전화번호를 묻네? 개인 연락처는 알려드리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했더니, 쌤이 혹시 78년생 맞는지 확인해달래.

—그래서요?

—아마 그럴 거라고 했지. 그랬더니 머뭇대다가 또 묻더라고. 혹시 집이 반포 아니냐고. 사회쌤 집, 그쪽 아니잖아, 그치?

—네.

—낌새가 좀 이상해서 잘 모르겠다고 하고 끊었어.

몇초 간, 눈앞의 풍경이 노랗게 탈색되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제1부

 

김일성이 죽었다. 199479일 정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김일성 주석이 78일 새벽 2시 사망했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남한의 방송 3사는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일제히 김일성 사망과 관련된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화면을 지켜보았다. 미리 준비해두다니 지들끼리는 이미 다 알고 있던 게 분명하다며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치밀하게 짜인 한편의 드라마에 불과하다고 믿기도 했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는 토요일이었으며, 교실을 나와 교문까지 걸었을 뿐인데도 겨드랑이가 축축하게 젖어올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거대한 찜통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아.

지혜가 중얼거렸다. 준모가 또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킁, 킁, 씨팔, 다 죽어버려. 미친년.

평소보다 큰 소리였다. 앞에서 팔짱을 끼고 가던 여자애 둘이 흘끔 뒤를 돌아다보았다. 준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죄송합니다. 킁, 킁.

—죄송해요.

내가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쪽 보고 그런 게 아니라 얘가 아파서 그래요. 뚜렛장애라는 병이거든요.

진지한 표정으로 최대한 정성을 다해,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에게는 별 대수로울 것 없는 일상적인 일임을 이해시키는 게 중요했다. 이런 식의 사과라면 중학교 때부터 천번은 더 했을 것이다.

—일학년 이반 김미진, 아빠는 사당동 행복치과 원장. 팔반 오현정, 쌍둥이 동생 있음. 둘 다 반포국, 세화여중 출신. 두달 전부터 경남독서실 다님.

눈살을 찡그리던 여자애들이 저만치 앞서 가버리자 지혜가 속사포처럼 빨리 읊었다.

—아우, 들리겠다.

나는 소곤거리면서 그녀의 팔뚝을 꼬집었다.

씨팔, 다 좆같은 년들, 킁, 킁.

준모가 욕설을 마구 쏟아냈다.

킁, 킁, 아 오늘 왜 자꾸 이러지. 킁, 미안해.

매일 그러는데도 착한 준모는 매일 미안해했다. 우리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천천히 학교에서 멀어졌다. 시험 잘 봤느냐, 그런 문제를 내다니 수학선생은 미친 게 틀림없다 같은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시험이 끝났으니 이제부터 뭘 하며 놀 건지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