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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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片惠英

1972년 서울 출생.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재와 빨강』,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등이 있음. fragmenta@naver.com

 

 

 

비밀의 호의

 

 

택시는 떠날 것이다. 기사가 창문을 올렸다. 경술은 꿈쩍 않고 보도에 서 있었다. 이내 택시가 거리를 향해 육중하게 움직였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경술을 보았다. 경술은 택시가 남기고 간 불빛을 보고 있었다. 그는 경술을 역에 보내려 했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경술은 닫힌 방문 앞에 앉아 있었다. 경술은 현관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고는 드디어 피붙이를 만났고 초행인데도 잘 찾아와서 부모의 심부름을 해냈다는 자부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막차 시간이 임박한 걸 알고는 서둘러 돌아나와 택시를 잡았다. 서둘러도 늦을 거라는 경술의 말이 맞았다. 경술을 방에서 재우는 일은 무척 불편할 테니까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자 불편하기보다 몹시 화가 났다. 화를 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잊었지만 화를 내기도 피로한 일을 그날 낮에 겪었다. 서울에서 지내게 되면서 경술과는 명절이나 경조사가 있을 때나 한번 보는 정도였다.

그는 하나뿐인 이불과 베개를 경술에게 내주고 찬 바닥에 누웠다. 딱딱하고 냉기 어린 바닥에 누워 있자니 다분히 보호자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고작 이부자리를 내준 건데 뭔가 희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해준 게 없다는 뜻이어서 미안하기도 했다. 경술은 금세 서운함을 잊고 순전히 생애 첫 서울 나들이의 감회로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그는 딱딱한 바닥잠에 익숙지 않았다. 그들은 천장을 보고 누워 얼마간 얘기를 나눴다. 식구들이 나눌 법한 얘기였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 늘 아이를 화제 삼듯이 그들은 치매 걸린 할머니 얘기를 나눴다. 할머니는 대학생인 그를 남편으로 착각해서 교태를 부리거나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는데, 그와 경술은 그러는 할머니를 떠올리며 흉내냈다. 부모가 보았다면 할머니를 돌보는 일에 지쳐 있었어도 그런 장난은 지나치다 싶어 야단을 쳤을 것이다. 그와 경술은 할머니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자책에 묘한 공모의식을 느꼈다.

나중에 할머니가 죽었을 때 그는 전혀 슬프지 않았다. 할머니는 죽어가면서 그의 손을 잡고 여보, 혼자만 먹지 말아,라고 했다. 할머니가 남긴 대사가 좀더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이면 좋았을 거였다. 늘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기 때문에 죽었다기보다는 잠시 잠이 든 것 같았다. 조만간 벌떡 일어나서 음식을 떠먹여달라고 앙탈을 부릴 것 같았다. 입관 때는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조금 울었지만 할머니 앞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와 달리 경술은 탈진할 정도로 울었다. 그 밤의 공모를 기억하고 있던 그는 괜히 머쓱해졌다.

화제가 끊기자 이번에는 경술이 서울과 대학생활에 대해 물었다. 그는 무뚝뚝하게 대꾸하다가 미안한 마음에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길게 덧붙였다. 그러기를 몇차례 되풀이하다보니 불쑥 피로해져서 그만 자라, 하고 말했다. 경술이 시무룩해져 입을 다물었다가 “여긴 정말 정신이 없는 곳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실로 정신없는 일이 그의 주위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늘 뭔가 선택해야 했고 선택이 잘못되었으리라는 불안에 시달렸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가 더 큰 모멸감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뭐든 잘될 것 같아요.”

경술이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경술은 아직 고등학생이었고 서울에 머물 수 없는 집안사정이 있었다. 짐짓 애틋해져서 면박을 줬다.

“그게 뭐니. 좀 논리적으로 굴어라. 정신이 없는데 잘될 리가 있니.”

“그러면 재미가 없지요. 나는 비논리적이고 비약하는 게 좋아요. 그런 건 나만 하니까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 경술의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경술이 그에게 배가 고프다거나 날이 춥다고 하는 것 말고도 의견을 말하는 게 있구나 싶어서였다. 경술은 얘기를 나누거나 뭔가를 의논할 상대가 되지 않는 어린아이였다. 그와 경술은 아홉살 차이가 났다. 그의 부모가 아이를 낳던 시절에는 흔치 않은 터울이었다. 어머니는 지독한 난산으로 그를 낳은 후 오랫동안 임신을 두려워했다. 그의 말은 무엇이든 당연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배어 있었고 그에게 크게 통박이라도 당한 것처럼 그를 어려워했고 주눅들어 보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경술이 그가 매번 논리적으로 생각하려다가 천편일률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걸 비아냥거리는 건가 싶었으나 그럴 리 없었다. 경술은 그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도 마찬가지로 경술을 모른다는 것은 한참 후에 깨달았다.

아침에 깼을 때 경술은 없었다. 첫차로 내려갔겠거니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부모에게 경술이 그날 이후 나흘간 집에 내려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모는 소문이 돌까 겁이 나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경술은 어디서 뭘 했느냐는 호된 다그침에도 입을 꽉 다물었다고 했다. 그가 나중에 경술을 보았을 때는 이미 충분히 야단을 맞아서인지 얌전하고 묵묵한 아이로 돌아가 있었다. 보고 있자니 경술에게 그 나흘은 영영 지나가버린 것 같았다. 그런 순간일수록 금세 지나가고 지나가고 나면 그뿐이라는 걸 배운 듯했다. 그 나흘에 비하면 고향집의, 오래 밟아 삐걱대는 마룻바닥이나 집을 떠받치는 밤색 나무기둥, 치매 걸린 할머니의 어리광, 한적한 흙길과 야트막한 지붕들이 얼마나 견고한가를 이내 깨달았을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경술을 야단치려고 마음먹었다. 그에게 왔다가 생긴 일이어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쉽게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명절이라 친척들이 계속 드나들었다. 짬을 내 경술의 방으로 갔다. “경술아.” 책상에 앉아 있던 경술이 뒤돌아봤다. 그는 조금 주저하다 “그때 말이다” 하고 굳은 표정으로 말문을 텄다. 경술은 뭔가를 생각하듯, 그러니까 ‘그때’를 생각하듯 조금씩 표정이 변하더니 칭찬이라도 받을 것처럼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었다. 무심하거나 주눅든 얼굴이 아니었다. 그 표정에서는 숫제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것에 스스로 다가갔다는 자부, 생은 비밀을 갖는 것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통감한 긍지 같은 게 보였다. 생각해보면 부모와 함께 있을 때 경술에게서 보았던, 멍한 표정이나 딴 생각에 빠진 듯한 말투는 그 또래 계집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것이지 경술에게서만 보이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 무렵의 아이가 세상이 이물스럽지 않고 순조롭게 느껴진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니까. 경술은 허공을 향해 살짝 웃었다. 그가 다그치려는데 한떼의 친척 아이들이 경술의 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는 하릴없이 경술의 방에서 나왔고 밤 내내 그러면 재미가 없지요,라는 말과 함께 그와 부모가 모르는 나흘을, 경술을 의기양양하게 만든 나흘을 생각했으나, 다음날 일찍 서울로 돌아가야 할 일이 생기면서 다시 묻지 못했다.

그 나흘을 모르는 채로 오십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가 모르는 것은 비단 나흘만이 아니었다. 경술과 그는 식구들끼리 일상적으로 나누는 익살, 예를 들면 치매 걸린 할머니 흉내내기나 조금만 술에 취하면 나오는 아버지의 주정, 어머니의 반복되는 잔소리 같은 것을 함께 기억했지만 그밖에 사소하고도 일상적이며 소소한 삶은 내내 각자의 것이었다. 어린 시절, 경술이 따라다니며 놀이에 끼려 칭얼대면 그가 경술을 떼어놓으려 애쓰던 때도 있었을 테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아이에서 남자로 자라고 경술이 꼬마에서 여자로 자라면서부터 경술과 그는 남 보듯 대하는 게 익숙해졌다. 자라면서 경술이, 그가 보기에도 여자의 것처럼 보이는 맨다리를 내놓고 낮잠을 자거나 아니면 살이 희미하게 비치는 스타킹을 신고 스커트를 입거나 어머니의 축 처진 젖가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젖가슴이 어느날 얇은 티셔츠 위로 도드라진다는 걸 깨달았을 때 짐짓 놀라기도 했으나 경술이 자신과는 다른 생리적, 신체적 질서를 가졌음을 깨닫는 게 다였다. 그들은 일생 이해할 필요도 없고 딱히 이해 못할 것도 없는 가족으로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서로 울음을 터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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