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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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 金聖東

1947년 보령 출생. 1975년 『주간종교』로 등단. 소설집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채』 『붉은 단추』, 장편소설 『만다라』 『국수(國手)』 『꿈』 등이 있음. mahaksd@hanmail.net

 

 

 

민들레꽃반지

 

 

칼바람 소리만 귀를 물어뜯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 아무것도 없는 하늘만 바라보다가 얼크러지고 설크러진 고무딸기 가시며 두릅 가시 피하여 발몸발몸 아래채 뒤란 돌아 부엌켠 흙벽에 귀를 대어보던 김씨는 흡, 숨을 삼키었다. 우우— 우우— 아우성치며 달음박질쳐 가는 골바람 소리만 귀를 물어뜯는 것이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다시 한번 숨을 삼키며 귀를 붙여보았지만 부엌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큰일 났구나. 졸졸— 졸졸— 눈자라기(아직 꼿꼿이 앉지 못하는 어린아이) 오줌발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일망정 물 나오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이니, 마침내 아래채마저 수돗물이 끊어져버린 것이었고, 아아. 세굴차게 도머리치던 김씨는 어금니에 힘을 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군데군데 금이 가고 파여 식은 떡덩어리 같은 거스렝이가 일어나는 흙장판 위를 발몸발몸 걸어 개수대 위에 달린 수도꼭지를 바라보았다. 어제저녁에 받쳐놓았던 비닐 자수통에는 물이 가득하였고,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끊어졌다는 말인가? 에멜무지로 수도 손잡이를 올려보는데, 푸앙— 푸앙— 물애기가 옹알이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눈자라기 오줌발처럼 떨어져내리는 물인 것이었고, 살았구나. 어머니가 또 수도꼭지를 내려버린 것이었다.

“왜 대이구 수도꼭지를 내린대유. 그러지 마시라니께 증말.”

“아까워서 그려.”

“아깝다뉴?”

“아깝잖여. 아깐 물 버리넌 게.”

“그나마 여긔까지 물 끊어지먼 워척헐라구 대이구 잠군대유, 잠구길.”

“무섭잖여.”

“뭐이가 무섭대유?”

“수도세. 수도세가 월매나 무선디.”

“새꼽빠지게 뭔 말씸이래유?”

“아, 수도세가 월매나 무선디. 다락같이 올러만 가넌 물간디, 수도세락두 애껴야지.”

“여— 수도물이 아니잖유.”

“물 한방울이 피 한방울인디. 사꾼덜헌틴 물이 디. 아, 예전 육니오 때 야산대 사람덜 보니께 토굴 속이 숨어서 물 떨어지니께 심설 자긔 오줌을 받어 먹더라니께. 물이란 게 자고루 한울님인겨.”

“아이구, 어머니. 흘러가넌 물이라 갱긔찮다니께 그러시네. 아, 우덜이, 젤 꼭대기 사넌 우덜 집이서 물을 흘려줘야 저 아랫말 군덜두 사를 짓넌다니께 그러시네.”

김씨는 들창문을 닫고 창호지가 찢겨 너덜거리는 덧문을 닫았다. 그리고 보일러실에 들러 어머니방 칸에 파란불이 켜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 물매진 언덕길을 올려다보며 어금니에 힘을 주었으니, 아득한 것이었다. 한 이십미터쯤밖에 안되는 가까운 거리인데,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물매가 심한 것이야 산등성이를 까뭉개고 앉힌 집이라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잣눈 덮힌 길 한쪽 가생이로만 길을 뚫어놓았는데 유리알처럼 미끄러운 빙판길 위로 뿌려진 자욱눈이어서 여간 바드러운 것이 아니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좁좁한 가생이길 옆으로는 애두름이 이어졌는데 창날처럼 뻗쳐나온 가시나무들이다. 아무리 급하다고 하더라도 손 뻗쳐 잡아볼 것 하나 없고, 오늘두 안 올 모냥일세. 눈자라기 오줌발 같을망정 아직은 물이 나오니 살았지만 부르르 한번 진저리를 치고 나서 바지 단추를 여미는 아이처럼 그나마 물이 끊어져버린다면, 아흐. 죽음이라고 부르자.

화불단행(禍不單行)이요 복무쌍지(福無雙至)라든가? 나쁜 일은 홑으로 오지 않고 좋은 일은 겹쳐서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래채마저 물은 마침내 끊어질 수 있다. 아니, 끊어질 것이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났어도 무슨 조홧속으로 날은 더욱 추워지기만 하니, 그렇게 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 혼자 몸이라면 하루에 라면 한봉다리씩만 끓여 먹으며 날이 풀릴 때까지 어떻게 견뎌볼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방을 얻으려면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전 이장한테 들은대로 마을에 군식구 들일 만한 여윳방 있는 집은 없는 것 같았고, 그렇다면 소재지로 내려가야 한다. 십리쯤 떨어진 마을에서 십리쯤 더 가야 소재지가 나오는데, 변변한 여관은 그만두고 여인숙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민박을 들어야 하는데, 달세가 사십만원이라던가. 그것도 몇해 전 이야기니 이제는 더 올라서 아마 오륙십만원은 달라고 할 텐데…… 좋다. 민박집 방을 얻어 들어간다면 매끼를 사 먹을 수는 없는 일이고 방 안에서 밥을 해 먹어야 할 텐데 우선 솥단지와 밥그릇은 어떻게 하나. 이 그릇들을 챙겨 내려갈 수도 없는 일이고, 반찬은 또 어떻게 하나. 명색이 면소재지라는데 이지가지 젓갈과 김치 깍두기에 무엇보다 싸전이 없으며 그리고 목욕탕이 없다. 전에는 쇠시장이 섰던 대처여서 색시 둔 술집에 따기꾼이며 노름꾼에 깡패까지 득시글거렸다는데 옆댕이로 강원도 가는 고속화도로가 뚫리면서부터 바짝바짝 오그라들어가는 소재지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아직도 닷새마다 한번씩 장이 서기는 하나 장꾼보다 장사꾼이 더 많다. 살 만한 게 별로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농협에서 세웠다는 하나로마트인가 하는 데서 비닐봉다리에 든 동태도막 갈치도막도 사고 청양고추며 콩나물에 두부서껀 그리고 비닐봉다리에 든 쌀이며 보리쌀에 검정 서리태도 사는데, 목간을 하려면 시외버스를 타고 한 삼사십리는 나가야 한다. 똑같은 면소재지지만 그곳에 가면 사람도 많고 없는 것이 없다.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사우나탕에 온탕 냉탕이 따로 있는 목간통만 두군데이니, 꼭 강남에 간 것 같다. 같은 장날이라도 그곳에만 가면 없는 것이 없다. 매일같이 먹는 배추김치, 겉저리김치, 파김치며 총각김치, 깍두기에 물김치와 고들빼기김치까지 살 수 있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인절미는 물론이고 송편에 절편, 시루떡이며 백무리까지 언제라도 살 수 있다. 한봉다리에 이천원씩이니 만원 주고 다섯봉다리만 사면 효자에 더해 부자가 된 것 같다. 손으로 빚은 두부며 도토리묵에 새각시 볼따구니 같은 홍시감에 밤, 대추며 주전부리 할 막과자와 제과점 생과자에 통닭이며 갓 쪄낸 호빵도 있으니 먹을거리는 그곳에서 사 나르면 되지만, 골칫거리는 돈이다. 쩐. 허나 또 어쩌겠는가. 마이너스통장을 헐어서라도 버틸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고, 한달이면 되겠지. 아무리 충청도에서 사과가 열리고 서울에서 대나무가 살아가는 이상기온이라지만 한달만 버티면 얼음이 녹으면서 물이 쏟아지겠지.

맘밑을 눅이면서,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김씨가 정작으로 막막해하는 것은 어머니다. 어떻게 어머니를 모시고 내려가느냐는 것이다. 어녹이치는 빙판길 이백여미터를 내려가는 데 십오분은 걸린다. 발몬발몬 조심조심 꼭 잠자리 잡으려는 아이처럼 게걸음쳐 내려가야 되는데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한두번은 꼭 엉덩방아를 찧는다. 비록 다 털어낸 깻단 같은 몸피여서 한주먹밖에 안된다지만 어머니를 업고 내려가볼 자신이 없다. 젊은 뼉다귄디, 돌팍두 씹어 색일 젊은 뼉다귄디, 그깐느 호박죽 한그릇 더 뭇 색인댜. 맛있는 별미라며 당신이 키워 쑨 호박죽을 자꾸만 더 먹으라고 했을 때 사양하자 어머니가 했던 소리다. 어머니가 돌멩이라도 씹어 삼킬 수 있는 젊은 뼈다귀라고 하는 김씨도 이제는 경로우대석 처지다. 어쩌다 서울에 갔을 때 전철을 타면 떳떳하게 노약자석에 앉아도 되는 법정연령이 된 것이다. 예순다섯살. 일흔 아니 일흔다섯은 되어야 겨우 노인 취급을 해주는 세상이 되어 예순다섯이면 경로당에서 아이 취급을 받는 나이라지만 어쨌든 노인은 노인인 것이다.

그렇다면 손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데 또한 자신이 없다. 자가 넘게 쌓여 있어 미끄럽지 않은 쪽으로 내려가면 될는지 모르지만, 해산미역이 되어버린 극노인이 어떻게 그 눈구덩이를 헤쳐간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업고 내려갈 사람을 구해야 되는데 누가 그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이백미터쯤 내려가면 대문인데, 택시가 거기까지는 안 온다. 눈이 조금만 쌓여도 헛바퀴만 돈다며 오지 않는다. 대문에서 다시 삼백미터쯤 내려가야 비로소 콘크리트로 포장된 일차선 농로가 나오는데 또한 어떻게 내려간다는 말인가. 택시 운전사한테 부탁하면 들어줄까? 물론 시간이 돈인 사람들한테 아무리 극노인이라고 해도 삼백미터를 눈구덩이 뚫고 올라와 업고 내려가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 삯을 줘야겠지. 택시비가 소재지에서 대문 앞까지 왕복 이만원이니, 왔다 갔다 하는 시간비에 업어 나르는 삯까지 쳐줘야겠지. 이만원쯤이면 될까? 콜비까지 합쳐 한 사만원이면 될라는가? 택시 운전사한테 어떻게 조닐로(제발 빌어서) 부탁을 해볼 수는 있겠지만, 골칫거리는 어머니다. 어머니를 어떻게 대문까지 모시고 내려간다는 말인가. 모래밭 지나가는 긴짐승처럼 구불텅구불텅 물매 심한 이백여미터를 무슨 재주로 내려간다는 말. 내려가는 것도 그렇지만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싱갱이에 영 진력이 나는 김씨였다. 적어도 하루에 한번씩은 꼭 어머니 방을 들여다보는 김씨인데, 그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다.

“지발덕분 불 점 꺼줘.”

“예에?”

“지발덕분 불 점 꺼달라니께. 여 시방 뜨거서 발을 댈 수 다니께.”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김씨는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보았는데, 그러면 그렇지.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냉기를 밀어내고 요 밑에 손을 넣어보면, 사위어가는 난로처럼 밍그지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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