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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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鄭梨賢

1972년 서울 출생. 200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연인들』 등이 있음. deepoem@hanmail.net

 

 

 

장편연재 2

내 모든 것

 

 

오랫동안 아무도 내 공간에 들이지 않았다. 단 하나의 예외라면 제이였다. 운동화를 벗고 실내로 들어서자마자 제이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일회용 비닐에 담긴 빵이었다. 식빵과 베이글, 단팥빵이 고루 섞여 있었다.

—오십원이래서 봉투는 안 샀어요.

그가 멋쩍게 웃었다.

—참 이거 보셨어요?

학원 이름이 붉고 커다란 글자로 인쇄된 전단지였다. 새 학기나 방학특강 등을 시작하기 전에 종종 이런 광고지를 만들어 근처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에 뿌리곤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번들거리는 재질로 된 종잇장을 무심코 내려다보았다. ‘소수정예! 확실한 성적관리!! 국내 최고의 강사진!!!’ 느낌표의 개수로 점층법의 효과를 노린 낯간지러운 광고문구 밑으로 대표원장의 얼굴사진과 약력이 실려 있었다. 그 아래로는 각 과목별 강사들의 프로필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영어, 수학, 국어, 기타 과목의 순서였다. 맨 하단의 가운데쯤에 내 사진도 보였다. 언젠가 이력서에 붙이기 위해 급히 찍었던 것이다. 원장은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서 그 사진을 마음대로 가져다썼을 터였다.

우리는 창문을 열지 않고 담배 한개비씩을 피웠고, 제이가 사온 빵을 나누어먹었다. 나는 일회용 믹스커피를 한잔 마셨고 제이는 두잔 마셨다. 그는 카페인을 섭취하면 심장박동이 요동친다고 했다.

—혹시 드럼 쳐보셨어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비딕 아세요, 레드 제플린?

—아니.

제이는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 음악을 플레이했다.

—카페인이 들어가면, 이렇게 심장이 쿵쿵 뛰어요. 얼마나 신나는데요.

제이는 별로 신나는 것 같지 않은 음색으로 말했다. 구름 위로 떠오르는 것 같다고도 했다. 어떤 하늘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먹장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인지, 새털구름이 가붓가붓 흩날리는 하늘인지.

—의사는 자꾸 그러다 큰일난다지만.

제이가 가슴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의사들이야 원래 전부 다 하지 말라는 사람들이잖아요.

나는 냉장고에서 500밀리리터짜리 페트병에 담긴 오렌지주스를 꺼냈다. 어떤 편의점에서나 살 수 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어, 나 커피 더 마실 건데.

—그럼 그러든지.

내가 주스를 도로 집어넣으려 하자 제이가 활짝 웃었다.

—아, 아니에요. 그래도 선생님이 사오셨는데.

진열대에서 그걸 집어들었을 때 그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단 것은 입에 대지 않았다. 제이는 병뚜껑을 돌려 열고는 주스를 한꺼번에 다 마셨다. 꿀꺽꿀꺽. 사람 목구멍에서 의성어와 똑같은 소리가 나는구나, 나는 의미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제이는 담배를 피우고 요기를 하고 무언가를 마시기 위해 이 집에 들르는 것 같았다. 아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집에서의 제이는 어떤 곳에서의 제이보다 느긋했다. 그가 담배 한개비를 더 피우고는 일어섰다.

—저 이만 가볼게요.

—그래.

그는 가방을 메고 문가에 가지런히 벗어놓은 운동화에 발을 꿰었다. 문을 열려다 말고 문득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선생님.

쌤이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아이, 제이.

—응?

—아니에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가 나가자마자 도어록이 자동으로 잠겼다. 엘리베이터 타는 모습을 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이상한 예감이었다. 탁자 위는 어지러웠다. 재떨이와 빈 컵들을 치우려다가 그 옆에 놓인 전단지를 집어들었다. 내 사진 아래 이름이 또박또박 인쇄되어 있었다. 증명사진은 엄지손톱만 했다. 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반포에 살았던 이지혜. 부원장이 받았다던 그 전화는 나한테 걸려온 게 맞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속에서.

 

*

 

1994년 여름,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3384명이었다.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폐사한 가축의 빈 우리를 뉴스에서 보았다. 저런. 뜨거운 물에 우린 잎차를 마시던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할머니가 단언했다. 종말이 가까웠다니까요. 그들은 반팔 실내복 위에 칠부 소매의 얄따란 카디건을 덧입고 있었다. 그 집의 실내온도는 언제나 25.5도를 유지했다. 나의 조부모들은 한의사의 전언대로 찬 기운이 몸에 스며드는 일만큼 해로운 건 없다고 믿는 눈치였다. 세상에는 얼음도, 설탕도, 콜라도, 배달치킨도 먹지 않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경건하지 않은 삶 말이다.

여름방학이 한창이었지만 나는 꼬박꼬박 학교에 갔다. 낮 동안 가 있을 마땅한 곳이 없었다. 집에 종일 머무는 것은 고려해보지 않았다.

—아무래도 학교 도서실이 집중이 잘되니까요.

딱히 변명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데도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다. 할머니는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관심이 없는 보호자와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매일 아침 아홉시 집을 나섰다. 김기사 아저씨가 자동차 뒷문을 열어주었다. 평소보다는 학교와 가까운 곳에서 차를 내렸다. 들킬 위험이 덜해서라기보다는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게스 청치마와 청바지를 번갈아 입고, 위에는 몸에 붙는 폴로 피케티셔츠를 입었다. 스타킹도 양말도 신지 않았다. 대학생이 된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사그라졌다. 고등학생이 된 뒤에 크게 달라진 바 없는 것처럼 대학생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급하게 변하는 건 늘 이 세계였다.

재수하지 않고 대학에 간다면 나는 97학번이 될 것이다. 1997. 머나먼 숫자였다. 반드시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1997년은 나에게 스무살이 되는 해로 의미가 있었다. 보호자 란에 쭈뼛쭈뼛 아빠 이름을 쓸까, 엄마 이름을 쓸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 그냥 당당하게 내 이름 석자를 휘갈겨도 되는 나이로서의 스물 말이다.

간혹 1997년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 하지만 유리잔 밑바닥에 남은 우유 찌꺼기처럼 희뿌옇기만 했다. 1988년에는 1991년이, 1991년에는 1994년이 그랬다. 시간은 체력장 오래달리기 같았다. 눈을 감고 뛰다보면, 저 앞에 도무지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달리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내 뒤로 쳐져 있는 거다. 늙어간다는 건 따라잡을 아이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아무도 없어진다는 거겠지. 그러면 좀 쓸쓸할 것 같기도 하다.

여름방학, 학교 도서실에는 거의 언제나 나 혼자뿐이었다. 넓지 않은 열람실엔 낡은 선풍기 한대만 권태롭게 돌아갔다. 서가는 어둡고 서늘해서 숨어 있기 좋았다. 나는 세계문학전집이 순서대로 꽂힌 책장 밑에 쪼그려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각권의 맨 뒷장엔 초판 발행일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날보다 하루라도 먼저 묶인 책들만 읽었다. 눈물을 훔치며 읽기도 했지만,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적도 많았다. 내가 읽은 것은 서사라기보다는 문장들이었다. 예컨대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런 문장으로 내게 남아 있다.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에 대해 알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가 않다. 우선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자니 내가 너무 지겹기 때문이고,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했다가는 우리 부모님이 뇌출혈이라도 일으킬 것 같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그런 일들에 대해 굉장히 신경이 예민하셨다. 두분 모두 좋으신 분들이지만—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끔찍할 정도로 과민한 분들이니까. 더구나 난 여기서 지루한 자서전을 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협박 가정법이다. 남의 이야기를 정말로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정말로 있을까. 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의 이야기를 생각하려 한다면 몰라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부모의 직업 따위에 대해 시시콜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내 부모는 나란히, 피라미드 회사의 다이아몬드 직책이었었고 지금은 아니었다. 책의 어떤 페이지에도 밑줄은 치지 않았다. 나만을 위한 빨간 줄을 긋는다고 하여 먼저 그곳에 새겨져 있던 의미들이 내 것이 될 리는 없을 테니까. 나보다 오래 존재해온 글자들이 이 세상 어딘가 낡은 책장 속에 납작 엎드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족했다. 독서는 대수롭지 않은 비밀이었다. 이 더운데 거기서 내내 뭘 하느냐고 친구들이 물어오면, ‘졸다 오는 거지, 뭘’ 하는 식으로 얼버무리곤 했다.

서울의 기온이 36도를 넘던 날, 준모가 도서실로 찾아왔다. 나는 고장난 선풍기를 망연히 쳐다보던 중이었다. 좀 덜덜거리는 해도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은 유지할 만한 바람을 보내주던 낡은 선풍기가 갑자기 멈춰버렸던 것이다. 십자드라이버가 있다면 플라스틱 안전망을 열고 프로펠러 날개에 쌓인 먼지를 조심조심 털어내볼 텐데.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집에서 이런 건 항상 엄마의 몫이었다. 드라이버로 장난감의 건전지박스를 돌려 열거나, 쇠망치를 두드려 벽에 못을 박거나 하는 일이 다른 집에서는 대개 아빠의 역할이란 걸 알고서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었다. 엄마가 기계 앞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 아빠는 낮잠을 자거나, 우걱우걱 사과를 씹으며 축구중계를 보거나, 엄마의 솜씨에 순수하게 감탄하거나 했다.

—넌 뭘 그런 걸 다 할 줄 아냐?

애초부터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엄마는 한탄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한숨을 삼키며 묵묵히 나사를 돌렸다. 한남동에 살아보니 아빠의 이런 태도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이 집에선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고모나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누군가를 부르는 게 당연했다.

—아줌마!

아니면 김기사! 아니면 황기사! 금방 달려오기만 한다면 옆집 강아지라도 상관없었다. 본인 손가락을 까딱하지 않는다는 사실 외엔 중요한 게 없는 사람들 같았다.

—(뭐 해?)

준모가 소리없이 입을 벙긋거리며 물어왔다. 내가 선풍기를 가리키자 준모는 힐끔 벽 쪽을 보더니 반쯤 빠져 있는 코드를 끼웠다. 프로펠러가 털털털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떤 문제는 때론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간단히 해결되기도 한다. 어쩐지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고맙다, 친구.

준모가 깜짝 놀라더니 검지를 입술에 대고 쉿, 하는 시늉을 했다.

—아, 괜찮아. 어차피 여긴 아무도 없어.

—(그래도 도서관이잖아.)

준모는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입술말로 밖에 나가 기다리겠다고 했다. 참 일관되게 바보 같은 녀석이다.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