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장편소설의 새로운 가능성

창비 여름호 특집을 읽고

 

 

이경재 李京在

문학평론가. 평론집 『단독성의 박물관』이 있음. ssmart1@hanmail.net

 

 

1. 장편소설 논의의 현재

 

2007년 여름 『창작과비평』이 특집으로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를 열자’라는 장편대망론을 펼친 이후로 단편 위주의 문학 제도와 관행이 개선되고 문예지와 싸이버 공간에 연재 기회가 늘어나면서 장편소설이 양적으로 급팽창했다.1) 이것은 “한국문학의 ‘안’(작가와 비평가와 독자)과 ‘바깥’(출판시장)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결과”2)에 가깝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양적 팽창에 걸맞은 질적인 성과가 가시화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문학 환경의 미비는 오히려 장편소설의 질적 수준 미달의 진정한 원인을 가려주는 환상의 장막이었는지도 모른다.

『창작과비평』 2012년 여름호 특집 ‘다시 장편소설을 말한다’는 최근의 경향을 중심으로 장편소설의 현상과 의미, 나아가 한계와 전망까지 짚어본 기획이다. 백지연(白智延)의 「장편소설의 현재와 가족서사의 가능성」은 장편소설의 역사에서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소재인 ‘가족’이 어떠한 방식으로 한국문학에 수용되고 있는지, 이러한 가족서사가 가져온 한국 장편소설의 혁신 가능성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꼼꼼하지만 담대한 글이다. 허윤진(許允溍)의 「분노와 경이」는 환상문학론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사랑이 지니는 그 심각한 중요성을 진지하게 설파한 실험적인 글이다. 김동수(仝洙)의 「아름다운 것들의 사라짐 혹은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프랑스에서 주목받고 있는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의 소설을 검토하여 한국 장편이 나아갈 소중한 가능성의 한 방향을 제시한 역작이다. 본고는 지난호 기획 중에서도 총론 격으로 쓰인 한기욱(韓基煜)의 「기로에 선 장편소설」을 집중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지난 5년간의 장편소설론의 전개 양상을 검토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중요한 논점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한기욱은 장편소설이 나아갈 방향으로 “근대의 장편소설을 근거지로 삼되 ‘탈근대적 상상력’을 근대의 경계를 뚫고 새 길을 개척하는 일종의 전위대로 활용”3)하자고 제안한다.4) 새로운 시대의 장편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제를 수행할 핵심적인 전략으로 “근대 장편소설이 내장한 근대성찰의 풍부한 지적 자산과 탈근대적 상상력의 결합”5)을 제시하는 것이다. 근대완성과 근대극복이라는 이중과제론의 문학적 버전이라 할 만한 주장으로서 논의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한기욱의 논의에서 초점은 ‘근대의 장편소설’과 ‘탈근대적 상상력’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로 모아진다. 한기욱 스스로도 “장편소설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은 채 어떻게 그 미래를 논할 수 있겠는가”6)라고 자문한다. 이 대목에서 한기욱은 자신의 논의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평단에서 가장 볼 만한 장편소설론으로 평가받는 신형철(申亨澈)의 평론(「‘윤리학적 상상력’으로 쓰고 ‘서사윤리학’으로 읽기」, 『문학동네』 2010년 봄호)8면에 걸쳐 분석하고 있다. 한기욱은 신형철의 장편소설론이 “‘윤리학적 상상력’(장편소설의 의제 설정과 해결을 가능케 하는 문학적 판단 기능), ‘사건-진실-응답’의 3단 구성(장편소설의 기본 문법), ‘서사윤리학’(윤리학적 상상력을 분석·평가할 수 있는 관점), 세개의 핵심 개념”7)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고 명쾌하게 정리한다. 한기욱은 자신의 장편소설론을 펼쳐 보이기 위해 신형철의 장편소설론을 하나의 매개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후의 논의에서 신형철의 장편소설론은 다방면에서 부정당한다. 먼저 바디우(A. Badiou)의 진의를 왜곡할 소지가 농후한 ‘윤리학적 상상력’이라는 명칭의 부당함을 지적한 후, 장편소설의 기본 문법으로 제시된 ‘사건-진실-응답’의 3단 구성은 독창적인 걸작 장편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족쇄가 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실제 독법에 있어 작가의 의도에 휘둘리고 다른 한편으로 ‘사건-진실-응답’의 3단 구성에 집착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비평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신형철 장편소설론의 ‘명칭’ ‘기본 문법’ ‘작품에의 적용’ 모두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기욱의 비판 속에서 살아남는 신형철의 장편소설론은, 장편의 기본적인 상상력인 ‘의제 설정과 해결을 가능케 하는 문학적 판단 기능’ 하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기욱이 생각하는 장편소설의 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의 인용문 속에 압축되어 있다.

 

장편소설이 다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들의 구체적 삶이 먼저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유일무이한 단독자로서 그 개인의 삶, 그 개인이 타자와 맺는 관계, 주위의 자연이나 사물과 맺는 관계의 진실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밀고나가면 그것이 시대현실에 대한 물음에 닿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