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중국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이하며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이중과제론』(편서) 등이 있음. lee87@skhu.ac.kr
1. 중국의 개혁개방과 비판적 중국연구의 곤경
올 8월로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이했다. 한국전쟁 이후 40여년간 적대관계를 지속했던 양국은 1992년 수교 이후 놀라운 속도로 가까워졌다. 특히 경제교류가 빠르게 증가해 2011년 한・중의 무역규모는 2206억달러로 미국 및 일본과의 무역량(각각 1108억달러, 1180억달러)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인적 교류의 규모도 600만명을 넘어섰다. 중국 관련 정보도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직 뾰족한 답이 나오지는 못하고 있다. 독자적인 문명 전통과 엄청난 인구를 보유한 중국의 부상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아니면 중국이 결국 서구적 가치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세계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비단 우리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세계 모든 곳에서 유사한 반응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필요한 것은 중국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어떤 단정적인,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된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진행 중인 변화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파악할 수 있는 사유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냉전시기 중국연구의 한 흐름을 형성했던 비판적 전통을 계승하고 혁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판적 중국연구란 주류적 사유체계를 중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문제시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지구적 차원, 지역적 차원, 일국적 차원)에 대한 인식을 재구성하는 계기로 삼는 접근법이다. 과거 중국혁명의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의 이른바 ‘연안(延安)의 길’과 사회주의 시기의 문화대혁명을 포함한 지속적인 내부혁명은 대안적 사유체계와 사회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전세계 다른 지역의 시도들을 자극해왔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리영희(李泳禧)의 작업이 ‘비판적’ 중국연구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1) 그의 연구가 갖는 한계에 대해서는 여러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그가 냉전적 사유에서 벗어나 중국을 이해하려 했고 이를 통해 한국을 지배하던 냉전적 사유에 도전했던 것은 지금도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90년대까지 현대 중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이른바 공산권 연구라는 정책적 필요에 의해 진행된 것을 제외하면 이러한 비판적 관점에 의해 자극받은 바가 많다.
이러한 비판적 중국연구의 전통은 1990년대 이후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로 ‘비판성’의 자원이 사라진 것이다. 프랜씨스 후꾸야마가 주장한 ‘역사의 종언’은 비판성이 직면한 위기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즉 냉전의 해체와 함께 “이념적 진화의 종착점에 도달하고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통치의 최종적 모델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역사가 종결되었다는 대담한 선언 앞에 비판성이 설 자리를 찾기 어려워졌다.2) 그리고 이처럼 좁은 의미로 정의된 민주주의, 인권, 시장 등은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사유체계의 근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물론 냉전 이후 세계가 테러와 폭력으로 얼룩지면서 그의 주장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이를 전복할 만한 도전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3) 비판적 중국연구가 직면한 위기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서 진행된 변화는 비판적 중국연구의 토대를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개혁개방은 중국 내에서도 세계문명, 즉 서구가 주도적으로 발전시킨 근대문명과의 ‘궤도일치〔接軌〕’를 새로운 사유의 주요 과제로 만들었다. 1980년대 한때 개혁파가 중국이 ‘지구적〔球籍〕’을 박탈당한 위기에 처해 있고,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개혁개방, 특히 세계문명의 적극적 수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중국 담론지형의 급진적인 변화를 잘 보여준 사례다.4) 중국이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의 채택 이후 빠르게 추진한 시장화와 대외개방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비판성을 뒷받침하는 자원이라기보다 이러한 비판성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심지어는 역사의 종언을 증명하는 사례처럼 보였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비판적 중국연구는 서구의 자유주의 담론에 의해 전유되었다. 연구의 초점이 경제적 시장화와 정치적 권위주의 사이의 불균형에 맞춰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시장화와 개방화가 필연적으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변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전제가 작용한다. 냉전 이후 담론영역에서 패권적 지위를 차지한 민주주의, 인권, 시장 등이 중국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위한 무기가 되었다. 물론 제도의 자율성에 주목하는 제도주의적 설명에 따르면, 국가가 시장의 확대와 경제발전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시장화와 권위주의의 동반관계가 시기에 따라서는 효과적으로 공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도 최종 모델로 자유민주주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존 사유체제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설명을 따라간다면 중국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결국 근대시기에 서구의 주도로 만들어지고 냉전해체 이후 인류사회의 최종적인 모델로 확인된 정치모델과 경제모델을 중국이 수용할 것인가 아닌가라는 단일한 차원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전자는 성공의 길이고 후자는 실패의 길로 간주된다. 핵심 문제는 그러한 성패를 당연한 결과로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사유체계와 세계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탐색을 재개할 것인지에 있다. 중국 내에서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비판적 중국연구의 복원을 위한 시도가 꾸준히 이루어졌다.5)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학자들은 ‘신좌파’로 불리기도 했는데 주로 인문학적 성찰에 머물렀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는 사회변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중국모델론을 둘러싼 토론을 전후로 이들의 논의가 인문학적・사상적 성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등장했다.6) 아래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비판적 중국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의 중국이해에 어떤 시사점을 제공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2. 신좌파의 중국모델론, 비판적 사유의 복원?
중국이 서구의 발전모델을 대체하는 새로운 발전모델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무엇보다도 빠른 경제발전에 의해 주목받기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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