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한국 사립대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하여
2013년 이후 대학개혁의 이념
윤지관 尹志寬
문학평론가,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 ‘사학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회’ 회장. 한국문학번역원장 역임. 저서로 『놋쇠하늘 아래서: 지구시대의 비평』 『근대사회의 교양과 비평』 『민족현실과 문학비평』 등이 있음. jkyoon@duksung.ac.kr
1. 사학개혁의 사회적 의미
지난 7월 12일 제79차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구재단’을 대학운영에 복귀시키는 방식의 이사진 구성을 경기대와 덕성여대에도 적용함으로써 현 정부 들어와서 진행된 분규대학 ‘정상화’를 실질적으로 마무리지었다. 사학운영의 전권을 가진 법인 이사회 구성에 분규 당시 운영진이었던 소위 종전이사들의 추천권을 인정한 것인데, 두 대학 모두 종전이사 추천 4인, 구성원 추천 2인, 교과부 추천 1인으로 구성하되 다만 경기대의 경우 종전이사 추천 몫 가운데 1인을 교과부가 임시이사 형식으로 파견키로 했다. 종전이사에게 과반수 추천권을 부여하는 이 방식은 구재단 복귀정책의 시발점이라 할 2009년 영남대 ‘정상화’에서부터 일관되게 채택되어온 것으로, 그후 조선대・상지대・세종대・광운대・대구대 등 전국 10여개 주요 사립대학들에서 과거 분규로 퇴출되었던 구재단이 사실상 복귀하는 결과를 빚었다. 분규 사학들이 관선 임시이사회를 통해 혼란을 수습하고 정상적 운영과 일정한 발전을 이루어왔던 터에, 분규 당사자들을 복귀시킨 명목상의 ‘정상화’는 교육현장을 분규가 야기되었던 그 상황으로 되돌려놓은 꼴이며, 이 때문에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사학분쟁을 ‘조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학분규와 정상화 문제는 단지 해당 사립대학들의 내부갈등에 따른 운영권 다툼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고등교육의 고질적인 병폐와 관련된 것이며, 이는 단순히 비리사학을 징벌하거나 퇴출한다고 사라지지 않고 우리 사회의 구조 내지 체제와 맺어져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수십개 대학에서 극심한 분규가 잇달아 발생해왔는데, 서울 소재 종합대학만 하더라도 경기대・광운대・단국대・덕성여대・동덕여대・성신여대・세종대・한국외대・한성대 등 10여개에 이르고, 전국적으로 계명대・대구대・동의대・상지대・서원대・조선대 등등 모든 지역에 걸쳐 있다. 연쇄반응처럼 일어난 이 사학분규들은 사학의 설립자나 그 인척 중심의 족벌경영이 굳어져 그 폐해가 대학교육 현장에서 용인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 곳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개 족벌재단의 비리나 전횡에 대한 교수・학생 등 구성원들의 항의가 단식농성이나 수업거부, 나아가 징계와 고소・고발 등 법적다툼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극단적 형태의 대학분쟁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일로, 한국사학 특유의 구조적 문제가 한계에 이른 징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임시이사 파견으로 갈등이 미봉된 상황에서 현 정권이 다시 사학 지배구조를 복원하는 퇴행을 강제한 것이다.
현 정권의 퇴행적 행태를 ‘87년체제’ 말기의 혼란상으로 이해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의 계기로 2013년을 제시하는 ‘2013년체제’론이 주목받는 가운데, 올해 말 대선 이후 한국사회의 지향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물론 2013년이 새로운 체제의 시작이 되려면 이번 대선에서 민주개혁세력이 승리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정권교체에 실패한다면 다시 일정한 혼란과 조정을 거칠 수밖에 없겠지만, 성공하는 경우 새 정부는 그간의 퇴행을 되돌리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된다. 1987년 시민혁명이 군부독재의 종식과 사회민주화 추세의 시발점이 되었듯이 2012년 대선 승리는 한국사회의 현상(現狀)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고질화된 사학문제도 단순히 현 정권의 퇴행적 정책을 시정한다거나 참여정부의 개혁 시도를 이어받는 수준의 것이어서는 달라진 환경에 부응하지도 못하거니와 교육민주화와 선진화라는 시대적 과제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실상 족벌사학의 지배로 인해 고질화된 사학비리나 전횡은 한국 사학의 형성 배경과도 유관한 특히 후진적인 교육 현실로, 대학교육이 국내적으로 보편화되고 국외적으로 경쟁과 교류가 필수적이 된 ‘탈근대적’ 환경에서 더이상 지탱할 수 없는 봉건유습이라 할 수 있다. 사학비리를 없애려는 정부 차원의 규제나 사회적 문제제기가 늘 있어왔음에도 그것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사학경영자들의 자격미달과 의식부족 탓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사학재단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구조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고질병을 근절하고자 사학개혁입법을 추진하였으나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장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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