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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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趙海珍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가 있음. glala95@hanmail.net

 

 

 

홍의 부고

 

 

1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안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머리맡에 두었던 휴대폰을 집었다. 손 안에서 만져지는 휴대폰의 질감은 익숙하고도 뚜렷했지만, 안의 귀는 꿈과 현실을 가로지르는 높은 깃대에 걸린 조잡한 수신기처럼 여전히 휴대폰 벨소리를 개 짖는 소리로 잘못 해독하고 있었다. 우연찮게도 그때 안은, 검은 개떼에 쫓기다가 유리가 깨진 전화부스를 발견하고는 정신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꿈을 꾸고 있었다. 개들은 끈적끈적한 침을 질질 흘리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채 맹렬하게 짖어댔다. 수화기를 쥐고 있던 안의 두 손은 경련하듯 떨렸고 갑작스러운 요의로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여보세요? 거, 거기 누구 없어요? 마침내 신호음이 지나가고 통화가 연결되어 안이 다급하게 물었을 때, 개들은 순식간에 뿌연 안개 속으로 삼켜지듯 사라져갔다. 개떼뿐 아니라 가로등과 깨진 전화부스와 그때껏 온 힘을 다해 쥐고 있던 수화기도 하얗게 지워지면서 안은 갑자기 텅 빈 들판에 혼자 서 있게 되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은 들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절망적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어둑한 들판이었지만 하늘엔 극지방의 오로라처럼 초록과 보라의 빛무더기가 겹치고 휘어지며 흘러가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먼 옛날 세상 끝에 도착한 방랑자가 더이상 갈 곳이 없자 하늘을 찢고 그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이야기가 떠오른 건 그때였다. 안은 어쩌면 이 이상한 들판의 출구일지도 모르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어보았다. 신비로운 하늘은 바로 머리 위에 있는 듯 가깝게 보였지만 손에 닿지는 않았다. 여보세요? 마침 하늘 저편에서 누군가 굵은 목소리로 신호를 보내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들판 끝까지 메아리를 남기며 길게 울려퍼졌다. 담당의인가. 담당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빈 들판을 헤매는 동안의 막막함을 뻔히 알았을 텐데도 이토록 늦게 응답을 보내온 담당의가 안은 못내 서운했다. 늦었어, 중얼거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무릎을 꿇는데 어느 순간 현실적인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면서 안은 자신의 감정이 비이성적으로 과장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안은 슬며시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방 안의 풍경이 한줌씩 깃든 정방형의 조각들이 허공에서 질서 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눈을 한번 깊이 감았다 뜨자 조각들은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아들어갔고 이내 그 이어진 자국마저 감쪽같이 지워졌다. 여보세요? 제 말 안 들립니까?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 너머에서 누군가가 연이어 물어왔다. 꿈속에서처럼 무조건적인 신뢰감을 주는 중저음이긴 했지만 담당의의 목소리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안은 비로소 꿈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뇨, 잘 들립니다. 말씀하십시오. 다시 잠들지 않기 위해 이불을 밀치며 안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침부터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는데, 혹시 Y대 산악써클 15기 멤버 아니신가요? 남자의 질문에 침대 밖으로 한쪽 다리를 내놓던 안은 맞은편 벽에 세워진 전신거울을 물끄러미 건너다봤다. 안이 Y대를 나왔고 산악써클에서 활동한 건 사실이지만,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데다가 현을 제외하면 써클 동기나 선후배 중에서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도 없었다. 한때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던 Y대니 산악써클이니 하는 말들이 안은 낯설기만 했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잠시 후 안은 조심스럽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 저는 홍의 오빱니다. 홍이오? 어젯밤에, 홍이 죽었습니다. 아…… 안은 낮게 신음했다. 월요일 이른 아침, 타인의 부고를 들으며 잠에서 깰 줄은 몰랐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과 남자에게 유감을 표하는 것 중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홍이 이름인지 성인지도 알지 못하니 그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해달라는 부탁은 그 두 마음 사이에 들어올 틈이 없었다. K구에 있는 S병원입니다. 발인은 내일이고요. 안의 문상을 확신이라도 한다는 듯 덧붙여 설명하는 남자의 목소리엔 습기가 없어 불편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남자가 전화를 끊자 때맞춰 알람시계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시계를 들어 알람을 끄는데 침대 옆 콘솔 구석에 일렬로 놓인 하얀색 플라스틱 약통 세개가 눈에 들어왔다. 안은 이주에 한번씩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고, 상담이 끝나면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가서 꼬박꼬박 저 플라스틱 약통을 받아왔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안은 자정 즈음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 7시에 알람이 울릴 때까지 깨지 않고 단잠을 잤다. 받아온 약을 저렇게 방치해놓은 건 수면장애가 사라졌음을 몸이 먼저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은 대개 머리보다 민감하고 별다른 노력 없이도 알아서 변화에 적응하지 않던가. 다음 상담은 이틀 후였다. 담당의에게 수면장애가 완치되었음을 밝히는 게 당연한 절차인 줄 알면서도 안은 그 당연함이 새삼스러웠다. 오히려 이틀 후면 담당의를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문득 마음이 설레었다. 안에게 담당의는 연체니 압류니 하는 단어를 빼놓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실제로 그는 안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당황하면 말을 더듬는 습관뿐 아니라, 칼이나 가위 같은 뾰족한 사물에 근원적인 공포를 갖고 있다는 것이나 발꿈치가 매끈하고 분홍빛인 여자에게 강한 성적 매력을 느낀다는 것까지. 담당의라면 간밤의 제법 생생한 꿈과 기억나지 않는 대학동창의 죽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자신의 장례식에 대한 상상을 숨김없이 토로한다 해도 차분히 그 모든 이야기를 경청해줄 터였다.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썰렁한 빈소를 지킬 가족과 의례적으로 조의를 표하는 지인들의 모습, 심지어 구색을 맞추기 위해 상조회사가 갖다놓았을 국화의 알싸한 향으로까지 안의 상상은 뻗어가는 중이었다. 상상 속 그곳은 그동안 안이 다녀봤던 빈소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분위기였고 안은 그 평범함이 언짢았다. 그렇다면 휴대폰을 들고 외진 구석자리를 찾아가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부고를 전하게 될 사람은 두살 터울의 형일까, 세살 아래 여동생일까. 형이나 여동생도 전화를 반복하는 사이 슬픔이나 회한이 희석된 목소리로 한 사람의 완벽한 소멸을 전할 것인가, 홍의 오빠처럼? 안은 뼛속까지 번지는 얼음처럼 차가운 통증을 느꼈고, 동시에 이 모든 상상이 마음의 연약한 부분을 자극하는 쓸데없는 자기연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은 콘솔에서 약통 하나를 집어 거칠게 뚜껑을 열고는 알약 하나를 입에 넣은 뒤 벽에 기대섰다. 잠시 동안이라도 200밀리그램짜리 알약이 품고 있는 둥글고 작은 위로를 받고 싶었다. 알약에는 어쩌면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비밀스럽게 포장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가령 초여름의 어느 산행에서 연둣빛 나뭇잎 사이로 내리비치던 햇살의 반짝임에 자신도 모르게 한쪽 눈을 찡그렸던 순간 같은. 뒤를 돌아보면 Y대 산악써클 멤버들이 옹기종기 서 있을 터이고 주의를 기울여 살핀다면 그들 사이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홍의 모습도 포착될지 모른다. 안은 더, 더, 깊이 상상하고 싶었지만 식도를 넘어간 알약은 기대와 달리 둥글고 작은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가슴속 어딘가에 내려앉았다. 벽의 서늘함을 조금 더 느끼다가 안은 화장실로 들어갔고 오래오래 오줌을 누었다.

 

 

2

 

현이 열어준 현관문을 지나 거실로 들어서자 맥주캔과 양념치킨, 불은 컵라면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다탁이 눈에 들어왔다. 소파 쪽으로 걸어가 검은색 슈트 재킷을 벗으며 엉거주춤 앉는데 현이 새 맥주캔 하나를 내밀었다. 사양했지만 현은 막무가내였고 안은 어쩔 수 없이 맥주캔을 받아든 뒤 뚜껑을 땄다.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선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는 중이었다. 연쇄살인사건이라면 안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벌써 몇주째 온갖 매체가 이 사건을 다루었고, 사무실이든 식당이든 사람들은 두셋만 모여도 요란하게 떠들어대며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소모품처럼 나누어가졌다. 살인범들의 수법 자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했다. 남자든 여자든 일단 표적이 되면 인적 드문 곳으로 끌고 가 각목과 쇠파이프로 무작정 패는 것, 그게 다였다. 살점이 너덜거리고 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훼손되어 마침내 희생자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아마도 끈적끈적한 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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