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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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鄭梨賢

1972년 서울 출생. 200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연인들』 등이 있음. deepoem@hanmail.net

 

 

 

장편연재 3

내 모든 것

 

 

목적한 바를 이루기에, 투신은 드물게 안전한 방식이다.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안다.

마지막 목격자는 엘리베이터의 CCTV였다. 엘리베이터에 탄 제이는 1층이 아닌 15층 버튼을 눌렀다. 옥상과 연결되는 층이었다. 제이를 발견한 사람은 교대를 위해 출근하던 경비원이었다. 새벽 다섯시 반 즈음, 60킬로그램짜리 물체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의 둔중한 충격음을 들었다는 주민은 꽤 여럿이었다. 그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준 사람은 경찰관이었다. 머리 위와 발밑에서 벌어진 일을 나는 며칠 동안 알지 못했다. 그날 오후 집을 나서는데 평소와 달리 공동현관 앞에 중년여자 몇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풍경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뿐이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나는 멍하니 15층이라는 높이에 대해 생각했다. 이사 온 지 몇해가 지났으나 그 층에 올라가보지 않았다. 거기,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는 인식도 하지 못했다. 형사의 점퍼 앞자락에 크기가 다른 세 점의 잿빛 얼룩들이 나 있었다. 갑자기 눈알이 시렸다.

—자살로 추정합니다. 일단은. 유서가 있으니까요.

눈을 깜빡이지 않기 위해 나는 그 얼룩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우리 일이라는 게 그렇다고 끝은 아니니까요.

형사는 흥미롭지도 권태롭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흰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쓰세요.

그가 친절하지도 퉁명스럽지도 않은 음성으로 덧붙였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니 그날까지. 아는 대로. 쭉 다.

그날까지. 아는 대로. 볼펜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10716일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근무하는 학원에 혼자 왔고 여름방학 종합반에 등록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K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했습니다. 그 학원의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가 아니었고 거리도 먼 편이었지만 더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날 그애는 본 조비의 얼굴이 그려진 검정색 반소매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애가 속한 반은 일주일에 오일은 국영수 수업을 중심으로 하고 일주일에 이틀은 과탐과 사탐 수업을 했습니다. 나는 그애의 사탐 강사였습니다. 그애는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삼주에 한번 꼴로 치르는 쪽지시험에서 그애는 처음에는 평균 80점을 맞았고 그다음부터는 결석을 했습니다. 제이는 종종 학원을 빠지곤 했습니다. 다음날에 나타나서 몸이 좀 아팠었다고 말했습니다. 원장이 그애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자 그들은 괜찮다고, 아들을 그냥 놔뒀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남에게 방해만 되지 않으면,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곳의 부모들은 아이의 수업태도에 민감합니다. 결석에 대해 관대한 부모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일은 강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새엄마잖아. 누군가 말했고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다들 수긍했습니다. 제이는 학원비를 꼬박꼬박 납부하고 수업시간에 있는 듯 마는 듯 조용했습니다. 남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 같은 것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그리고 그 이후를,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나는 모른다. 문장과 문장의 갈피에 숨겨진 크고 작은 얼룩들의 각기 다른 농도에 대해서도. 제이가 15층으로 올라간 뒤 지상으로 떨어지기까지 세시간여가 비었다. 경찰관이 그 점을 지적했다.

—영하 5도였는데 말이지요.

그 말만이 가슴을 옥죄었다. 그동안 제이가 얼마나 추웠을지 알 수 없었다. 그 세시간은 영원히 공백으로 남겨질 것이다.

참고인 조서를 쓰고 나오니 한낮이었다. 경찰서 1층 복도의 널찍한 유리창으로 서늘한 햇볕이 푸짐하게 쏟아졌다. 선 채로 나는 울었다. 아주 오랜만에. 아마 그날 이후 처음일 것이다.

 

*

 

이런 밤이면 혀를 뿌리째 자르고 싶어진다.

나는 가위를 떠올렸다. 그러자 기묘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며칠 전 철물점에서 공업용 가위를 샀다. 검은색 플라스틱 손잡이 밑으로 두개의 은빛 가윗날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가위를 종이상자에 담은 후 접착테이프로 밀봉했다. 상자를 책상서랍 깊숙이 집어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부서뜨릴 수 있는 연약한 자물통이었다.

원해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열일곱살이 된 뒤 나는 생명이 만들어진 최초의 순간에 대해 즐겨 생각하곤 했다. 스스로를 위한, 일종의 농담이었다. 정자가 방출되던 순간 아버지는 신음 대신 내뱉었을까. 씨팔. 막 배란된 난자가 자궁 속을 헤엄쳐 다니던 정자와 만나던 순간 엄마는 중얼거렸을까. 좆까.

—딸꾹질처럼 여겨보면 어떻겠니?

잔뜩 술에 취해 귀가한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므로 좀 당혹스러웠다.

—다녀오셨어요.

나는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이것 봐. 이렇게 멀쩡한데.

아버지가 탄식했다. 부패한 알코올 냄새가 쏟아졌다. 나는 숨을 참았다.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몇마디 더 했다가는 한동안 잠잠하던 악마가 다시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일은 226일이었다. 호리병처럼 좁디좁은 목구멍의 입구를 꽉 졸라매기 위해 나는 며칠째 안간힘 쓰고 있었다. 아버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불균질한 침묵이 주위를 감쌌다. 목울대가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학교는.

거기까지 말하고 그는 잠시 멈추었다. 곧 깊은 한숨을 뱉었다. 술김에 호기롭게 올려놓기는 했으나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모르는 듯 두 손을 내 어깻죽지에 어정쩡히 걸친 채였다. 아버지가 차마 완성하지 못하고 끝낸 말이 무엇인지 짐작할 만했다. 정말 그만두겠다는 거니, 같은 종류일 터다. 나의 자퇴에 대해 아버지는 지금껏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었다. 또한 그 문제는 요 몇해 동안 이 집에서 벌어진 부부싸움의 주요 쟁점이었다.

—저럴수록 정상적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러려는 거예요. 어떻게든 정상으로 키우려고.

아버지 목소리는 짜증스러웠고 엄마는 고집스러웠다. 1980년대 초반 준공된 서른세평 아파트의 내벽은 얇았다. 귀를 세우지 않아도 내 방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어떻게든 지가 극복하도록 해야지.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끝까지 보호하고 책임을 져야지요. 그게 부모의 의무예요.

—언제까지 비닐하우스 안에서만 키울 건데? 사내놈인데 세상과 맞서 싸워야……

—당신 눈엔 이게 공정한 싸움 같아요? 우리 준모 혼자 일방적인 테러를 당하고 있는 거라고요. 곤고와 환란의 날들이에요.

아버지가 쩝, 입맛 다시는 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벽 너머에서는 별별 소리가 다 들려오곤 했다. 때론 금세라도 꺽꺽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흐느낌이, 때론 ‘미안해서, 죽어도 죽지 못해, 우리 아들 불쌍해서’ 따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제멋대로 뭉뚱그린 비감한 탄식이. 격앙된 감정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쪽은 늘 엄마였고 아버지는 벽 너머에서도 밋밋하고 존재감이 없었다. 그랬더라도 귀를 막았겠지만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자퇴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벽을 통해 알았다. 엄마의 계획은 꽤 체계적이고 원대했다. 치료와 어학연수 과정을 병행한다는 거였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나서 진학할 유명한 사립기숙학교의 명단도 이미 확보해두고 있었다. 아버지는 줄곧 반대했다.

—걱정 말아요. 내 심장을 팔아서라도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엄마의 답은 단호하고 비장했으며, 아버지의 반대 속에 숨겨진 이유가 경제적 부담이라는 점에 대해 노골적인 경멸을 담아 비난하고 있었다.

—허, 참.

부모의 싸움은 어떤 내용이든 결국 돈으로 귀결되었고 결말은 흐지부지했다. 다른 집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적나라한 대화가 나에게 낱낱이 전달될지 모른다는 염려는 아예 잊은 것 같았다. 내가 이 논의의 제3자가 아니라 당사자라는 것도. 아버지와 엄마에게는 인정하기 싫은 건 믿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엄마가 번갈아가며 입에 올린 ‘정상’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보았다. 터무니없이 멀리 가는 고속버스에 잘못 올라탄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손은 무겁지 않았으나 거추장스러웠다. 그가 두번째 한숨을 내뱉었을 때 나는 별 수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씨팔, 죽어버려, 미친놈.

아버지의 눈에 긴가민가 드리워졌던 희망의 빛이 걷혔다. 다행이었다. 절대자에 의한 모든 곤고와 환란이 그렇듯 내 병 역시 기적처럼 치유되리라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엄마보다는 아버지 쪽이 나았다.

엄마는 또 교회에 있을 것이다. 저녁 무렵 집을 나서며 현관문 닫는 소리가 내 방까지 똑똑히 들렸지만 모르는 척했다. 철야기도회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진심을 다해 간구하면 하느님도 들어주시지 않곤 못 배길 거라는 게 엄마의 주장이었다. 늘 그렇듯 나는 잠자코 있었다. 엄마 앞에서라면, 나는 잠자코 있는 것 외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