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 제19회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작

 

너무 많이 아는 아이들을 위한 가족 로망스

김애란론

 

 

윤재민 尹在敏

동국대 국문과 재학 중. yooonjaemin@gmail.com

 

 

악몽

 

공포영화의 고전 「엑소시스트」(The Exorcist, 1973)에서 퇴마신부 카라스는 아이 리건의 몸에 서린 악령을 퇴치하는 와중, 아이의 입을 빌린 악령의 사악한 대꾸에 끝내 동요하고 만다. “네 어미도 이 안에 있다.” 어머니의 말년을 방기한 것도 모자라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카라스 신부는 즉각 악령에게 자기 어머니의 처녀 때 성()이 무언지 물어보는데, 악령은 이에 답하지 못하고 카라스 신부를 향해 더러운 토사물을 내뱉을 뿐이다. 악령의 앎이 자신이 생각한 만큼 깊지 않다는 것에 안심해서일까. 카라스 신부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의기양양하게 퇴마의식을 재개한다. 영화에서 이렇듯 악령 서린 아이가 내뱉는 이런저런 충격적인 ‘앎’의 발화들은 어른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악령이 서린 리건의 눈망울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모든 것을 꿰뚫고 그들의 치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리건이 발화하는 끔찍한 음담패설과 신성모독이라는 일련의 ‘앎’들은 지켜보는 어른들을 동요시킨다.

아직 몰라야 마땅한 것을 알고(혹은 안다고 가정한 채) 서슴없이 발화하거나 행동하는 아이들은 모든 문명의 골칫거리였다. 이들은 문명이 담지하는 온전한 성인적(成人的) 정상성과 성장의 도정을 훼손하여 사회의 기강과 존립을 뒤흔든다. 영화 「엑소시스트」의 진정한 공포는 어쩌면 악령이 행사하는 무시무시한 초자연적 전능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행하는 지나치게 원숙한 ‘앎의 발화’를 현현함에 있는지 모른다.

지금껏 공동체를 굳건히 지켜주던 온갖 종류의 가치와 가능성이 의문에 부쳐지고 산산이 부서져가는 이 시대에 ‘아이들의 앎’이 주는 끔찍한 악몽이 대두되고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이의 출생과 동시에 어미와 아이의 불화가 파국으로 치닫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는 이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을 담고 있다. 기껏해야 미취학아동에 불과한 케빈은 엄마 에바에게 아이가 생성되는 과정을 적나라한 언어로 호기로이 설명한다. 케빈의 능글맞은 ‘앎’ 앞에서 에바는 무력한 몸짓으로 자신의 당황을 감추려 애쓸 뿐이다. 에바보다 몇수 앞을 내다보고 행동하여 에바의 악몽으로 현현하는 맹랑한 아이 케빈은 마치 70년대 악령 씐 리건의 현시태로서, 문명의 근간을 뒤흔드는 ‘아이의 앎’이라는 모티브를 이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반복하여 보여준다.

‘너무 많이 아는 아이’에 대한 악몽이 어른들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김사과는 한 소설을 통해 서울을 “카길 사의 소고기 패티를 얹은 흰 밀가루빵이며 그것의 다른 이름은 지옥”1)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성장하여 지금껏 생활하는 장소를 지옥이라 단언하는 ‘나’의 정조 한편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앎이 들어차 있다. 현재 스물다섯살인 ‘나’의 세계인식은 아주 오래전에 형성된 어떤 ‘앎’에 기초하는 것이다. “열다섯살인 나는 그곳이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다섯살 때도 그랬다. 스물다섯살인 나는 이제 끝이 아닌 세계를 어디서도 발견할 수가 없다.”(같은 책 234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어린 시절 형성된, 천형과도 같은 앎에 대한 ‘나’의 확신은 모든 것이 악몽 같은 세상에 대한 파괴와 자해로 치닫게 되는데, 이러한 절망의 끝에서 ‘나’가 마주하는 것은 고작 또다른 형태의 앎, 앎의 악무한(惡無限)일 따름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윌리엄 에스 버로우스의 『와일드 보이즈』로부터 상상해내었고, 즉 이것 또한 카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같은 책 235면)

스스로를 악몽으로 현현하여 동세대의 실존적 문제의식을 비참으로 상연하는 김사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어른들이 아이들을 통해 투사하는 시대적 문제의식은 어른들만의 것이 아닌 이 시대 전체가 앓고 있는 총체적인 문명사적 악몽이다. 루쉰이라면 인육을 먹고 자란 아이들을 미처 구하지 못했다고 개탄했을 게 분명한 문명의 맨얼굴이 드러나는 시절이다. 불과 몇년에 걸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촉발하고 있는 ‘아이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