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당신의 승리들을 점거하라

‘월가 점거’ 일주년을 기념하며

 

 

리베카 쏠닛 Rebecca Solnit

미국의 사회평론가, 시민운동가. 1980~90년대 반핵운동에 몸담았으며 현재 뉴욕 자유대학 프로그램과 캘리포니아 인문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국내 번역 출간된 저서로 『어둠 속의 희망』 『걷기의 역사』 『이 폐허를 응시하라』 등이 있다.

 

*이 글은 진보 성향의 미국 온라인저널 탐디스패치(www.tomdispatch.com)에 2012년 9월 16일과 27일 게재된 두편의 칼럼을 옮긴 것으로, 원제는 각각 “Occupy Your Victories: Occupy Wall Streets First Anniversary” “The Rain on Our Parade: A Letter to My Dismal Allies”이다. 본문에 작은 글씨로 들어간 간주(間註)는 모두 옮긴이 주이다. ⓒ Rebecca Solnit 2012 / 한국어판 ⓒ 창비 2012

 

 

‘점거하라’(Occupy)는 이제 한살이다. 상당수의 중요한 문제들에서 일년이란 터무니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한살 때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위대한 화가가 아니었고 베씨 스미스(Bessie Smith)도 뭐 대단한 가수라 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흑인민권운동이 일어난 지 일년이 된 때에도, NAACP(유색인지위향상 전국협회) 몽고메리 지부의 이름 없는 사무장과 애틀랜타 출신의 한 설교사—즉 로자 파크스(Rosa Parks)와 마틴 루서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가 촉매가 되어 일어난 ‘몽고메리 버스 안 타기 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점거하라’라는 이 팔팔한 아이는 일년 전 그토록 강한 투쟁과 기쁨 속에서 태어났고, 우리는 지금 그로부터 12개월이 지난 시점에 있다.

2011917일 당시 ‘점거하라’는 대단한 일로 보이지 않았고, 대다수가 젊은이인 군중이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을 향해 갈 때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운동의 가장 대단한 측면은 지구력임이 증명되었다. 사람들은 승리 혹은 패배를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바로 그곳이 집이라고 결정하고 촉매작용으로 가득한 두달 동안 거기에 자리잡은 것이다.

텐트와 총회, 그리고 ‘점거하라’의 행동과 수단, 이념 들이 미국 전역에 걸쳐, 그리고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에 이르는 서구 세계와 일부 아시아권에서도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지난주까지도 ‘홍콩을 점거하라’는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한동안은 이 아기가 대단한 물건임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이윽고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도시 텐트촌이 해체되었고 운동은 뭔가 좀더 미묘한 것이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들이 그것은 사라졌노라고 말하게 내버려두지는 말자.

작년에 누군가 내게 물어온 가장 깜짝 놀랄 만한 질문은 “‘점거하라’의 10개년 계획은 무엇입니까?”라는 것이었다.

누가 그런 장기적인 관점을 취하는가? 미국인들은 정치적 운동을 슬롯머신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 은행주 세명이 감옥에 가든가 혹은 세가지 분명한 승리가 성취되든가 하는 식으로 신속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동전만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활동가도 승리라는 게 정말 어떤 것인지 아직 규명한 바가 없는 마당에 우리가 거기에 도달할지 말지를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때때로 우리는 세가지 분명한 승리를 실제로 얻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혹은 승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축하하는 게 합당한 일임을 깨닫지 못하기 일쑤며, 어떤 때는 심지어 그것이 승리임을 알아채지조차 못한다. 우리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승리란 대개 간접적이고 불완전하며 느리게 찾아온다. 또 우리가 영향력을 미쳤다고 추측할 수는 있어도 증명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하나하나 손으로 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승리인 것이다.

 

한줌 이상의 승리들

‘점거하라’ 일주년을 기념하여 뉴욕과 쌘프란시스코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그보다 작은 규모의 행동이 다수 계획되었지만, ‘점거하라’의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 중 일부는 그동안 줄곧 조용하고 대체로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꾸준히 일해왔다. ‘채터누가(미국 테네시주의 도시)를 점거하라’에서부터 ‘런던을 점거하라’까지, 사람들은 어떤 때는 그저 토론회를 열기 위해, 어떤 때는 주택차압을 저지하거나 대중시위를 계획하기 위해, 혹은 다른 형태의 조직화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매주 만나고 있다. 예를 들어 822일에는 쌘프란시스코의 저소득층 주거지에 위치한 킴 미첼의 집에 대한 주택차압이, ‘버널을 점거하라’와 ‘노이밸리를 점거하라’(쌘프란시스코에 이웃한 지역들)ACCE(공동체권리를 옹호하는 캘리포니아인연합)와 더불어 결성한 연합에 의해 저지되었다. ACCE는 공화당 정부에 의해 와해된 ACORN(개혁을 위한 지역사회단체연합)을 계승한 단체이다.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승리였고, 경제적으로 또 인종적으로 다양한 단체들이 이렇게 아름답게 협력한다는 것은 또다른 승리였다. ‘주택을 점거하라’ 덕분에 이같은 시위와 승리는 미네쏘타를 포함한 미국 전역에 걸쳐 정기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달 초순에는 ‘월가를 점거하라’의 도움을 받아 맨해튼의 식당노동자들이 어떤 형편없는 사장과 직장폐쇄를 물리치고 레스토랑 체인인 핫 앤드 크러스티의 한 가맹점에 결국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직장에서 쫓겨난 동안 노동자들은 보도를 점거하고 거기서 ‘노동자 정의 까페’를 운영했다)

로드아일랜드주의 프로비던스에서는 지난 1월말 ‘점거하라’ 텐트촌이 해산했지만 이는 시 당국이 노숙자를 위한 주간 쉼터를 연다는 조건하에서만 이루어졌다. 프린스턴대학은 더이상 대형 은행들을 캠퍼스로 초대해 채용활동을 벌이게 하지 않는데, 이는 십중팔구 ‘프린스턴을 점거하라’ 덕분인 것 같다.

이같은 수많은 작은 승리가 있었을 뿐 아니라 몇몇 큰 승리도 있었다. ‘돈을 옮겨라’(Move Your Money,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에 맡겨놓은 돈을 지역기반의 소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