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고달프고 억울한 사람들과 우리 시대의 문학

 

세상의 고통과 대면하는 소설의 자리

 

 

정홍수 鄭弘樹

문학평론가. 평론집 『소설의 고독』이 있음. myosu02@hanmail.net

 

 

1. 배제되고 고통받는 다수의 세상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민중이라는 집단적 표상과 관련지어 형상화하려는 문학적 움직임 속에는 그 민중의 자리를 역사적·사회적으로 주체화하려는 의지가 중요한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역사의 변화를 이해하고 기획하는 커다란 밑그림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은 다 아는 대로다. 그러나 세기말의 세계사적 격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국면, 유동적 근대의 상황,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의 현실 등과 마주치게 되면서 종래의 민중 표상으로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담아내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민중 정체성과 관련된 세상의 변화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집합적 실체로서 민중의 표상이나 개념에 일정한 관념화의 여지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선재(先在)하는 우월한 개념이나 표상의 도움 없이 현실의 모순과 마주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문학적으로 특별히 답답할 이치도 없지 않을까. 문제는 언제든 문학이 그 자신의 질문을 찾아내게 마련인 당대의 구체적 현실이 사회적·경제적 고통의 양을 확대하며 숱한 공공의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의 전선이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반면, 그 반대의 상황을 기대하고 상상하기 힘들어진 오늘의 상황에 있을 것이다.

2000년대 한국소설의 현장에서 공동체나 사회의 조력 바깥에 놓인 무력한 개인의 고립과 관련된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은 이제 너무도 흔한 일이 되었다. 반지하방이나 고시원 쪽방에서 임시직으로 희망 없는 나날을 이어가는 젊은이들의 일상이 소설의 유력한 배경이 된 지도 오래다. 강제적 명퇴나 실업으로 아버지의 자리는 비어 있기 일쑤고, 그 아버지가 모자가 되어 벽에 걸려 있다 한들 놀랄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서사는 공동체적 유대와 사회적 지속의 상상력을 잃고 붕괴와 해체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그 자신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무한 경쟁사회의 압력이 고스란히 전이된 학교의 황폐화와 학원폭력의 현실 역시 이즈음의 소설에서 자주 인용되는 암담한 세상의 상징이다. 그리고 재앙의 상상력, 종말론적 세상을 암시하는 서사에 이제는 다들 얼마간 익숙할 정도다. 그러나 그간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이나 시민운동의 성장, 개개인의 의식의 열림 등에서 한국사회의 현실을 자본이나 시장으로부터의 일방적인 패주(敗走)로 설명할 수 없듯이, 일견 무력하고 암울한 색채가 지배적인 한국소설의 분위기 역시 ‘사회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감각과 이해를 반영하는 한편, 그 개별의 구체적 자리에서는 주눅 들지 않는 상상력으로 불우한 세상을 견디고 타자의 아픔을 향해 고단한 자아를 개방하는 공감의 순간들을 찾아내왔다. 민중 현실을 다룬 지난 연대의 소설에서 많은 헤아림에도 불구하고 민중을 대상화하는 작가-지식인의 시선이 종내 일정한 관념적인 편향을 드러낸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한다면, 사회적 약자의 전선이 특정 계급이나 계층의 영역을 넘어 전면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어쩌면 오늘의 작가들은 그들 자신을 포함해 그 전선의 실체를 매번 새롭게 의식하고 그려갈 수밖에 없다. 2000년대 한국 소설에 부각되었던 탈현실의 상상력을 거론할 때도, 괴물스러운 현실 그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미학적 모험의 측면과 함께 이성적 인식이나 조절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난 듯한 신자유주의 세계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마주한 작가들의 곤경을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다.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현실에 맞서 새로운 비극론의 수립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인상적인 통찰을 전해준 바 있다. 그것은 시스템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라는 사실이다. “사회체제가 일정한 소수집단을 경멸하고 배제한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이러한 배제의 장면을 얼마든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반면, 계급 분석을 해보면 놀랍고 충격적이게도 사회체제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게 다수를 배제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가 이 사실에 대해서 별다른 충격을 받은 바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 뿐 아니라 역설적이기도 하다.”(『우리 시대의 비극론』, 이현석 옮김, 경성대출판부 2006, 509면) 2003년의 보고서다. 그런데 2000년대를 사는 많은 한국인들이 이 점에 대해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는다면, 그건 계급 분석 이전에 나날의 현실에서 이미 넘치도록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어서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가 소설에서 만나는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는 바로 그 배제되는 다수의 자리에서 씌어지는 다수의 현실인 셈이다. 그리고 앞서도 이야기했듯 최근 한국소설에서 이같은 고통의 현실을 읽는 것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김애란(金愛爛), 조해진(趙海珍), 공선옥(孔善玉)의 근작들 역시 예외가 아닌 듯하다. 물론 우리가 주목하려고 하는 것은 세상의 고통에 감응하는 가운데 이들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