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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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黃貞殷

1976년 서울 출생.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가 있음. aamudo@empal.com

 

 

 

장편연재 2

소라나나나기

 

 

娜娜

 

나나입니다.

말해보겠습니다.

 

나나(娜娜)라고 씁니다.

앞글자도 뒷글자도 나(). 나(),라는 글자가 두번이나 반복되어서 娜娜. 앞으로도 뒤로도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아홉 가운데 여덟의 확률로 애자입니다. 애자답다,라는 것은 소라의 의견이고 애자가 지나치다,라는 것이 나나로서 당사자인 나의 생각입니다. 애자의 함량이 지나치게 높은 이름인 것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나라고 말해도 나. 나나라고 말해도 나. 나나라는 이름은 나나라고 말하기에 좋습니다. 소연이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소연이는, 소연이가,라고 말하거나, 연숙이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연숙이가,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매끄러운 어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따금 나나라고 자칭합니다. 자의식이 굉장한 사람이나 자신을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는 거야,라는 새침한 지적을 들은 적이 있지만 그 정도의 자의식을 불쾌하게 여기고 지적하는 자의식도 상당히 굉장하다,라는 것이 나나의 생각입니다. 나는 나나. 나나는 나. 좋아하는 것보다도 싫어하는 것보다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잔뜩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결국은 비등한 에너지의 소요. 이것저것을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좋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것을 잔뜩 만들어두었습니다.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고 사과를 좋아하지 않고 겨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눈도 비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고양이도 개도 좋아하지 않고 부엉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이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좋아하지 않는 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임산부입니다. 임산부,라고 말하자니 어색하네. 임산부의 부는 부(). 나는 나나일 뿐 아직은 며느리도 아내도 아니라서 어색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꾸 말하면 익숙해지나, 임산부. 임산부,라고 자꾸 적고 보면 어떨까 싶어서 임산부,라고 다시 적어보지만 여전히 어색하네. 어떻게 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어색합니다. 어색하고 불안합니다. 경계하고 있습니다. 경계할 때는 나나라고 말합니다. 쓸쓸할 때도 나나라고 말합니다. 쓸쓸하고 불안할수록 나나가 늘어서 나나나나. 나나에게 나나라는 이름을 붙여준 애자는 본인의 이름 그대로 사랑으로 가득하고 사랑으로 넘쳐서 사랑뿐이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뿐이던 애자는 그 사랑을 잃자 껍질만 남은 묘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소라와 나의 아버지인 금주씨가 살아 있을 적에, 나는 정말로 묘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아로 자란 애자가 어느 해인지 부모의 제사상을 마련하고 제사를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여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 무렵 애자는 어떤 사람이 꿈에 보인다고 자주 말하곤 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으로, 머리맡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고 마가 좋냐 솔이 좋냐, 뜻 모를 말을 묻기도 하고 으그그그 신음하기도 한다는데, 그 사람이 실은 죽은 사람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심상하지 않다며 어딘가의 점집으로 점을 보러 갔던 애자는 보통 때와 다름없는 얼굴로 돌아와서는 부모 가운데 오래전에 객사한 사람이 있대,라고 말했습니다. 제사상을 받지 못해 목이 말라 자꾸 찾아오는 거래.

제사상은 소규모로 애자와 금주씨가 사용하는 방에 마련되었습니다. 가장 넓은 벽에 지방문이 적힌 종이를 붙여두고 그 아래 놓인 상에 떡과 배와 곡주를 담은 그릇을 놓은 뒤 금주씨부터 절을 올렸습니다. 지방문은 금주씨의 글씨로 적혀 있었는데 먹을 담뿍 써서 글자 주변으로 종이가 우글우글하게 울어 있었습니다. 귀신처럼 고불고불한 저 글자들을 뭐라고 읽느냐고 묻자 금주씨는 현고학생부군신위, 현비유인모씨신위,라고 읽어주었습니다. 왼쪽은 나나의 할아버지, 오른쪽은 나나의 할머니,라고 덧붙인 뒤, 산 사람에겐 송구하지만 돌아가신 것이 어느 쪽인지 모르니까 둘 다 적었어,라고 금주씨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그가 가르쳐주는 대로 소라와 내가 납죽납죽 절을 올리고 나자 애자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두번째 절을 마친 뒤에도 애자는 엎드린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엉덩이 아래 하얀 발바닥을 드러낸 채로 한참이나 다만 엎드려 있었으므로 소라와 나는 안절부절못했지만 금주씨는 애자를 내버려두고 있었습니다.

보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절 올리기를 마친 뒤에는 죽은 사람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상이 차려진 방을 비우고 거실로 나와 수박을 먹었습니다. 애자는 멀쩡한 모습으로 칼을 손에 쥐고 먹기 좋은 두께로 수박을 잘랐습니다. 애자의 칼질로 빨갛게 펼쳐진 수박은 씨 주변까지 달게 익은 것이었습니다. 소라와 둘이서 가장 맛 좋은 가운데 부분을 쟁탈하듯 먹느라고 상당한 수박을 먹은 나는 오줌을 누려고 식구들 곁을 떠나 욕실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보니 제사상이 놓인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조금 열려 있었습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 틈으로 방 안을 엿보았고, 촛농과 조그만 불꽃 냄새, 종이 냄새가 은근하게 풍겨나오는 문틈으로 접시에 놓인 배를 만지는 손을 보았습니다. 어떤 손인지를 파악해볼 겨를도 없이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 있네, 하고 생각한 뒤로는 그 문 앞을 떠나 욕실에서 오줌을 누고 식구들이 모인 자리로 돌아가 수박을 마저 먹었습니다. 보고도 뭘 보았는지 몰라 문틈으로 본 것은 금세 잊었습니다. 비밀이고 뭐고 곧장 잊어버려서 나만 아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손의 사람,이라고 짐작되는 사람의 꿈을 꾼 것은 바로 오늘 아침의 일입니다.

눈을 뜨고 보니 방 안이 몹시 어두웠고 머리맡엔 큰 창이 있었습니다. 현실의 내 방엔 창이 있어도 그 정도의 크기는 아니라서 아 이것은 꿈이로구나, 생각했습니다.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오르는 계단이 창밖에 있었고 전에 본 적이 없는 할머니가 그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위쪽 어딘가에 푸르스름한 광원이 있어, 숱 적은 정수리와 동그스름한 어깨로 불빛을 받으며 잠자코 앉은 모습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서글픈 기색으로 방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그늘진 입을 우물우물 움직여 애자는 어디에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애자는 요양원에 있어,라고 대답하자 조금 더 서글픈 기색이 되어서는 데리고 와,라고 말했습니다. 그 손의 사람이로구나, 하고 꿈속에서 생각했습니다. 오래전 나나가 곧바로 잊었던 그 손의 사람, 할머니로구나. 애자의 엄마로구나.

그렇지 않을까?

 

그런 꿈을 꾸었다고 소라에게 말한 뒤 그렇지 않을까,라고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소라와 거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소라도 나나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소라와 나,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쪽인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소라에게 심한 말을 해버린 것은 내 쪽이었습니다. 징그럽다고 말해버렸으니까. 소라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아서 하얗게 질리고 말았는데 충격을 받을 것이 없었다면 그 정도의 얼굴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대로 건드렸으므로 제대로 충격을 받고 만 것이다,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소라는 교활해. 소라는 연약해. 연약하고 교활해. 이윽고 엄마가 될 몸 같은 것, 실은 섬뜩하다고 여기고 있으면서 친절하게 대해주었으니까. 이것저것을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고 모두가 하는 대로, 텔레비전에서 본 대로, 마음도 무엇도 없는 친절을 베풀었으니까.

엉망진창.

소라는 이따금 애자를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애자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 앗 깜짝이야, 하고 놀라는 상황을 우습게 여기고 함께 웃으며 넘어간 것도 수차례, 이윽고 더는 웃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던 시점은 삼년 전이었습니다.

그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나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나흘이나 회사를 결근한 적이 있었습니다. 열이 올랐다가 내리기를 반복하고 끔찍한 오한에 근육통을 앓느라고 머리며 머릿속이며 녹진녹진, 녹아내리는 듯한 나날을 보내던 참이었습니다. 애자마저 걱정이 되었는지 그날은 내 방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른 날과 같이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온 소라는 그 방으로 들어와 좀 어떠냐고 물으며 이부자리 곁에 앉았고 가방을 뒤져 바나나 푸딩을 꺼내놓았습니다. 근처 수제과자점에서 파는 것으로 플라스틱 컵에 담긴 노란 푸딩의 맛이 거의 솔직한 바나나 맛이라서 소라도 나도 자주 사먹곤 했던 푸딩이었습니다. 소라는 하루 종일 신고 다녀 먼지가 앉은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뻗고 푸딩 컵을 하나씩 꺼내 자기 스커트 위에 올렸습니다. 푸딩 컵 포장을 뜯어 플라스틱 스푼과 함께 내 손에 쥐여주고 이건 애자 것, 하며 한개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자기 몫의 푸딩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음식을 먹는 모습 그대로, 노랗고 불투명한 푸딩 표면을 내려다보며 골똘하고 성실하게 먹고 있었습니다. 열에 시달려 가물가물해진 눈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애자도 줘, 하고 말하자 소라는 바나나 푸딩을 한 숟가락 떠먹으며 방에 없던데,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있잖아.

그렇게 말하자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 안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애자가 내 발치 쪽에 앉아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애자가 앉은 방향을 보고도 보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애자는 내가 덮고 있는 이불자락 귀퉁이를 깔고 앉은 모습으로, 자신을 보지 못하는 소라를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열 때문에 맺힌 눈물로 그렁그렁해진 내 눈에는 소라도 애자도 모두, 비등한 정도로 섬뜩하게 여겨진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지 못하거나 보거나 애자에게는 사실 상관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보지 못하거나 보거나.

그 사람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야.

금주씨가 죽은 시점에 애자는 이미 죽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애자는 오래전에 죽으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소라가 열한살이고 내가 열살이었을 때, 그때까지 금주씨와 살던 집에서 짐을 꾸려 나온 직후였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집을 떠나 이제부터 살 집에 당도한 뒤, 빌린 수레를 돌려주고 오라는 애자의 부탁을 받고 소라와 나는 둘이서 집을 나섰습니다. 넝마주이의 수레는 바닥에 합판을 대고 때운 흔적이 있는 낡은 것이었고 풀지 못한 노끈 매듭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습니다. 수레의 손잡이는 닳고 닳은 고무줄로 친친 감겨 부드러웠습니다. 처음엔 둘이서 나란히 이 손잡이에 매달리듯 밀고 끌며 걷다가 나중엔 놀이 삼아 번갈아가며 수레를 탔습니다. 서른걸음마다 위치를 바꾸고 입장을 바꿉니다. 그런 규칙으로 이마며 관자놀이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때까지 수레를 밀거나 수레에 타거나 하며 이동했습니다. 서른번의 걸음 뒤에 내가 탈 차례가 되면 냉큼 수레에 오른 뒤 엎드렸습니다. 거북이 등딱지에 얹힌 토끼가 되어서, 용궁으로 내려간다,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실려가면 간을 먹히겠지.

하지만 거북이가 너무 빨라 도저히 뛰어내릴 수 없고나.

억울하고나.

이제 곧 먹히겠지, 간을, 먹히겠지, 하고 생각하자 슬프고 슬퍼서, 눈물이 핑 돈 채로 수레 바닥에 웅크리고 있다가, 순번을 바꾸어서 거북이가 되면 이번엔 간을 내놓아라,라는 입장이 되어서 씩씩하게 수레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토끼야, 토끼야, 간을 내놓아라, 네 간을 먹고 용왕님이 낫는다, 내놓아라 그 간, 간을 내놓아라. 그렇게 살던 집에 당도하고 보니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기묘한 바지를 입고 더러운 모자를 쓴 남자가 그 집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소라는 단박에 긴장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입은 조그맣게 다물어졌고 땀이 밴 목은 긴장으로 꼿꼿해졌습니다. 그릇과 도구를 살펴보던 남자는 소라와 나를 보고도 놀라지 않고 느긋하게 우리 집에서 우리 식구들의 밥그릇과 숟가락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불안해진 나는 가자고 조르며 소라의 팔에 달라붙었지만 소라는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윽고 창백해진 채로 그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그 집을 등지자마자 소라는 빠르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빨리,라고 나를 재촉하며 달리듯 걸었습니다. 나는 좀처럼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소라의 등에 눈을 고정시키고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는데도 뒤처집니다. 그렇게 자꾸 나는 뒤처지고 나나는 뒤처지고 나는 뒤처지고 나나도 뒤처지기를 반복해서 나나는 외롭습니다. 다리가 몹시 뻣뻣해서 발을 내밀 때마다 바로 다음 순간 넘어질 것 같은데 한번이라도 넘어지면 그 길에 고스란히 남겨질 것 같아 무섭습니다. 언니야,라고 불러도 소라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큰일이야, 큰일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조그만 등을 보이며 빠르게 걸어갈 뿐입니다.

언니야.

언니야.

언니야,라고 불러도 돌아봐주지 않는다면 언니는 언니가 아닌 거야,라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소라야,라고 불러줄 테다. 다시는 언니야,라고 불러주지 않을 테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애자는 우리가 수레를 돌려주러 나설 때 보았던 것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현관에서 내던지듯 신발을 벗고 애자의 곁으로 돌아간 소라는 애자의 곁에 납죽 앉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엄청난 기세로 걷느라고 거칠어진 호흡을 감추려는 듯 입을 다물고 어깨로 숨을 쉬면서, 꼭 쥔 주먹을 넓적다리에 올린 채로 애자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목에 찰싹 들러붙은 모습이었습니다. 소라로부터 풍겨오는 미지근한 소금 냄새를 맡으며 애자를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알게 되었습니다. 죽으려고 했구나.

소라와 나나를 내보내고 애자는 죽으려고 했구나.

 

이미 죽었구나.

수십번 수백번은 죽어버렸구나.

저렇게 누워서, 여러가닥으로 찢어져서.

그런 것을 그냥 알게 된 어린 시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시절이라도 그 시절에 그 집에서 나기 오라버니를 만났으므로 그 시절에 관한 인상이 모조리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도 죽었어,라고 나기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마음이 편안해져 나기 오라버니를 더는 경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친밀해지는 꼬맹이라니, 어머 지금 생각하고 보면 나는 뭔가 징그럽고도 충실한 꼬맹이였네. 하여간 소라와 나기 오라버니가 석달 간격으로 열두살이 되었던 해의 일이라고 기억합니다. 우리 아버지도 죽었어,라고 나기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겨울에 사과궤짝을 나르다가 쓰러졌대. 시장에서 어른들이 봤는데 그냥 넘어지는 것처럼 쓰러져서 죽었대. 넘어질 때 궤짝을 실은 지게 아래 깔려가지고 목이 부러졌을지도 몰라서 어른들이 건드리지도 못했대. 그냥 그렇게 죽었대. 장례식장에 시장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죽어서 안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드물었대. 우리 아버지는 시장에서도 유명했대. 평소엔 얌전한데 술을 마시면 사람이 달라져서. 물건을 부수고 사람도 부수려들고. 그래서 장례식장에선 죽어서 안됐다고 말하는 사람보다도 그 인생 참 안됐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우리 어머니가 그랬어. 죽어서 다행이래. 그런데 제사 때마다 우냐. 죽어서 다행인데 왜 우냐.

친척들이 모인 조용하고 조촐한 제사를 끝낸 뒤, 어딘지 시달린 듯한 모습으로 떡이며 전을 가지고 이쪽으로 넘어온 나기 오라버니의 말이었습니다. 먹으라고 가져온 것을 자기 쪽에서 꾸역꾸역 먹으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애자는 금주씨에게 제사상을 차려준 적이 없습니다.

소라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 희한한 구조의 집에서 살게 된 직후, 소라와 나는 금주씨가 목이 마르면 안되지,라는 의견으로 한동안 머리맡에 물그릇을 마련해두고 잠들었다가 아침에 그릇 속의 물이 줄어든 정도를 재고는 했습니다. 부쩍 줄어든 날은 금주씨가 다녀간 날. 적게 줄어든 날은 금주씨가 별로 목마르지 않은 날. 그 무렵 우리 자매의 소꿉놀이 주제는 금주씨의 제사였습니다.

현고학생부군신위.

금주씨에게 들은 그 말을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나는 이렇게 적는 거야, 하며 습자지에 연필로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몇번이나 적어 보였던 것입니다. 잘난 척을 했지만 실은 현고학생부근신위,라거나 현고학생부근신이,라고 엉터리로 적어두고 제대로 적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고학생부군신위, 부근, 신이, 어느 쪽이든, 한문으로 쓸 줄은 몰랐으므로 한글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소라는 감탄해서 가장 단정한 글씨체로 적힌 것을 골라 신중하게 벽에 붙여주었습니다. 소꿉놀이의 시작입니다. 상주는 우리 자매. 나기 오라버니에게는 조문객 노릇을 맡기고 조문을 받는 것으로 제사를 진행합니다. 지방문 아래 촛불을 켜두고 캐러멜이나 빵 조각을 담은 접시를 놓아두고 아이고아이고, 곡을 하고 있으면 나기 오라버니가 문지방 근처에 서 있다가 조문을 하러 들어옵니다. 절을 두차례 넙죽 올린 뒤 소라와 나를 향해 얼마나 상심이 크신지,라고 의젓하게 말하는 것이 순서였습니다. 제사의 규모를 키우고 싶을 때는 조문객 노릇을 맡은 사람이 몇번이고 문지방으로 돌아가서 다른 사람인 척 다시 입장했습니다. 때때로 역할을 바꿔서 오라버니가 상주가 되고 소라와 나나가 조문객 노릇을 맡을 때도 있었는데 오라버니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신지,라고 가장 의젓하고 자연스럽게 말할 줄 알았던 사람은 셋 가운데 아무래도 오라버니였던 것입니다.

주고받을 이야기도 더는 없고 아이고, 소리를 내는 것에도 지칠 무렵에는 셋이 나란히 앉아서 초가 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촛불은 초를 녹이며 점차로 가라앉습니다. 한낮에도 햇빛이 별로 들지 않아 서늘하고 어둑어둑한 방은 조그맣고 따뜻한 이 불빛으로 깜빡거리고 있었습니다. 불빛과 함께 세 사람을 담은 채로 통째로 세상과는 동떨어져 깜빡, 깜빡,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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