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심사평

 

12회 창비신인시인상에 접수된 426명의 원고를 심사위원 3인이 한달간 검토했고, 각자 3명 내외로 2차심에 추천했다. 이들의 원고를 약 2주 간 집중 검토한 후 1018일 최종회의를 진행했다. 시를 통해 실패를 무릅쓰고 세계라는 감성공동체에 지속적으로 참여해나갈 강한 의지와 체력이 엿보이는 신인을 우리는 만나고 싶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언어가 인상적이나 알맞은 그릇에 담기지 못해 언어의 긴장감과 시적 전개가 다소 정체되어버린 김지은의 시편들을 아쉽게 내려놓으며, 최종적으로 심도깊게 논의된 것은 김숙, 안희연, 장혜령 3인의 작품이었다.

김숙의 「저녁의 저울」 외 5편은 탄탄한 서정을 갖추었고 언어를 조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서정적인 언어를 지루하지 않고 세련되게 다루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특히 표제작이 매우 아름다워 오래 붙잡고 있었다. 응모된 거의 모든 시편들이 큰 편차 없이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으나, 다른 시적 공간으로 진입하려는 의지가 다소 약해보였다. 시의 매혹은 어떤 완성에서 온다기보다, 지금껏 내가 내딛지 못한 다른 시공간으로 옮겨가는 중에 낯설고 막다른 상처처럼 얻어지는 듯하다.

장혜령의 「이방인」 외 9편은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다. 특히 「이방인」은 수작이다. 사유는 날카로우며 유연하다. 언어는 개성적인 에스프리로 흠뻑 젖어 있다. 돌발적으로 툭 던져지는 듯한 구절은 시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놀랍게도 뚜렷한 하나의 전언을 향해 화살표처럼 모여든다. 장혜령은 당선자가 결정되기 직전까지 우리를 고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고심을 「이방인」이라는 시를 통해서만 주로 안겨줬다는 데 아쉬움이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작품들에서는 「이방인」을 통해 보여준 강점들이 거의 발휘되지 않았다. 만약 「이방인」이 이번에 응모한 시편들 중 비교적 최근에 창작된 것이라면, 장혜령은 지금 명백히 도약하고 있는 중이다.

안희연의 「고트호브에서 온 편지」 외 9편은 매우 감각적인 언어를 수집하고 배치하면서도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의 진폭을 상당히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당연히 그것은 진지한 고투의 산물이다. 동시에 실패를 무릅쓰고 부단히 다채로운 시공간을 창조하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조탁된 시의 행간에는 침묵이 생명체처럼 도사리고 있고, 그 침묵이 주는 텐션은 매혹적이다. 이 모든 덕목은 최근 신인들에게 그리 흔히 발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 현재보다 미래를 더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 신뢰를 보내며 당선자로 선정했다.

심심찮게 관찰되는 무거운 추 같은 미완의 세계를 발목에 매달고 난바다를 건너 또다른 시의 영토로 한번 더 도약하는 것은 지금부터 온전히 그의 몫이다. 앞으로 있을 그 고투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부디 매혹을 선사해주길. 이 새로운 시인이 우리의 예감과 기대를 멋지게 증명해주길 부탁한다.

|김중일 박성우 이영주 |

 

 

 

시 | 수상소감

 

4407

안희연

1986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수료.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제 안에서 자꾸만 허물어지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수혈하듯 책을 읽고 지혈하듯 시를 썼을 뿐. 다시는 시를 쓸 수 없을 것 같은, 아니, 다시는 시를 쓰지 않아도 담담한 척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마음의 끝간 데에서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게 피의 일이라서 다행입니다.

제 언어의 맨 처음에 계시는 이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너무 사랑하는 것은 병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허리를 묻고 흙으로 얼굴을 뒤덮으려 했던 저를 용서하세요. 물웅덩이를 찰박거리며 혼자 놀던 아이를 불러 품에 안아주셨던 시간들, 잊지 않겠습니다.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으로 매 순간 저를 데려다놓으시는 남진우 선생님, 선생님의 등은 참 따뜻합니다. 올 겨울엔 빛나는 부엉이를 찾아 또 어디로 떠나게 될까요. 오래오래 따라 걸을게요. 시인은 철들면 안된다는 부질없는 변명을 묵묵히 참고 견뎌준 엄마, 언니, 사랑합니다. 우리는 여리지만 단단합니다. 나의 시가 증명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시의 땅에서 죽어갈 수 있게 붙들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도망칠 수 없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저에게 있어 시는 유일한 자유입니다. 시 밖은 낭떠러지. 팽팽한 줄 위에서 춤추겠습니다.

정말 가고 싶은 단 하나의 장소만은 끝끝내 남겨둔 채 전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꿉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여행하는 꿈을 꿉니다. 단 한권의 책, 단 한페이지, 단 한줄의 문장, 단 하나의 단어…… 마침내 새하얀 공백일 뿐일 단 하나의 그리움을 향하여. 가장 가까운 것으로 가장 멀리 가고, 가장 단순한 것으로 가장 깊이 가는 시를 쓰겠습니다. 시 앞에서 내내 무릎 꿇고 있겠습니다.

 

 

 

소설 | 심사평

 

15회 창비신인소설상에는 총 277명의 신인이 작품을 보내주었다. 1차심을 통해 심사위원 다섯이 각각 2~3인의 응모자를 추천했다. 201210182차심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된 작품은 나경화의 「래브라도라이트」, 윤서적의 「숭례문 블루스」, 윤지완의 「당신의 아름다운 세탁소」, 정은경의 「율마」, 최정화의 「팜비치」이다.

나경화의 「래브라도라이트」는 지하철 운전자의 삶을 직접 살아본 사람이 증언하는 듯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정보 위에 축적된 소설로, 수치와 통계 속에 한 인물의 고유한 삶이 어떻게 망각되고 훼손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둡고 긴 터널에서의 삶을 적절하게 소설적 소재로 운용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이나 방식이 예측 가능하고 사실적 정보에 과도하게 기대고 있다는 점도 흠결로 지적되었다. 사실적 정보 이상의 무언가가 인물에게도 그리고 그 인물을 집어삼키는 어둠에도 내재하지 않을까란 물음을 떨칠 수 없었다.

「숭례문 블루스」는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 쓴 소설이다. 외국인 게이를 화자로 내세워 외국인이 바라본 숭례문과 게이가 바라본 가질 수 없는 상대에 대한 감정을 능청스러운 경어로 이야기하는데, 후반부에 가면 독자는 이 작품이 결국 한편의 사랑노래였음을 알게 된다. 블루스가 이야기에 녹아드는 것을 넘어 이야기가 블루스가 된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이 지닌 이야기의 힘은 놀라운 것이었으나 거친 문장이 더러 눈에 띄는 점이 아쉬웠다. 좋은 소설은 이야기의 집인 동시에 언어의 집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윤지완의 「당신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삶을 바라보는 깊이있는 시선을 내재한 소설이다. 한 평범한 개인의 누추한 비밀이 우연한 사건으로 망각의 봉인에서 풀리는 과정과 그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방기했던 윤리적 책임이 삶으로 회귀하는 순간 한 개인이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과정이 섬세한 필치로 전개된다. 그러나 다소 익숙한 내용으로 너무 확연하게 의미화된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정은경의 「율마」는 특이한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이다. 작품 속 인물들의 대화가 특히 빛난다. 몇명이 한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나 그 대화는 서로 다른 의미의 방향을 강렬하게 지시했는데, 그같은 단절 속에서도 이야기는 무리 없이 진행되는 형식이다. 문장 하나, 대화 하나에 힘을 실어내는 역량이 돋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다듬은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날것의 힘을 보여주는 문장은 단번에 쓰인 문장이 아니라 단번에 쓰인 것처럼 보이는 문장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선작을 고르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최정화의 소설은 여러모로 단연 돋보였다. 「팜비치」는 개인의 불안에 침잠하는 게 아니라 세계의 불안과 마주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불안은 소설 속에서 어떤 인물도 무너뜨리지 못하며 또한 어떤 사건도 파국으로 이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은 지루하면서도 때론 희극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극적인 것으로부터 비껴선 저 불안의 양태가 오히려 이 소설을 신뢰하게 했다. 실재에 가까운 우리 시대의 불안이 예리하게 포착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상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독자들은 조만간 그녀의 이름을 특별한 소설가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 믿는다.

| 김미월 백지연 손홍규 송종원 편혜영 |

 

 

 

소설 | 수상소감

 

4407

최정화

1979년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얼마 전 녹색연합에서 주최한 그린 컨퍼런스에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야생 다큐로 유명한 황윤 감독님의 연설을 듣게 되었다. 감독님은 어렸을 때 기르던 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녀의 작업은 애니(어쩌면 앤이었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이름을 가진 한마리 하얀 개에서 시작되어 동물원의 철장 속에 갇힌 동물에게로, 로드킬을 당한 동물과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 그리고 잡식을 하고 있는 인간을 향해 점점 넓어져가고 있었다. 그녀가 자기의 세계를 그렇게 확장해가며 동물들의 말을 인간의 말로 바꾸어가는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았고, 그렇다면 나의 주제는 무엇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벌레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내게 당신은 산을 보지 못하고 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나뭇잎 뒤에 달라붙은 아주 작은 벌레일 뿐이다, 좀더 멀리서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내가 어딘가 이상해서 작은 벌레가 자꾸만 크게 보이는 거라고 했다. 아마 가능했다면 나는 그 말대로 했을 것이다. 산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벌레, 아마 그게 내 주제였던 것 같다. 그게 내가 한평생 발전시켜나아가야 할 몫인 것 같다. 당신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을 써라, 당신의 주제와 그에 대한 열정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던 어느 작가의 말을 항상 기억하고 있다.

 

부족함이 많은 글이었을 텐데 늘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조해룡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함께 소설을 썼던 한빛, 들녘, 키위살롱, 카제, 이야기에서 함께한 친구들에게도 고맙다. 그리고 이제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감사를 전한다.

내 주제가 어떻게 확장되어갈까. 더 큰 벌레를, 벌레들을 보게 되는 걸까. 아니면 나도 언젠가는 산에 대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는 날이 올까 궁금하다. 그렇게 된다면 그땐 조카 동효의 이름을 첫장에 쓰고 싶다. 부모님께 늘 걱정만 끼쳐드렸는데 간만에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즐겁다.

 

 

 

평론 | 심사평

 

문학의 형질이 변화하면서 평론의 위상과 정체성도 자못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까? 응모작들은 ‘평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평론이라는 글쓰기의 목적, 방법, 수사학, 문체 등에 관한 여러 격차들이 한곳에 모여 쟁투하는 형국이었다. 작품을 읽어내는 데 충실하면서 개성과 보편성이 맞닿는 황금 지점을 찾으려는 해석학적인 글, 주목받는 문제작들을 토론장에 불러내 최근 문학의 쟁점에 호기롭게 참여하는 논쟁적인 글, 현대문학의 고전에 속하는 작품을 외국문학과 철학의 담론으로 풀어내는 아카데믹한 글, 작품에 대한 감상을 분방하게 풀어놓는 무()장르의 글, 텍스트를 유려하게 통과하면서 텍스트에 대한 자율적인 평론 쓰기를 열망하는 미학적인 글 등은 ‘평론’의 가능한 영역을 공동으로 탐색하는 듯했다. 총 20편의 글이 빚어내는 풍경으로는 이채로울 만큼 다채로웠다.

그러나 다채로움이 ‘나는 왜 평론을 쓰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완성도로 직결된 것은 아니었다. 어떤 형식과 스타일을 택하든, 평론은 당대 문학과 현실에 의미있는 질문을 거듭하는 글쓰기여야 한다. 남들이 이미 한 질문이라도, 그 질문에 대한 재해석과 재구성은 지금 쓰는 자의 몫이다. 갖가지 서구 이론에 기댈 때도 이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질문을 (재)구성하는 능력과 글의 완성도가 대체로 평행함을 확인하면서, 마지막까지 손에 든 작품은 3편이었다. 「새로운 주체에 대한 모색: 진은영과 송경동을 중심으로」(이소영)는 질문을 구체화하고 이를 문학의 새로운 주체 및 미래와 연결하려는 기획력에서 눈길이 갔다. 그러나 ‘감각적/미학적 주체’와 ‘실천적/직설적 주체’의 완강한 이분법에 함몰돼 생산적인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김소진, 김경욱의 소설에 관한 「어느 비평가의 변신」(이미옥)은 발군의 글솜씨를 보이는 화려하고 매력적인 평문이다. “나는 쓴다”의 (재)주체화가 “무언가를 계속해서 남기”기에 “비평가의 변신”은 계속될 수 있다는 것. 비평(가)의 더 나은 길을 모색하는 강렬한 자의식을 철학적이며 미학적인 수사로 변용한 이 글은 사유의 밀도가 높은 대신, 그 수사와 사유의 미로에서 다소 혼란스럽게 헤매는 양상이 되었다. 당선권에 들 만하나, 텍스트를 인용하고 전유하는 기술과 표현의 명확성이 부족해 아쉽게도 제외되었다.

김애란론의 형태를 띤 「너무 많이 아는 아이들을 위한 가족 로망스」(윤재민)는 정교하고 수려하지는 않으나, 질문의 독창성과 당대 문학을 설명해내는 키워드를 구축하는 능력이 돋보이는 글이다. 극단적인 노숙함, 조로(早老)의 외양으로 도착한 최근 소설의 ‘너무 많이 아는 아이들’을, “이 시대 전체가 앓고 있는 총체적인 문명사적 악몽”으로 해명하려는 윤재민의 비평적 기획은 한국문학과 사회를 넘어 문명사적 스케일을 내장하고 있다. 윤재민은 프로이트의 가족로망스 이론을 원용해 탄생, 성장, 노화, 죽음의 인간-서사를 현대문명이 어떻게 변형하고 변질시켜왔는가를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아이들’의 눈으로 읽어낸다. 역설적이게도 이 통찰의 최종 목표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 기획은 일회성으로 끝날 수 없는데, 우리는 미리 손을 드는 것으로써 그의 비평의 미래를 응원하기로 했다.

다양한 미덕과 능력을 갖춘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을 선택하는 심사는 딜레마의 요소를 안고 있다. 기다리던 소식을 듣지 못한 응모자들께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 김수이 한기욱 |

 

 

 

평론 | 수상소감

 

4407

윤재민

1985년생. 동국대 국문과 재학중.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순 없지만, 응모 마감일 즈음은 내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물러설 곳 없고 토로할 사람 없는 가운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탈고조차 하지 못한 원고를 부쳤다. 죽음과도 같은 비참과 열패감이 찾아왔다.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일생일대의 암울한 순간이었다.

분에 넘치는 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서 수상소감을 쓰는 지금 역시 내 상황은 말할 수 없이 어둡다. 옆을 보기 창피하며 되돌아보기 하염없는 거지 같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마음 같아선 눈 딱 감고 이 상의 모든 것을 나의 공()으로 선언하고픈 심술이 시시때때로 모니터에 나타날 정도로 나는 반쯤 미쳐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의 온전한 주인은 내가 아닌, 나를 알고 이 소감문을 읽는 이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들이야말로 내가 아직 미치지 않고 정신을 지탱하는 유일한 이유다. 미친 사람이 시를 쓰거나 음악을 한다는 얘긴 들어봤지만, 평론을 쓴다는 얘긴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내 곁에 없다면 나는 앞으로 다시는 평론을 쓸 수 없을지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당신이 내 곁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겨울 대산대학문학상 시상식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이 행운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겠다”라고 심사위원들께 약속드렸다. 내게 행운을 안겨준 두분, 최원식 진정석 선생님께 기쁜소식을 전해드리고 싶다. 또한 이번만은 행운이 아님을 말씀드려야겠다. 오늘의 ‘비행운’은 선생님들의 안목을 증명하고자 한 어떤 애송이의 미약한 목소리다. 그리고 이 목소리를 한기욱 김수이 선생님께서 알아주신 것이다. 두 선생님의 안목, 더불어 황종연 선생님의 제자됨 또한 어떤 식으로든 증명하고 싶다. 미치지 않을 만큼 정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