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약동하는 기억의 문학

황석영 문학이 서 있는 자리

 

 

사또오 이즈미 佐藤泉

아오야마가꾸인대학(靑山學院大學) 문학부 일본문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 『漱石 片付かない近代』 『戰後批評のメタヒストリ近代を記憶する場』 『國語敎科書の戰後史』 『異鄕の日本語』 등이 있음.

 

 

『손님』(창작과비평사 2001, 일역본 『客人』, 岩波書店 2004)에서 받은 충격에 대해 쓰고자 한다. 침울한 꿈을 기술하면서 시작되어 떠들썩한 굿판에 이르는 이 작품은 창작활동이 그대로 살풀이굿이 되기도 하는 문학의 존재방식을 경탄할 만한 방법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냉전이 불러온 믿기 어려운 폭력과 그 폭풍 한복판에 놓인 인간 ‘기억’의 곤란함을 보여주고, 나아가 ‘되새김’의 리듬을 가르쳐주었다.

기억, 특히 전쟁의 기억에 관해 우리 사회에서는 곧잘 ‘기억의 풍화’라는 식으로 말한다. 바위에 아로새겨진 글자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기며 마모되어가는 것처럼 한때는 선명했던 기억도, 시간과 함께 스러져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자연의 이미지를 유용하는 기억의 표상이란, 사실에 비추어도 잘못됐고 이론적으로도 뒤집혀 있다.

기억과 망각의 과정은 자연의 과정이 아니고, 현재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되새긴다는 것이 창고 안을 뒤지듯이 과거의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황석영(黃晳暎)의 창작활동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되새긴다는 것은 과거 사실의 단순한 재생이 아니다. 일찍이 볼 수 없던 것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눈에 들어온다는 것, 어떤 일의 잠재적인 의미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 어째서 전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던가를 깨닫는 것, 다시 말해 과거를 상기한다는 것은 과거에 관계되는 것 이상으로 현재에 연관되는 행위인 것이다. 현재를 위기로 감지한 사람들이 그 절박한 위기감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문맥에서 기억을 기억해간다. 이 동아시아의 작품은 기억이 이렇게 지극히 동적인 프로세스라는 사실을 문학적 실천 그 자체로 보여준다. 갱신된 틀 안에서 자신을 새로이 표상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되풀이하여 새로 낳아간다. 역사를 상기하고 재기억하는 운동은 종속되지 않는 주체화를 향해 가는 실천이며, 그런 까닭에 그 자체의 역사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황석영에게서 그것은 문학사와 겹치게 된다.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기억을 갱신하는 운동

 

황석영은 자신의 문학세계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계기로 베트남전쟁을 누차 언급한다. 이 작가는 1967년부터 일년 남짓 베트남전쟁에 해병으로 종군했다. 당시 한국에서 참전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자유의 십자군’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도 전반적으로 ‘남베트남의 패망’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베트남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고, 자주적인 민족통일, 민족해방의 한 준거로 본다는 인식은 성립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작가가 베트남의 전장에서 보았던 것은, 자기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베트남 민중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 조선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생각함에 있어 더없이 중요한 참고가 되었다. 작가는 폭탄이 쏟아지는 참호에서 몸을 웅크린 채, 살아남는다면 반드시 내 민족의 분단문제와 민족문제를 문학으로 표현하리라고 맹세했다고 한다(와다 하루끼(和田春樹)와의 대담, 『손님』 일역본 수록). 베트남 전쟁은 곧 한국전쟁이었던 것이다.

무서운 깨달음의 순간이었으리라. 역사의 외부에 몸을 두고 제2차 대전 후의 아시아를 바라보는 사람은, 베트남과 한반도가 모두 냉전의 대립구도를 강요당해 분단문제를 떠안게 되었다는 것, 그 현상을 공통분모로 삼는 해방이라는 과제를 또한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인식은 옳다. 그러나 그러한 올바름이 역사를 움직이는 일은 없다. 자신을 살아 있는 역사의 바깥에 둠으로써 얻어낸 명석한 관찰이며 올바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자는 어떤가? 실제 전장에서 한국 병사라는 피압박자는 베트남의 피압박자에게 몹시 가혹했다. 역사의 구경꾼이 아니라 스스로가 역사의 행위자인 경우, 거리를 두고 베트남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없이 사무치게 참고가 되지만, 인식하기 지극히 곤란한 베트남전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기엔 한국인으로서의 죄책감이 너무 컸다.

하지만 광주항쟁 이후, 미국은 더이상 한국전쟁을 함께 치른 우군이나 민주주의의 나라가 아니었고 광주시민에 대한 토벌작전에 ‘고’(go) 사인을 보낸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미국에 대한 이러한 시선 전환은 해방 후 역사에서 획기적 변화이다. 현재를 사는 자가 절박한 위기감을 지니고 과거를 돌아보면서 움켜낸 기억은 사상(思想)이 된다. 갱신된 역사적 문맥 아래 베트남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되었고 625419는 자각적인 역사경험이 되어갔다.

이러한 약동적인 기억 작업은 스스로에게 자기의 역사를 부여하는 행위이며, 새로워진 역사 속에 스스로를 거듭거듭 새로 낳아가는 행위이다. 약동감으로 가득 찬 자기창출 운동은 마침내 이른바 공적 역사를 새로 쓰는 역사학의 작업에도 깊이 관여할 만한 힘을 지니기에 이르렀다.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의 규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의 사업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때까지 중요한 ‘동맹국’이었던 미국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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