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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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용 吳成龍

1984년 광주 출생. 2007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foooooo@naver.com

 

 

 

여기, 왓슨이 간다

 

 

왓슨,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모든 고통과 폭력과 불행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일까? 이 사건에는 어떤 존재 이유가 있을 걸세. 그렇지 않다면 이 세계는 우연이 지배한다는 것인데,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답하기 힘든 문제일세.

 

*

 

그의 기억이 제멋대로 19956월쯤으로 거슬러올라가버린다. 모든 기억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그가 살았던 집이 떠오른다. 아니 그보다 먼저 자신이 살갗을 드러내고 누웠던 자그만 침대와, 푸른빛의 문양이 유일한 장점이지만 꼭 푸른빛일 필요는 없던 천장과, 그런 천장이 있던 방 안의 풍경이 생각난다. 기억은 그가 머물렀던 작은 방에서 방문을 열고 나온 다음, 다시 현관문을 열어 집 밖으로 뛰쳐나와, 또다시 제멋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그보다는 빠른 속도로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며, 지금 그가 필요하다고 자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필요한 것이 분명한 무언가를 찾아내 통로를 연결한다. 입구가 열리자 보이는 것은 굿모닝문방구의 간판이다. 기억은 아무렇지도 않게 굿모닝문방구를 재생한다. 19956월의 그가 움직인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그의 친구 철록도 초등학교 3학년이다.

 

초록색 바탕에 흰색 글씨가 전부인 간판을 달고 있는 굿모닝문방구는, 단출한 간판과 달리 실로 어수선하다. 갖가지 그럴싸한 사진들로 장식했으나 실상 백원짜리 동전을 꽂아넣으면 그럴싸하지 않은 것만 토해내는 캡슐뽑기 기계, 한껏 쪼그려앉아야 화면이 보이고 힘껏 눌러야 조작이 가능한 버튼을 가진 간이용 오락기, 붉은색 테두리의 주먹 가위 보가 교차되며 동전을 삼킨 후 이따금 이상한 무늬의 동전을 뱉어내는 국적을 알 수 없는 환전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커피땅콩을 배급하는 것이 장기인 완전수동식 자판기, 구석진 곳에서 어디 가 이리 와봐 여보세요 나 잡아봐, 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시비를 걸다가 인정머리 없는 초등학생에게 걸려 흠씬 두들겨맞는 대머리 두더지 열두마리, 인적이 뜸한 곳에 자리잡고 부위별로 몸을 파는 종이뽑기에, 굿모닝문방구의 최대 재원임은 분명하나 출신성분이 불분명해 불량한 성정을 가진 각양각색의 사탕, 젤리, 껌, 엿, 초콜릿, 쿠키, 음료수, 아이스크림 따위가 안팎으로 진열된 탓도 있지만, 어수선한 느낌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그와 철록을 포함한 초등학생들의 의미없는 분주함이다.

 

그는 이 굿모닝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사먹고 뽑기와 오락은 한 적이 있어도, 샤프심 한통 구입해본 기억이 없다. 때문에 그는 그곳을 ‘문방구’라 발음할 때마다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는 또 굿모닝문방구에서 어머니에게 얻어맞은 친구를 다섯명 이상 기억하고 있는데, 이는 그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초등학생들이 어수선한 문방구에 혼을 잃어 학원이나 집에 대해선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심신미약 상태에 빠진 초등학생들은 어머니의 애정 어린 손길이 그들의 등짝을 따스하게 덥혀야 잃어버린 혼을 되찾곤 했는데, 아이들은 이러한 과정을 ‘어머니에게 혼이 났다’라고 표현하곤 했다. 여하튼 그와 철록은 이곳에서 서성인 지 오래로, 둘 다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굿모닝문방구 앞에서 보기 좋게 혼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참이다.

그와 철록의 풀린 눈은 한 점으로 모아져 있다. 유리창 너머의 그곳엔 상자에 담긴 장난감총이 놓여 있는데, 그의 키 정도는 될 법한 상자에는 탐정 복장을 한 근육질의 서양 남자가 붉은색 그림자를 향해 총을 겨누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내용물인 장난감총이 확실히 보일 수 있도록 총의 윤곽대로 도려진 상자의 구멍 위로 투명한 비닐이 씌워져 있다. 햇빛이 비칠 때마다 반짝거리는 투명한 비닐은 마치 안쪽에 누워 있는 장남감총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것 같은 착각을 줬다.

 

기억은 색인이 생략된 기록물처럼 원하는 대목을 찾아내기 위해 역행하고 목적지에 도달해 다시 순행하며 검토를 반복한다. 최종적인 기억의 시점에 의존하는 과거의 기억은 저마다의 날짜와 내역으로 선을 그으며 개별적인 기억으로 분절되는데, 지금 그가 떠올리고 있는 기억 또한 이에 해당된다. 기억의 외양은 초등학교 3학년 때에 고정되고, 그 속에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의 기억들이 머문다. 1995년의 그가 어떻게 움직였었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는 그는, 무리 없이 어떤 것을 기억해낸 당시의 그를 떠올렸다.

 

굿모닝문방구의 주인 아줌마는 사실 장님이래. 멀거니 상자 속을 응시하고 있던 그는, 어째서인지 모르게 그가 기억해낸 것을 옆에 있던 철록에게 소리 내어 말했다. 철록은 장난감총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나도 알고 있어. 철록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한 손 가득 사탕을 꺼내들고 말했다. 이게 그 결정적인 증거지. 그는 조금 놀랐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바와 철록의 사탕을 조합해보면 철록은 주인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탕을 취득한 것이었고, 이것은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바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절도 행위를 향한 놀람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는데, 하나 먹어,라는 철록의 말에 입안으로 욱여넣은 사탕의 굉장한 크기와 달콤함 때문이었다.

 

기억은 간혹 앞과 뒤를 혼동하고 이를 임의로 재배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능상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역순으로 작동하는 기억의 속성으로 인해, 정리하는 과정 혹은 반대로 꺼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소한 오류에 가깝다. 지금 그가 철록에 대하여 기억하고 있는 것 역시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실상 그는 이 장면의 기억을 되새기는 시점에선 철록이란 이름을 알지 못해야 한다. 그럼에도 자꾸만 철록이란 이름이 덧씌워지는 것은, 이것들에 대한 기억 스스로가 철록이란 카테고리로 묶여 보관된 탓일 수도 있고, 이 기억을 시작한 계기가 철록에게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굿모닝문방구를 배회하는 그의 입안에서는 커다란 사탕 하나가 온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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