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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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 소설집 『1인용 식탁』이 있음. shellmaker@naver.com

 

 

 

월리를 찾아라

 

 

나는 198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개성있는 삽화가인 마틴 핸드포드는 내게 ‘월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 첫 이름은 월리가 아니라 왈도였지만, 스물몇번 국경을 넘으면서 월리, 윌리, 찰리, 발리 등의 이름도 필요해졌다. 이름은 바뀌어도 사람들은 쉽게 나를 알아보았다. 나는 출간되자마자 그해의 유명인이 되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한국에 진출한 건 1990년 겨울이었는데, 책을 사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내 이름을 알았고, 설령 이름을 모르더라도 내 인상착의는 익숙했다. 그 인지도에는 25년이 넘도록 한결같은 옷차림도 한몫했다. 나는 늘 빨간색과 흰색으로 된 가로 줄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방울 달린 니트 모자를 쓰고 다닌다. 동그란 뿔테 안경과, 올리브색 지팡이, 그리고 같은 색깔의 크로스백도 익숙하다.

마틴 핸드포드의 책에서 내가 없는 페이지는 의미가 없다. 나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 한 페이지 안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대략 400명 정도다. 그건 최소한으로 잡은 숫자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촌스럽게 놀란다. 400명이 아니고서야 이런 숨바꼭질이 25년 넘도록 지속될 리 있나. 독자들은 군중 속에서 나를 찾아내려 하고, 그게 이 책의 유일한 줄거리다. 그래서 월리를 찾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그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또다시 월리를 찾는 거지.

 

월리 역을 맡게 된 남자는 스물일곱살의 제이였다. 소장은 바퀴 달린 의자를 살짝 뒤로 밀면서 제이를 좀더 객관적으로 볼 거리를 확보했다. 제이는 키가 멀대같이 크다는 것만 빼면 월리와 닮은 점이 좀체 없었다. 소장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그는 최대한 월리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려고 했다. 가장 명확한 부분은 입매였다. 월리의 입은 알파벳 U자를 옆으로 길게 잡아당긴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제이의 입가에 작은 경련이 일었다. 제이가 예전에 월리 분장을 해본 적이 있다고 하자 소장은 조금 안심했다.

“아마도 그 예전 행사란 건, 어디 개업 행사였겠지?”

“장난감 출시 기념 행사였어요.”

“이번 건 차원이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네, 나는. 이번 행사는 그래. 그땐 그럼 가발을 썼나?”

“네. 노랑머리요.”

“그렇다면 이번엔 진짜로 머리를 이렇게 만들어봐. 누가 봐도 감쪽같이 월리여야 해.”

제이는 주로 주말에 일했다. 월리도 그 일 중 하나일 뿐이었다. 톰과 제리도 있고, 슈렉도 있고, 헐크나 일곱 난장이도 있었다. 캐릭터는 많았고 그 캐릭터대로 몇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요즘에는 어린이집이나 상점 개업 행사, 신제품 출시 홍보 같은 것이 많았다. 이번 행사는 토요일에 리버시티에서 열린다고 했다. 리버시티는 천안과 대전 사이에 있었다. 12시부터 9시까지 일하는 거니까 아침 9시에 출발하자고 소장이 말했다.

“아홉시간이나 일해요? 그럼 수당이 세겠네요?”

제이의 말에 소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수당이 문제야, 지금? 잘만 하면 우리 회사가 리버시티 같은 큰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다고.”

제이는 민망한 듯 슬쩍 웃었다. 소장이 저렇게 신경을 쓰는 걸 보면 무척 큰 행사인 게 분명했다. 제이는 미용실에 갔다. 월리의 앞머리는 사람 인()자 모양으로 생겼고, 그 위로 니트 모자가 덮여 있었다. 제이는 미용사에게 휴대폰에 저장해둔 월리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모자 쓸 거거든요. 이런 형태로 되게요, 이 색깔에 이 모양으로요.”

미용사는 단박에 월리를 알아보았다.

“어머, 이거 예전에 진짜 좋아했는데, 얘 찾기 너무 힘들지 않았어요? 전 거기 나온 사람들 표정 보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표정이 똑같은 사람이 한명도 없었어요. 근데 진짜 이렇게요?”

미용사는 자신의 결과물에 만족했고, 잘 어울린다고까지 말해주었다. 제이가 보기에도 원래 머리 스타일보다 월리의 머리 스타일이 자신에게 더 맞는 듯했다.

제이의 시력은 좋았지만, 도수 없는 뿔테 안경도 필요했다. 지난번에는 알 없는 안경을 썼지만, 그런 건 어쩐지 소품 같지 않은가. 소장이 강조한 것처럼, 이번에는 최대한 ‘진짜’처럼 준비해야 했다. 안경점에서는 난시교정 안경을 권했다. 제이의 눈에 난시가 있다는 거였다. 안경을 쓰자, 그간 인식 못하고 있었던 뿌연 세상이 조금 또렷해졌다. 거울 속에는 정말 월리가 있었다.

차는 토요일 아침 9시에 출발했다. 제이는 오늘 일당이 30만원이라는 것에 몹시 고무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장도 리버시티에 볼 일이 있다고 해서 왕복 차편도 해결된 셈이니,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주말이었다. 그들은 휴게소에서 라면과 우동도 먹어가면서 리버시티를 향했다. 가는 동안 소장은 리버시티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거대한 홍보 공간인 리버시티는 백화점 일곱개를 합친 규모지만,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판매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지갑은 리버시티를 나간 후에 열렸다. 그 가능성을 위해 어마어마한 샘플과 체험서비스가 리버시티를 가득 채웠다. 모두 무료였다. 방송프로그램이나 설문조사, 또 플래시몹이나 서프라이즈 행사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오늘과 내일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고들 했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도 먹고 보고 즐길 거리가 많아 좋은 데이트코스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서는 말이야. 한명이 재채기를 하고, 또 한명이 재채기를 하면, 다른 한명도 재채기를 한다더군. 그러니까, 재채기 충동이 없는 사람도 말이야. 알아서 에이취 한다는 거지.”

“왜요?”

“난들 아나. 근데 그렇게 된다더군. 뭐랄까, 무의식적으로도 전염이 되는 거 아니겠어. 아니면.”

“아니면?”

“의식적으로 전염이 되거나.”

리버시티의 유동인구는 하루에 30만명이었고, 그 30만명의 80%가 오후 12시부터 9시 사이에 몰려 있었다. 마틴 핸드포드의 그림 속에서는 한 페이지에 월리가 존재하기 위해 400명 정도의 군중이 필요했다. 그 공식대로라면 24만명의 사람들을 위해서는 적어도 600명의 월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날 출근한 월리는 모두 60명에 불과했다. 그건 책보다 더 어려운 난이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리버시티의 예산 때문이었다. 그날 월리들의 일당은 꽤 높았다. 아홉시간 일하고 오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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