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목소리

 

정의가 마르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재, 여러 개혁과제를 제시한 가을호 특집을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천안함사건과 국내 민주주의 문제를 다룬 서재정·남태현의 글이 인상깊었다. 왜 천안함사건은 해가 몇번 바뀌어도 사람들의 입에 계속 오르내리는가? 사건에 대한 정부의 조사 결과를 국민이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 대해 여러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지만, 책임있는 당국자 누구도 이렇다 하게 분명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은 매우 오랫동안 쌓여온 것이다. ‘안철수 신드롬’은 ‘정의’와 ‘공평사회’의 실현을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방증하는 현상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국민의 요구에 진정으로 귀기울이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이 오래된 ‘불신’을 조금씩 깨뜨려가기를 바란다.

야오 aoyang@hanmail.net

 

지역언론, 어디로 가야 하나

 

대한민국은 수도권 공화국인지라 신문구조 역시 수도권, 특히 서울 중심이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이 지역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20년이 되어간다. 제대로 된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행정과 의회도 중요하지만 지역언론의 역할도 막중하다. 현 정부 들어 지역신문발전기금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2013년 예산안에서는 아예 편성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단체들이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난 며칠 후, 가을호에 실린 윤주성의 「지방정부의 지역언론 통제」를 읽었다. 광주·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글이지만, 기자들 사이에서 지역의 ‘소통령’으로 비유되는 자치단체장의 존재, 지방정부가 지역신문을 홍보용으로 포섭하려는 모습, 지역신문도 생존의 법칙에 따라 어느정도 순응하는 상황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필자도 언급한 것처럼 지방정부와 지역언론의 권력관계는 쌍방향적 특성이 있으므로, 언론도 지역 기득권 세력의 대변자가 되는 일을 이제 멈춰야 한다. 지역에 밀착하여 지역민의 삶을 기록하고 발전방향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지역 구성원의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 가장 큰 숙제 아니겠는가. 거기에 더해 공적 지원 또한 필요할 것이다. 내가 사는 경남에는 다양한 시도로 공공저널리즘을 실현하는 신문이 있다. 지역민들 역시 그런 언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야 대권주자들이 지역언론을 살리자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하니 그 또한 지켜볼 일이다.

이정언 423124@daum.net

 

‘푸어’를 벗어나 ‘희망’으로 가는 길

 

이 시기의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단어가 ‘푸어’(poor)라니, 새삼스럽게 팍팍해진다. 작년에 결혼 준비를 하다보니, 허니문푸어(honeymoon poor)나 렌트푸어(rent poor)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성실하게 살아온 젊은이들이 순식간에 무능한 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빈부격차는 당연지사지만 그 간극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다. 정지은의 「푸어(poor) 공화국, 대한민국」은 돈이 모든 가치의 상위에 놓인 씁쓸한 현실을 묘사한다. 인터넷뉴스 기사를 통해 접해왔던 여러 사실이 촘촘히 나열된 이 글은 마치 블랙코미디처럼 읽힌다. 정지은은 ‘아직 희망은 있다’고 강조하지만, ‘희망’에 해당되는 내용을 담은 결론 부분이 짧고 모호해 아쉬움을 남겼다. 각자 미리미리 준비하고 개별적으로 감당하는 것만으로는 더이상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오늘날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어쩌면 희망의 시작일 것이다. 조금 귀찮고 피곤하더라도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연대하는 것, ‘희망’의 각론을 궁리하게 하는 글이었다.

이지홍 jhcool99@hanmail.net

 

아직 끝나지 않은 언론파업, 단단한 투쟁으로 이어지길

 

가을호 대화 ‘2012년 언론파업 이야기: 나는 언론인이다’를 읽고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지난여름 학교 가는 길에서 두세번 보았던 얼굴들이다. 그들은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이미 쉬어버린 목소리를 높여 ‘MBC 파업 지지서명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행인들은 무심히 제 갈 길을 가기도 했고 그쪽을 조금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 자리를 지나쳐간 후 나는 음료수 하나 건네지 못한 내 주변머리를 무던히 구박했다. 2012년의 언론파업은 뜨거웠다. 대화에 나오는 젊은 언론인들의 이야기 속에는 지난 파업에서의 강한 열정과 진정성있는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것이 유의미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그들의 열기가 파업 종료로 사그라지지 않고 앞으로의 언론개혁을 위한 에너지로 작동하리라는 것이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파업은 끝났지만 그들의 투쟁은 현장에서 계속될 것임을 믿는다. 지나간 파업에 대한 냉정한 분석·판단은 좀더 단단한 투쟁을 이어가게 할 것이다. 언론인은 ‘공정성’이라는 가치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류소현 the_tree@naver.com

 

따뜻하게 건네는 고독의 테마

 

이번호 작가조명에서 은희경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그녀의 최근작 『태연한 인생』은 특유의 지적인 문장과 명료함으로 독자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주인공 요셉의 반어와 독설은 정홍수 평론가의 지적대로 지나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지만 진흙탕 속의 요셉이 들려주는 통찰은 “이 소설이 세상 혹은 인생과의 대결에서 감내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거리”를 이루어낸다. 은희경은 자신이 요셉에 더 가깝다고 하지만, 『태연한 인생』의 서사는 류가 도달한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와 더 가깝지 않은가 싶다. 정홍수의 말대로 최근 은희경 문학의 “고독의 테마는 어떤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노래할 수 없는 사람의 노래와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의 노래, 두가지 모두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은 역으로 더 따스하게 느껴졌다.

『태연한 인생』의 ‘은희경다움’은 여전했다. 작가에게는 ‘은희경다움’이라는 꼬리표가 고독했을지 몰라도 독자로서는 그 고독에서 나온 노래를 통해 은희경의 고유성을 재확인하는 과정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패턴을 벗어나려 애쓴 모양이 작가가 말한 “모호하고 애매하고 낯선 소설”이었다면 『태연한 인생』은 은희경이 “잘하는 걸 그냥 한” 결과다. 정홍수 평론가의 날카로운 독해와 은희경 작가의 답변이 이뤄낸 변주가 즐거웠다. 작가의 용의주도한 계획이 어긋난 결과가 이 소설이라면, 앞으로도 뜻밖의 일들이 자주 일어나길 바란다.

lifelogue@gmail.com

 

한국경제에 대한 명쾌한 분석

 

가을호 특집 ‘2012년 대선과 민주개혁의 과제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현재 한국사회가 어떤 좌표에 와 있는지, 앞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철학과 자세로 이번 대선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였다. 경제 부문의 문제점과 대안을 명쾌하게 짚어준 정대영의 글 「한국경제,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를 특히 눈여겨 읽었다. ‘투자가 늘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처럼 이제껏 사람들이 당연스레 생각해왔던 몇가지 명제들을 날카롭게 분석하여 그 허무맹랑함을 드러낸다. 양극화 해결을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타파만 부르짖어서는 곤란하며, 대기업·은행·관료·전문직 등 고수익 직종의 과보호를 걷어내고 공정경쟁과 진입확대 등 자유주의적 원칙을 적용시켜야 한다는 점에도 공감이 갔다. 다만 결론에서 제시된 구체적인 정책들은 앞서 그가 이야기한 문제인식을 제대로 감당하기에는 버거워보였다. 한국경제가 ‘잘’ 먹고살기 위한 훌륭한 제안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문제는 그것의 가치와 취지에 제대로 공감하고 그 정책들을 지지해줄 수 있는 사회적 합의기반을 넓혀가는 일이다. 한국경제의 팍팍함을 극복하는 길이 한국사회를 한층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진한 goldhj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