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 진은영 시집 『훔쳐가는 노래』

 

‘청춘’의 시인, 우리 시대의 전위가 되다

 

 

함돈균 咸燉均

문학평론가. 2006년 『문예중앙』에 평론 「아이들, 가족 삼각형의 비밀을 폭로하다」를 발표하며 등단. 저서로 『얼굴 없는 노래』 『시는 아무것도 모른다』 『예외들』이 있음.

 

진은영 陳恩英

시인. 2000년 『문학과사회』에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등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가 있음.

 

ⓒ 김소민

ⓒ 김소민

 

내가 진은영 시인에게 처음 받은 서명본은 그녀의 두번째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문학과지성사 2008)이다. “새로운 우정의 시작”이라고 쓰인 첫 장에는 “2009년 봄”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다. 그러니 그녀와 나의 “우정”의 역사는 이 두번째 시집 이후의 시간이 전부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세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창비 2012)의 첫 장에서 그녀는 나를 “소중한 동지”로 부르고 있다. 두번째 시집과 세번째 시집 사이에 “우정”이 “동지”로 바뀌었다. 길지 않은 이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와 나 사이의 사적 인연을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가 그녀의 이번 시집 『훔쳐가는 노래』의 특징과 시인 진은영의 현재 정체성을 가늠하게 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난 이삼년간 진은영은 한국시단과 평단의 가장 핫한 아이콘 중 하나였다. 그녀는 시인이자 실천가였으며, 시의 정치성 논의를 촉발시킨 탁월한 문학이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녀는 조용하고 가냘파 보이지만, 우리 시대의 정치사회적 퇴행에 대한 위기감이 급속하게 확산되어가던 이 국면에서, 일관되고 열정적으로 자기 신념에 따른 시적 모험을 전개했으며, 용기있는 이 모험을 첨예한 이론적 발언과 병행함으로써 자기 시론을 가진 드문 시인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그녀의 ‘시론’은 두번째 시집 이후에 세상에 발표했던 변화하는 시들과 한몸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이 기간에 그녀는 퇴행적 정치상황이 초래한 사회적 위기현장에 직접 서서 시인의 날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아마 낯선 이미지가 산재해 있는 첫번째 시집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문학과지성사)을 시단에 상재했던 2001년만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그녀의 지금 모습과 이번 시집에 담긴 일련의 시적 형상들을 뜻밖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훔쳐가는 노래』에는 첫번째 시집에서 보았던 낯선 이미지와 창조적인 감수성이 여전히 번뜩이며, 두번째 시집에서 풍기는 ‘70년대 산()’(그녀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청춘 연가의 아우라와 그것이 거느린 아름다운 비유들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이 시집이 두번째 시집 이후에 수행한 시인의 정치사회적 고민과 치열한 사유, 그리고 열정적인 실천이 어우러진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녀가 내게 부여한 ‘동지’라는 명칭 역시, 이러한 그녀의 전방위적인 문학적 실천 과정에서 우리가 형성하게 된 어떤 정신적 연대감에 대한 표현이었으리라.

 

함돈균  새 시집의 제목이 ‘훔쳐가는 노래’입니다. ‘훔쳐가는’과 ‘노래’는 익숙한 말인데, 정작 그 단어로 이루어진 ‘훔쳐가는 노래’라는 제목은 낯설군요. 여기에 대한 질문을 적잖게 받으셨을 듯한데, 과연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요. 아니, 그렇게 물어보면 재미가 없을 것 같군요. 첫 시집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에서 두번째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로, 그리고 이제 『훔쳐가는 노래』로 옮겨오는 시적 세계의 변화를 제목과 관련하여 간단히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진은영  괴테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세계로부터 가장 확실하게 도피하는 방법으로 예술만한 게 없고, 세상과 가장 확실하게 결합하는 방법으로도 예술만한 게 없다.” 첫번째 시집은 세계로부터 도망치는 제 나름대로의 방식 같은 거예요. 천진난만한 전지전능함으로 새로운 사물을 창조하고 그 사물들을 정의하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제목에 그대로 담았어요.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그러니까 시작은 겨우 일곱개지만 점점 표제어들이 증식해가는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고 싶었지요. 낡은 세상과는 절연하고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은 결의에 차 있던 시간이었어요. 그러고는 이미지의 소도시를 세우고 거기에 사랑하는 동료 몇몇을 불렀어요. ‘우리는 매일매일’ 이미지를 먹는, 식탐이 심한 종족처럼 살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와 조금 다르게 ‘훔쳐가는 노래’는 세상과 결합하는 방법으로 예술만한 게 없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시기에 쓴 것들입니다.

함돈균  흥미롭네요. 자기만의 사전을 갖고 싶어서 세상과 절연한 이미지의 소도시를 세우던 시인이, 결국에는 시가 세상과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