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초원민주주의와 유목제국주의
김형수의 『조드』
최원식 崔元植
문학평론가,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 저서로 『민족문학의 논리』 『한국근대소설사론』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 『문학의 귀환』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등이 있음. ps919@hanmail.net
1. 두 물음
초원의 푸른 늑대 테무진1)이 몽골 내부를 통일하고 칭기스 칸으로 추대된 1206년에서 마무리된 『조드』(자음과모음 2012)의 책등에는 ‘김형수 장편소설’이 뚜렷하다. 굳이 엄밀함을 가장하면, 두개의 의문이 떠오를 수 있다. 『조드』는 한국문학인가? 『조드』는 소설(novel)인가?
김형수(金炯洙)의 몽골 역시 방현석(邦賢奭)의 베트남, 유재현(劉在炫)의 캄보디아, 그리고 전성태(全成太)의 몽골처럼 위기에 함몰한 민중문학의 출구로서 선택된 문학적 장소다.2) 그런데 『조드』에는 한국/한국인이 완벽히 부재한다. 그런 예로 내전 이후의 캄보디아를 탐사한 유재현의 연작 『시하눅빌 스토리』(창비 2004)가 없지 않지만, 한국 상품들이 출몰하기도 하고, 캄보디아에 파견된 북조선 군관을 주인공으로 하는 편도 있어, 『조드』에 비하면 양반이다. 김형수의 『조드』는 뜻밖에도 자의식이 가장 엷은 편이어서 오히려 젊은 소설가 강영숙(姜英淑)의 『리나』(문학동네 2011)와 통하는 바 없지 않다. 어린 탈북자 리나의 파란만장한 도정을 그린 이 장편은 최서해(崔曙海)의 「탈출기」(1925) 새 버전이거니와, 그럼에도 그 지향은 해방운동에서 최종적 가능성을 꿈꾸는 「탈출기」와 비연속적이다. 과연 『리나』의 세상(=소설) 안에 구원의 희망은 없다. 중국을 떠돌다 한국행을 의도적으로3) 포기한 채 몽골로 넘어가는 데서 마무리되는 『리나』는 탈출 그 자체가 목적으로 된 기이한 탈출기다. 그리하여 작가는 끈덕지게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지명, 모든 국명을 지운다. 우리 시대의 보편적 불모성을 환유하는 상징으로 삼으려는 작가의 충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 고의적 무국적화란 탈북의 소비와 멀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4)
물론 『리나』의 유사-무국적성은 『조드』와 다르다. 『조드』에 등장하는 모든 장소는 터주(genius loci)의 영성(靈性)을 둘러쓰고 세심히 특화되어 몽골의 위대한 지리를 화엄(華嚴)한다. 『조드』는 몽골에 바쳐진, 한국어 최고의 오마주다. 이 작품에 대한 몽골인의 열광은 대단하다. “소설 『조드』가 칭기스 칸의 전쟁영웅담을 그린 케케묵은 이야기였다면, 유목민들의 현란한 기마술과 속도전을 미화하는 전술・전략의 병법서였다면, 몽골의 신화이자 역사인 『몽골비사』를 가공한 역사소설에 불과했다면, 그건 수많은 몽골서사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드』는 첫 장부터 전혀 다른, 매우 새롭고 독특하면서도 유목민의 생각과 삶이 고스란히 재현된 완벽한 ‘유목’소설이었다.”5) 이 작품은 몽골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을 압도한다. 몽골에 대한 경의가 전경화한 『조드』에서 김형수는 한국 작가라기보다는 몽골 작가다. 강영숙이 의식적으로 무국적이라면, 김형수는 슬그머니 국적을 이월한다.
그럼 『조드』는 몽골문학인가? 물론 아니다. 이 작품이 한국어로 씌어졌다는 점에 새삼 유의할 것인데, 더구나 이 소설의 한국어는 얼마나 각별한가. “새끼 밴 암소처럼 걸음이 더딘 말띠 해, 서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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