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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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孫寶渼

1980년 서울 출생.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shoutspring@naver.com

 

 

 

대관람차

 

 

호텔 초이선(Choisun)은 불에 탄 후, 육개월 이상 그 상태 그대로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었다. 어느날 밤, 누군가 건물 내부의 작은 퓨즈를 하나 끊어버렸다. 그러자 연달아 자잘한 파열이 일어났다. 그 파열은 가스관에 도달했고 마침내 건물 전체를 무너뜨렸다. 호텔 초이선은 그 자리에 세워진 1972년 이후 약 사십년 만에 그런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갈 때나, 혹은 자동차를 운전해서 강변북로를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거의 절반이 소실된, 마치 조각조각 찢긴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철근 덩어리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었다. 어떤 칼럼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썼다. “건물이 무너진 후 서울시의 범죄율과 자살률이 증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사건은 다양한 방식으로—그러니까 수십만가지의 방식으로—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그것은 도시가 몰락할 징조를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이 과장된 견해라는 것은 곧 밝혀졌다. “도시의 범죄율과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티브이에 나온 시사평론가가 유머러스한 태도로 말했다. 실제로, 건물이 무너지고 두달 정도 지났을 때부터, 사람들은 그 건물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초이선의 역사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초이선은 조선 말기에 미국인 부동산 재벌인 윌리엄 쌘즈가 세운 건물이죠. 원래는 지금의 동대문 근처에 있었습니다. 고종이 그 건물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황실 가족이 자주 머물렀던 곳입니다. 단언하건데 그곳은 역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걸 지켜야 합니다.” 누군가는 그 건물의 시련에 대해서 말한다. “이게 첫번째 소실이 아닙니다. 625전쟁 때 폭격당한 후 쌘즈 2세에 의해 지금의 자리, 동부이촌동에 재건된 것입니다. 앞으로 이 건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요.” 다른 누군가는 그 건물이 현재 얼마나 궁색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쌘즈 3세는 이 건물에 대한 애정이 없어요. 관리업체에 맡기고 지난 사십여년 동안 나 몰라라 했죠. 옛날식 건물이라 몹시 낡았고, 유지비는 엄청 들어요. 게다가 사람들의 발길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말마다 호텔 초이선—이제는 무너져버린 건물—에 들렀고, 새삼스럽게도 그곳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안달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어떤 것이든 그곳에서 발굴해냈으리라.

시의 경찰은 몇달 동안 방화범을 찾기 위한 수사를 진행했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사고 보상금과 관련된 유족들의 시위였다. 시당국에서는 쌘즈 3세와 접촉하려고 계속해서 시도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자, 초이선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들이 생겨났다. 그 건물의 폐허 어딘가에 시체가 숨겨져 있는데 그게 바로 방화범의 시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건물이 귀신 들렸거나 혹은 저주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다른 것—그것이 완전히 붕괴되어 없어지는 것—을 바랐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저 끔찍한 것 좀 봐!” 마치 저 건물이 이 도시의 유일한 흠집이라도 된다는 듯이.

 

아마도 초이선과 관련해서 그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초이선이 화염에 휩싸인 바로 그 장면일 것이다. 그는 그것을 티브이 뉴스의 생중계를 통해 봤다. 그의 아들이 태어난 지 백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의 아내는 아들을 재울 때마다—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집 안의 모든 조명을 어둡게 해두었고, 티브이 볼륨을 켜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둠과 정적에 휩싸여서 그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그가 실로 오랜만에—거의 삼년 만에—무언가 쓰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바로 그러한 이유는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둠과 정적 말이다. 그는 잠시 멍하게 티브이 화면을 바라보다가 테이블에 쌓여 있는 잡동사니—아이의 침받이 수건이라든지, 딸랑이, 물통 등등— 사이에서 포스트잇을 찾아냈고, 책상 서랍에서 펜을 꺼내 왔다. 그리고 얼른 맨 윗장에 이렇게 휘갈겼다. ‘방화, 서울 한복판에서 무너져내린 건물, 초이선’ 그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해두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걸 ‘생각 저장’이라고 불렀다. 그 단순한 문장들이 나중에 씨나리오 작업을 할 때, 결코 단순하지 않은 방식으로 도울 거라고 그는 아내에게 설명하곤 했다.

그들은 한 유명 영화제작사에서 만났다. 그녀는 사장인 K의 비서였다. 저는 원래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단역이지만 제가 출연한 영화도 있고요. 사장님이 손을 써주신 거지만 말이에요. 그녀는 그에게 말했었다. 그는 그녀가 배우를 했어도 잘 어울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거의 모든 남자가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새로 제작에 착수한 영화의 씨나리오 작가였다. 모두 다 그 영화가 엄청난 성공을 거둘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중에 그건 잘못된 생각으로 판명이 났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때 그녀는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은 몇년도 더 지난 후였는데, 이번에 그는 제작사의 직원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한동안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취직한 직후에 연줄을 통해 자신의 씨나리오로 다른 영화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영화의 결과는 더 참혹했다. 그로부터 일년 후에 그는 그녀와 결혼했다. 쌘프란시스코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주 주말에 그들은 감사의 뜻으로 직장 동료들을 집에 초대했다. 그중에는 여자도 있었다. 동료들은 저녁 내내 그들 집에 머물렀다. 월요일에 회사에서 누군가 그의 아내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자네는 정말 운이 좋아. 그는 그때까지도 가끔 씨나리오를 쓰고 그걸 영화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의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헛된 꿈은 좇지 말고 생활에 정착해야 할 거야. 그날 밤 그가 농담 삼아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의 아내가 말했다. 헛된 꿈이 아니에요. 그렇죠? 그는 웃었다. 하지만 헛된 꿈이라도 상관없는 거예요. 그녀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방화, 서울 한복판에서 무너져내린 건물, 초이선’ 그가 메모를 다시 읽어보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거실로 나와 조용히 방문을 닫고 그의 곁에 앉았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뭐 좀 먹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나중에 먹을게요,라고 대답했다. 그즈음 그녀는 나중에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거실이나 부엌에서, 무언가를 사러 함께 나간 마트나 백화점에서, 혹은…… 침대 위에서. 그는 맥주를 가지러 부엌으로 갔고, 문득 자신의 손에 여전히 그 포스트잇이 들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포스트잇을 냉장고에 붙여놓고 그 위를 자석으로 눌렀다. 그리고 그걸 다시 읽어보는 동안, 갑자기 큰 소리로 아내를 부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왜? 다음날 낮에, 그의 아내는 아이가 잠자는 틈을 타서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아이가 깨서 울까봐 그녀는 조마조마했다. 설거지를 하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가 그녀는 냉장고에 붙어 있는 메모를 발견했다. 그녀는 그 메모를 읽었고, 다시 하던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시간 후 천귀저기를 개던 그녀는 갑자기 화가 난 사람처럼 펜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방화, 서울 한복판에서 무너져내린 건물, 초이선’이라는 메모 뒤에 이렇게 써넣었다.

죽은 사람

잠시 후 그녀는 다시 펜을 들고 와서 그 뒤에 ‘들’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 메모의 내용은 이렇게 되었다.

방화, 서울 한복판에서 무너져내린 건물, 초이선; 죽은 사람들

 

그는 그 메모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가끔 뉴스에 초이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요즘은 저런 일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무능력한 시당국을 비난했다. 그는 승진을 했고, 자신이 맡은 여러가지 대형 프로젝트 때문에 늘 골치가 아팠다. 어느날 팀장이 그를 호출해서 ‘호텔 초이선 철거와 새로운 공공지역 활성화를 위한 모금운동’에서 여배우 P가 읽을 연설문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초이선은 이미 인기를 잃어가는 시점이었다. 누군가 뉴스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더러워요. 당장 저걸 없애버려야 해요.” 유족 보상금 문제도, 방화범 문제도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다만, 쌘즈 3세의 응답이 있었다. “쌘즈 3세는 대지와 건물의 소유권을 무상으로 시에 넘기겠다고 했고…… 그 대신 조건을 두가지 붙였다…… 공공의 목적에 맞는 시설을 만들 것과 유족들의 보상금은 시에서 처리할 것…… 시에서는 예산이 부족하며…… 어떤 식으로 이 대지를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검토 중……” 아마도 쌘즈 3세가 좀더 일찍 이런 결정, 그러니까 건물과 대지를 기증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더라면 기업들은 이것을 어떤 식으로든 상업적으로 이용해먹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 기업들은 초이선과 관계되는 것 자체를 꺼렸다. 그런데 P가 갑자기 ‘호텔 초이선 철거와 새로운 공공지역 활성화를 위한 모금운동’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방화, 서울 한복판에서 무너져 내린 건물, 초이선; 죽은 사람들

초이선이 불에 탄 밤, 죽은 사람들이 몇명 있었다. 대부분 거기서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시급직 직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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